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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계명대학교 한국문화정보학과 2년)
  저는 처음으로 한국에 가려고 하는 생각을 했을 때 한국을 잘 몰랐다. 과연 한국이 어떤 나라일지, 한국어가 어떤 언어인지 아무런 지식도 없이 충동적으로 한국에 와 버렸다. 그리고 그 충동적이기 그지없던 한국행은 내 삶을 통째로 바꾸어 버렸다. 나는 이 선택이 내 인생을 더욱 즐겁게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지도 못했다.
  2년 전 한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나는 21살의 대학생으로 화학을 전공하여 실험실 구석에나 박혀있던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제 난 23살이 되었고 한국문화정보학을 전공하고 한국을 좋아하는 유학생이 되었다. 나는 김치도 먹고 순대는 없어서 못 먹고 트로트 음악도 즐겨 듣는 순도 100%의 한국 중심으로 사는 사람이다. 내 모국어는 영어이지만 이제는 꿈도 한국어로 꿀 정도이다. 내가 이런 엄청난 대 변신이 가능했던 것은 정다운 한국 사람, 한국 생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안녕하세요’조차 몰랐다. 좋게 말해서 나는 하얀 분필로 선이 그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빈 칠판’이었다. 처음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나는 한국어 수업이 어떨 것인지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 때 러시아어를 배웠고 대학에서는 일본어를 교양으로 배운 적이 있어 한국어는 어떤 식으로 수업할지 매우 궁금했다. 나의 한국어 수업에는 유럽, 중국, 미국,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이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날아온 우리들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로 엮게 해 준 것은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 열정’이었다. 3월에 시작한 한국어 수업은 한 학기가 지나 7월이 되어 마쳤을 때 나는 한국어에 대해 겨우 맛만 본 것 같았다. 한국어는 배울수록 감칠맛이 났다. 나는 정말로 빨리, 깊게 한국어를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교환학생을 한 학기 더 연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해 여름, 기숙사에서 나갈 수밖에 없었던 나는 어느 한국 가족과 홈스테이를 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가족 중 누구도 영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밥 한번 먹으려고 하면 내 한국어 문법이 어찌되었건 한국어로 이야기해야 했고, 밖에 외출 한번 하려고 해도 한국어로 그 의사를 전해야 했다. 나는 이런 식으로 살기 위해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 가족은 내게 ‘외국인이라서……’라는 예외를 적용하지 않았다. 나는 한국 사람처럼 대우를 받았다. 여름이 지나고, 나는 한국어 실력이 는 것뿐만 아니라 멋진 한국 부모님과 형, 누나를 얻게 되었다.
  한국 가족과 생활하면서 나는 한국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에게는 인간관계가 아주 중요하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대구는 ‘한 다리만 건너면 누구나 알 수 있다’라고 할 만큼 좁은 곳이며 그만큼 유대 관계도 끈끈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내 친구의 아버지의 제자의 남편의 집’을 임시로 빌린 집이다. 그리고 이사는 ‘내 친구의 친구의 아버지의 차’의 도움으로 쉽게 할 수 있었다. 이런 인간관계의 네트워크에 나도 한번 당해(?) 보면서 한국 사람이 ‘정(情)’ 이라고 부르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내가 한국어를 배우면서 저지른 실수로 내 친구들을 웃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할까 한다. 나는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거리의 간판을 유심히 쳐다 보고 그 뜻을 생각하곤 한다. 그 중에 ‘이가네 해장국집’이나 ‘박가네 돼지갈비’ 등등이 있었다. 나는 그전에도 ‘~가네’ 라는 간판을 많이 봐서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그래서 나는 친구에게 ‘가네’는 한국에서 많이 쓰이는 이름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가네는 이름이 아니고 가족, 가문으로 패밀리의 개념이라고 설명해줬다. 나에게 한국식 이름은 아직도 좀 생소하다. ‘이’는 분명히 성씨이고 ‘가네’는 이름이 아닌가? 나는 아직도 ‘가네’라는 이름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한국어 때문에 실수한 이야기를 하자면 끝도 없을 것이나 이쯤에서 마칠까 한다. 한국 사람은 외국인에게 처음 봤을 때 무뚝뚝하고 항상 싸움을 하고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나는 대구 사람밖에 겪어보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문화적 충격에서 헤어나고 보면 좀 한국 사람을 보는 눈이 뜨인다. 그 무뚝뚝한 가면 뒤에는 무겁게 짐을 이고 가는 할머니의 짐을 선뜻 들어주는 친절함이 숨어 있고, 3년 만에 만난 친구를 거리에서 만나도 어제 헤어진 친구처럼 대하는 진득한 우정이 숨어있다.
  나는 한국과 한창 열애중이다. 방해하지 말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