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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예(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팀)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 문학의 해외 소개를 위해 번역·출판, 국제 교류, 번역가 양성 등 다양한 사업을 하는 기관이다. 작년 12월, 나는 원장님과 함께 한국 문학 독후감 대회 시상식 참석 및 한국 문학 교재 기증을 위해 베트남 출장을 갔다. 한국 문학 독후감 대회는 외국 독자들이 외국어로 출판된 한국 문학 작품을 읽고 쓴 독후감을 공모하여 우수한 독후감을 선정하는 대회로 작년 베트남에서는 국립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학에서 오정희 소설집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또한 하노이 인문사회과학대학과 하노이 외국어대학 한국학과에 한국 문학 수업에 도움이 되도록 한국 고전 문학 교재를 기증하기도 하였다.
   주요 행사 일정 외의 시간에는 베트남 작가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베트남 작가들과 친분이 있었던 소설가 김남일 선생님이 미리 만남을 주선해주신 덕분이었다. 그 날 만난 베트남 작가 모두 소박하고 따뜻한 사람들로 진실함이 느껴지는 호의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많지는 않지만 그들이 읽은 한국 문학 작품에 대한 느낌, 그들이 쓴 작품들, 한국과 베트남간의 문학 교류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리가 끝난 후, 두 명의 작가가 우리에게 야시장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하여 그들을 따라나섰다. 각각 자신의 오토바이에 원장님과 나를 한 명씩 태우고 하노이 도심을 달렸다. 베트남은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기 때문에 오토바이에 누군가를 태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무척 겁이 많은 나는 처음에는 꽤 무서웠지만 생각보다 속도가 느려서 나중에는 밤바람을 즐길 여유도 생겼다.
   나를 태워주웠던 바오닌(Bao Ninh)은 해외에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작가이다. 중국,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작가의 작품이 십여 개의 외국어로 번역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나 그에게서는 조금이라도 오만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는 야시장을 구경하는 내내 우리를 배려하였고,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며 내 가방을 들어주었다.
   베트남에서 돌아온 나는 바로 그 다음날, 한국어로 번역된 유일한 베트남 현대 문학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바오닌의 소설을 샀다. ‘전쟁의 슬픔’이라는 제목의 그 책은 그가 베트남 전쟁 중 겪었던 일을 쓴 것이다. 북베트남 인민군으로 참전하여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그가 살아남은 것은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그가 쓴 한국어판 서문에 아주 인상적인 글이 있었다. 나는 그 동안 만난 베트남인들이 미국의 편에 서서 베트남전에 참여한 우리 한국인들에 대해서 별다른 원한의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이 놀라웠는데 그의 글이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만약 여러분이 베트남에 와서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특히 평범한 민중의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난다면, 여러분은 그들의 매우 ‘평화주의적인’ 성격과 삶의 방식 앞에서 놀라게 될 것입니다. 그들에게서 일생의 거의 대부분을 전쟁의 화염 아래 살아온 모습이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수십 년을 끌어온 야만적인 전쟁은 마을을 파괴하고 도시를 절멸했으며 사람을 수백만 명 죽였지만, 베트남인을 ‘호전적인 자들’로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여러분이 과거에 일본군이었거나 프랑스군, 또 미군처럼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병사였더라도, 오늘날 베트남을 다시 방문할 때는 여러분에 대해 조금이라도 원한 어린 태도를 베트남인들에게서 결코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베트남에서 있었던 그들과의 만남은 베트남과 베트남인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으며 진정한 교류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제 3세계 국가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않다고 여겨지는 나라와의 교류를 담당하거나 주선하는 단체들 중에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는 전제 하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거나 시혜자의 입장에서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진정한 교류는 그들과 우리가 동등하다고 인식할 때 가능할 것이다. 문화 교류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문화를 그들에게 알리기 전에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들과 소통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번역원이 개최하는 문학 교류 행사들도 일방적인 소개가 아닌 진정한 교류, 소통의 장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