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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래어의 의미 변화
조남호(趙南浩) 국립국어원
  원래부터 우리말에 있던 말이 아니라 다른 언어로부터 빌려서 사용하는 말을 ‘외래어’라고 한다. 원래의 국적은 다른 언어였지만 현재의 국적은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런 변화가 없이 국적만 바뀔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국적이 바뀌어 새로운 나라에 적응하여 살다 보면 이런저런 변화도 겪게 된다. 변화를 거부하고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고자 하면 그것은 외국어이지 외래어는 아니다. 외래어가 되면서 생기는 변화는 형태와 의미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의미 변화에 대해서만 소개한다.
  원론적으로 어떤 외래어도 제공 언어에서 쓰이던 모든 의미로 우리말에서도 쓰일 수는 없다. 우리말에서 필요로 하는 의미로만 선택적으로 쓰이게 된다. 예를 들어 ‘가이드’라는 말을 보자. 우리는 주로 여행할 때 전문적으로 길안내를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이 말을 쓴다. 이 말이 영어 ‘guide’에서 온 말인 것은 분명하지만 영어 사전에 나오는 ‘향도, 소녀단 단원, 지도자’ 등의 의미로는 우리는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의 필요에 의해서 일부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그 의미로만 쓰는 것이다.
  이런 변화는 차치해도 외래어에서 나타나는 의미의 변화는 원칙적으로 두 경우로 나눌 수 있다. 처음부터 제공 언어에서 쓰이는 것과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의 경우이다. 좋게 표현하면 창조적으로 변형하여 사용하는 것이다. 우리말의 일부로 사용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덧붙이는 것이 다른 하나의 경우다.
  ‘미팅’은 처음부터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예가 될 것이다. 젊은 남녀가 자유롭게 만나기 어려웠던 시절, 대학생이 되면 주어지는 특권이 미지의 이성을 만나기 위한 자리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만남을 가리키기 위한 말로 등장한 것이 ‘미팅’이다. 이 단어의 유래가 되는 ‘meeting’은 회합이나 회의를 의미할 뿐이다. 젊은 남녀가 만나는 자리를 가리키는 말이 필요하자 ‘만남’이라는 제공 언어의 의미를 빌리되 제공 언어에는 없는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인 것이다. 최근 들어 기업체 직원들이 간소한 회의를 말할 때 ‘미팅’이라고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미팅’은 젊은 남녀의 새로운 만남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백(back)’도 마찬가지이다. 뒤를 보아주는 세력이나 사람을 의미하는 말로 사용되지만 영어 사전에서는 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우리말의 자격을 획득한 이후에 새로운 의미가 덧붙은 말로 ‘컴퍼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compass’에서 온 이 말은 애초 제도용 기구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그 기구의 모양이 사람의 다리 모양과 비슷한 데 착안하여 ‘보폭’의 의미가 덧붙어 “그는 컴퍼스가 길다.”와 같이 쓰인다. ‘빌라’는 어떤가? 초기에 ‘빌라’는 고급 주택의 의미로 쓰였다. 그런데 지금은 연립 주택을 일컬을 때도 ‘빌라’라고 한다. 상반될 수 있는 의미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때로 조정 과정을 거치기도 한다. ‘보이’가 우리 문헌에 나타난 초기에는 소년의 의미로도 쓰인 예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기존 단어에 밀려 ‘보이’는 정착하지 못했다. 다만, 음식점 등에서 시중을 드는 젊은 남자의 의미로만 사용되었다. 이제는 ‘보이’라는 말 자체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마담’도 초기 문헌에서는 부인의 의미로 사용된 예를 볼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마담’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방이나 술집의 마담이다. 손님을 맞이하면서 가게 영업을 책임지는 사람의 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부인의 경칭으로 옷가게 등에서 여자 손님을 가리켜 ‘마담’이라고 하는 말을 아직도 쓰는 것을 간혹 듣지만 외래어로 정착된 의미라 할 수는 없다.
  왜 이런 말을 쓰게 되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여기서의 논의와는 별개로 접근할 사안이다. 여기서 살피고자 한 것은 처음 쓰게 된 이유야 어떻든 우리말로 받아들인 외래어는 제공 언어에서의 의미와는 다르게 쓰인다는 것이다. 때로 이러한 의미 변화를 오용이라고 하면서 무식을 탓하는 것을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은 ‘다름’이지 ‘무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공 언어에 없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외국어가 아니고 외래어이기 때문이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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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