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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이번 호에서는 뜻을 반대로 알고 쓰는 일이 잦은 한자어들을 살펴보려 한다. 한자어는 글자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 있는바, 이를 살뜰하게 살피지 아니하고 아무렇게나 쓰게 되면 전혀 엉뚱한 뜻으로 오해하기가 쉽다.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려면 학교에서 한문 교육을 충실하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되도록 쉬운 한자어나 순우리말을 쓰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자문(諮問)’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보았을 것이다. 아래는 ‘자문’이 쓰인 최근 기사를 검색해 본 것이다.

(1) 최○○ 관광사업추진단장은 “토지 소유권이 복잡하게 나뉘어 있고, 콘도를 분양받은 사람들의 권리도 있기 때문에 강제 집행은 어렵다”며 “곧 전문가의 법률 자문을 받아 구체적인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7.7.23.>
(2) 그는 지난 1992년에 김○○, 97년에는 김○○ 대통령 후보 캠프에서 각각 자문을 했다.<국민일보. 2007.7.22.>

   ‘자문’은 보통 위 예들처럼 ‘받다, 하다, 구하다’ 등과 잘 어울려 쓰인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자문’은 ‘어떤 일을 좀 더 효율적이고 바르게 처리하려고 그 방면의 전문가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기구에 의견을 물음.’으로 풀이되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전문가에게 하는 질문’을 ‘자문’이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문을 받는’ 사람은 전문가가 되고, ‘자문을 하는’ 사람은 비전문가가 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1)에서 ‘자문을 받는’ 사람은 비전문가이고, (2)에서 ‘자문을 하는’ 사람은 전문가인 것을 알 수 있다.
   (1)과 (2)는 다음과 같이 고쳐 써야 한다. 이왕 고치는 김에 다른 부분도 함께 다듬었다.

(1′) 최○○ 관광사업 추진단장은 ‘토지 소유권이 복잡하게 나뉘어 있고, 콘도를 분양받은 사람들의 권리도 있기 때문에 강제 집행이 어렵지만, 곧 전문가에게 법률 자문을 하여/변호사에게 물어서 구체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2′) 그는 지난 1992년에는 김○○, 1997년에는 김○○ 대통령 후보 진영에서 자문에 응했다/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아래 (3)에서는 ‘자문’을 ‘조언’이나 ‘답변’으로 바꾸어도 말이 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3) 문제는 환자가 법정 소송에서 의사들의 공식적인 자문을 구하지 못해 의료사고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뉴시스. 2007.7.20.>

   이는 ‘자문’을 ‘조언’이나 ‘답변’과 비슷한 말로 잘못 알고 쓰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말을 잘하는 축에 드는 신문기자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쓰고 있다. 글쓴이는 우리말 전문가를 빼고 ‘자문(諮問)’을 바르게 쓰는 이를 한 사람도 본 적이 없다. 널리 쓰이는 말이면서도 누구나 잘못 쓰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는 이 말이 어려운 한자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자문’의 바른 뜻과 용법을 제대로 교육하는 것도 좋은 생각이지만, 그보다는 이런 말을 쓰게 될 때마다 좀 더 쉬운 말을 쓰려는 태도를 가지도록 교육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된다고 생각한다.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쓰고 있는 말이 ‘자문’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3)은 아래와 같이 고쳐 써야 한다.

(3′) 환자가 법정 소송에서 의사의 공식 답변을 얻지 못해 의료사고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다음의 예들도 ‘자문’처럼 반대의 뜻으로 곧잘 쓰이는 한자어들이다.

(4) 입찰을 하려면 보증금을 국고에 수납해야 합니다.
입찰을 하려면 보증금을 국고에 내야 합니다/납부해야 합니다.

   ‘수납(受納)’은 ‘돈이나 물품 따위를 받아 거두어들이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4)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보증금을 국고로부터 받아내라’는 뜻이 된다. 그러나 (4)는 그런 의도가 아님은 쉽게 알 수 있다. 입찰을 할 때에는 보증금을 내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와 같이 고쳐 써야 한다.

(5) 등본 신청서는 4번 창구에서 접수하십시오.
등본 신청서는 4번 창구에서 신청하십시오/내십시오.

   ‘접수(接受)’는 ‘신청이나 신고 따위를 구두나 문서로 받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5)는 ‘신청서를 4번 창구에서 받으라’는 뜻이 된다. 물론 빈 신청서를 받아서 다시 내용을 적은 후에 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동사무소 직원이 이 말을 할 때는 ‘신청서를 4번 창구에서 내라’는 뜻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신청하는 사람은 민원인이고 접수하는 사람은 직원인데도 민원인에게 접수하라고 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위와 같이 고쳐 써야 한다. 참고로 ‘창구(窓口)’를 [창꾸]로 소리 내는 이들이 많은데, 표준 발음은 [창구]이다.

(6) 우리 사무실에서는 쓰레기를 분리수거해야 합니다.
우리 사무실에서는 쓰레기를 분리해서 버려야 합니다/배출해야 합니다.

   ‘분리수거(分離收去)’는 ‘쓰레기 따위를 종류별로 나누어서 늘어놓은 것을 거두어 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니까 (6)은 ‘사무실에서 생긴 쓰레기는 밖에 내놓지 말고 주머니나 가방에 넣어서 집으로 가지고 가라’는 뜻이 된다. 쓰레기를 종류별로 잘 정리해서 버리는 일과 그것을 수거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엄연히 나뉘어 있는데도 아무 생각 없이 글을 쓰는 바람에 이런 이상한 문장이 쓰이고 있는 것이다.

   한자어, 쓰려면 제대로 알고 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