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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겹말은 가능한 한 줄이자
한규희(韓奎熙) / 기자(중앙일보 어문연구소)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더불어 신문사에는 하루에만도 수많은 기사가 쏟아져 들어온다. 그중 어떤 기사는 그냥 휴지통에 들어가기 일쑤다. 그나마 채택된 기사도 신문의 비주얼화에 밀려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잘려나간다. 이렇듯 한정된 지면에 많은 정보를 효율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려면 신문 문장은 간결함을 생명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기사를 쓰거나 고칠 때 선배가 후배에게 “군더더기를 없애라”는 말을 종종 한다. ‘글에도 경제 원칙이 적용된다’는 말이 신문 기자에게 더욱 절실하게 들리는 이유다.
   신문 문장을 자세히 살펴보면 일반 책과 달리 수식어를 자제하고, ‘하였다, 되었다’를 ‘했다, 됐다’로 바꾸는 등 준말로 쓸 수 있는 말은 가능하면 줄여서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딱딱하고 여유가 없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독자에게 좋은 정보를 조금이라도 더 넣어주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기에 겹말과 같은 군더더기는 교열기자에게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우리 언어생활에서는 이 겹말이 무척 많이 쓰이고 있다. 어떤 경우는 겹말이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 예를 살펴보자.
구(句) 형태의 겹말 = 다시 재계약, 함께 첨부하여, 남긴 유산, 뒷 배경, 해묵은 숙원사업, 흘러드는 유입량, 잃는 손실, 따뜻한 온정, 예향의 고장, 새로운 신제품, 밤새 철야조사, 어려운 난국, 좋은 호평, 곧바로 직행하다, 파란 창공, 높은 고온, 아름다운 미녀, 제기한 제안, 계속 속출하다, 쓰이는 용도, 같은 동갑, 그대로 답습하고, 지난해 연말, 매일 매일, 각 국별로, 독자노선의 길을 가다, 먼저 선수를 치다, 맨발을 벗고 뛰어라(나서라), 흰 소복을 입고, 근거 없는 루머, 과반수가 넘는, 공감을 느끼다, 아직 미완성이다, 박수를 치다, 상을 수상하다 ...
한 단어가 된 겹말 = 처갓집, 외갓집, 상갓집, 초가집, 생일날, 고목나무, 포승줄, 뒷덜미, 국화꽃, 매화꽃, 진종일, 온종일...
   우리가 알게 모르게 쓰는 겹말은 이것 외에도 많다. 예전부터 겹말을 얘기할 때 대표적으로 ‘역전앞’을 들었다. ‘역전’이나 ‘역 앞’으로 하면 충분할 것을 같은 뜻의 말을 겹쳐 쓴 것이니 잘못됐다는 비난과 함께 지금도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 설명에서 ‘역전의 잘못’이란 푸대접을 받고 있다. 비난을 받더라도 쓰고 싶다면 ‘역전 앞’처럼 띄어 써야 한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형태인 ‘처갓집’은 사전에서 ‘처가’와 동의어로 당당히 올라 있다. 또 같은 꽃인데도 ‘국화꽃, 매화꽃’은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꽃’은 사전에서 찾아볼 수 없다. 같은 나무인 ‘고목나무’와 ‘가로수나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외에도 ‘동해바다, 서해바다, 하루종일, 농번기철, 해당화꽃’ 등도 한 단어 같은데 사전에 없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무척 궁금하다. 어떻든 사전에 없다면 한 단어로 볼 수 없으므로 띄어 써야 한다. 이것이 우리말에서 띄어쓰기가 어려운 큰 이유 중 하나다.
   필자가 겹말을 표제어로 올린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말에서는 기존의 단어 구성에서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을 때 그 의미를 보완하기 위해 같은 의미의 고유어 성분을 덧붙이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겹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쓰지 말자고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신문 기사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적으로도 글을 쓸 때, 특히 강조하거나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한 같은 뜻의 낱말을 겹쳐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글의 흐름을 해치지 않고 의미 파악이 명확하다면 굳이 겹말을 사용해 지면을 낭비할 필요가 있겠는가. 필자는 불필요한 접속어뿐 아니라 수식어와 서술어도 가능하면 되풀이해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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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