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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수(강원명진학교)
  필자는 현재 강원도 춘천에 소재하고 있는, 시각 장애 학생의 교육을 위한 특수학교인 강원명진학교에서 15년째 특수교사로 근무하면서 학생들의 직업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이 글을 쓰는 필자 역시 시각 장애 1급의 전맹 교사이다. 혹자는 시각 장애 교육이 대단히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단지 일반교육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수업 시간에 판서를 거의 하지 않고, 교과서에도 그림이나 표 등이 극히 제한되는 반면, 그에 상응하는 모든 것들이 글로 풀어져 설명되어 있다는 점 외에는 특별히 다르거나 어려운 점은 없다. 단, 교사는 그림, 표, 판서 등으로 설명해야 할 모든 사항을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교사들 중 본인의 성대가 튼튼하고, 더불어 달변가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시각 장애 특수교육에 관심을 가져 보시기를 바란다.
  30여 년의 긴 세월을 시각 장애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다 보니 어떤 면에서는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으로 많다. 그 중 오늘은 시각 장애인과 대화할 때 우리가 흔히 간과하기 쉬운, 그래서 어쩌면 시각 장애인들에게 본의 아니게 큰 상처나 혼동, 때로는 큰 위험까지 초래할 수 있는 내용들을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그러한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시각 장애인과 대화할 때의 에티켓에 대하여 잠깐 생각해 보기로 한다. 독자 여러분은 이 글을 눈으로만 읽지 말고, 상황마다 눈을 감고 자신이 시각 장애인이 되어 생각해 보기 바란다.


  수학 수업 시간이다. 교사가 삼각형을 가지고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이 변의 길이가 7㎝이고 이 변의 길이는 8㎝이며 그 사이의 끼인 각의 각도가……”
질문 여러분이 눈을 감고 위와 같은 설명을 듣는다면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겠는가? 도대체 7㎝에 해당하는 것은 어느 변이며 8㎝에 해당하는 것은 어느 변일까?
답변/대화방법 당연히 알 수 없다. 따라서 시각 장애인과 대화할 때에는 청자와 화자가 모두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 또는 객체를 지시할 경우 외에는 대명사의 사용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는 점이다. 교사의 손가락을 볼 수 없는 학생들을 향하여 아무리 “너 대답해 봐.”라고 외쳐 봤자 허공에 울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기 때문이다.


  산책로에서. 시각 장애인이 앞으로 걸어가고 있고, 저 맞은편에서 안내자가 시각 장애인의 길을 말로 유도해 주고 있다. 시각 장애인이 지나가는 오른쪽에 뚜껑이 열린 맨홀이 있고, 바로 정면 앞에서 자전거가 달려오고 있다. 안내자는 무심코 외칠 것이다. “자전거가 온다. 오른쪽으로 비켜.”
질문 그 시각 장애인은 어떻게 되었을까? 맨홀과 자전거를 안전하게 피할 수 있었을까?
답변/대화방법 시각 장애인은 맨홀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내자가 시각 장애인을 바라보는 위치에서의 오른쪽과 시각 장애인 본인 위치에서의 오른쪽은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경우 안내자는 방향을 제시할 때 장애인 중심으로 명확히 지시해 주지 않으면 시각 장애인이 경우에 따라서는 큰 위험에 처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시각 장애인이 음성합성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컴퓨터로 신문을 보고 있던 중 다음과 같은 기사가 게재되었다.
 『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트럭과 정면 충돌하였습니다.』
질문 위의 기사 내용으로 볼 때 사고의 원인과 과실은 승용차 운전기사에게 있는가, 아니면 트럭 운전기사에게 있는가?
답변/대화방법 사실 이 내용만 가지고는 시각 장애인은 물론, 비시각 장애인도 사고의 과실자와 책임자를 가려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시각 장애인들이 별 혼동 없이 이러한 기사를 수용할 수 있는 것은 기사와 더불어 제시된 사진 자료 등 당시의 상황을 짐작케 할 수 있는 보조 자료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각 장애인은 시각적 보조 자료의 활용이 불가능하으로 이 기사를 다음과 같이 고쳐 쓰는 것이 의미 파악에 훨씬 더 도움을 줄 것이다.
①『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트럭과 정면 충돌하였습니다.』
②『도로를 달리던 승용차가 중앙선을 넘어, 마주 오던 트럭과 정면 충돌하였습니다.』


  위의 내용에서와 같이 쉼표(,)를 어디에 찍어 주는가에 따라 비록 보조자료가 없더라도 ①은 트럭 운전기사, ②는 승용차 운전기사의 과실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구두점을 확실하고 정확하게 사용하는 국어 습관을 키우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밖에 무절제한 한자의 표기도 오로지 말과 음성만 이용하는 시각 장애인들에게는 그들의 언어 생활에 있어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으므로, 꼭 필요한 경우 외에는 한자의 표기를 자제하도록 하는 것 역시 시각 장애인과의 말과 글을 통한 대화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컴퓨터 음성합성은 ‘喜喜樂樂’의 ‘樂’과 ‘樂山樂水’의 ‘樂’를 ‘낙, 요’로, ‘更新’의 ‘更’과 ‘更迭’의 ‘更’을 ‘갱, 경’으로 구별하여 읽을 수 없을뿐더러, 이러한 사례들은 때로는 시각 장애인을 도와주려는 자원 봉사자마저 당혹하게 만드는 때가 종종 있다.
  따라서 우리가 대화를 할 때, 특히 시각적인 주변의 환경을 고려하기 어려운 시각 장애인들과 대화를 할 때에는 가급적 정확한 표현 방식과 더불어, 아름다운 우리말의 묘미를 잘 살려 마치 말로 한 포기의 그림을 그리듯이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시각 장애인들은 여러분에게 훨씬 더 친근감을 느끼게 될 것이며, 주변 상황에 대한 이해력의 폭도 훨씬 증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