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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만나다’의 뜻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주로 ‘(누구)를 만나다’나 ‘(누구)와 만나다’의 형식으로 쓰여 ‘친구를 만나다, 어려운 때를 만나다, 친구와 만나다’ 등으로 쓰인다.
  이 ‘만나다’의 어간 ‘만나-’가 더 작은 단위로 분석될 수 있다고 하면 선뜻 이해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현대의 한글맞춤법의 표기로는 ‘만나다’이어서, ‘만나다’의 ‘만나-’가 더 이상 분석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5세기의 표기 형태를 보면 ‘만나다’가 분석될 수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15세기에 처음 나타나는 형태는 ‘맞나다’였다. 그래서 그 어간인 ‘맞나-’는 ‘맞 + 나-’로 분석될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부러 뷘 길 자가더니 世尊 맞나며 즘게 남기 들여늘 구쳐 뵈고 조오니<월인천강지곡(1447년)>
  부러 뷘 길 자 기더니 世尊 맞나며 즘게 남기 들여늘 구쳐 뵈고 조오니 <월인석보(1459년)>
   나가시다가 아바님 맞나시니 두 허튀 안아 우르시니 <월인석보(1459년)>
  常不輕  맞나 敎化 닙 大會예 모니다 <월인석보(1459년)>

  그렇다면 ‘맞나다’의 ‘맞’과 ‘나-’는 무엇일까? ‘맞’은 ‘마주’라는 뜻의 ‘맞’이고, ‘나다’의 ‘나-’는 ‘나다’의 어간 ‘나-’, 즉 ‘나가다’의 ‘나-’에 해당하는 것이다(‘나가다’도 ‘안에서 출발하여 밖으로 가다’란 뜻이다). 그러니까 ‘맞나다’는 ‘마주 나다’란 뜻이다.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마주 대하고 안에서 출발하면 바깥의 어느 지점에서 ‘만나다’란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의 ‘만나다’란 의미가 ‘마주 나가다’의 결과를 지칭하는 것이라면, ‘만나다’란 단어의 초기의 의미는 ‘마주 나가다’란 행위의 시작 부분을 일컫는 것이었다.
  이 ‘맞나다’란 표기는 『월인천강지곡』과 『월인석보』(그것도 『월인석보』의 『월인천강지곡』부분)에만 나타난다. 왜냐하면 어간말음 ‘ㅈ’이 받침으로 표기된 문헌, 즉 종성은 초성을 다시 쓴다는 ‘종성부용초성’(終聲復用初聲)이란 원칙이 적용된 문헌은 『월인천강지곡』과 『용비어천가』 두 문헌뿐이기 때문이다(『용비어천가』에는 우연히 ‘맞나다’란 단어가 쓰이지 않았다). 그 이외에는 종성에 8자, 즉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만 쓰이는 ‘종성독용팔자’(終聲獨用八字)의 규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인천강지곡』 이외의 문헌에서는 ‘맞나다’는 주로 ‘맛나다’로 표기된다.

  네 이제 사 모 得고 부텨를 맛나 잇니 엇뎨 게을어 法을 아니 듣다 <석보상절(1447년)>
  善慧 드르시고 츠기 너겨 곳 잇  가 가시다가 俱夷 맛나시니 <월인석보(1459년)>
  順 이 맛나도 著홈 업스며 거 일 맛나도 怒티 아니야 <월인석보(1459년)>
  조 도을 맛나 혹 겁틱여 자바 가려 거든 <번역소학(1517년)>
   이 봄 二三月 됴 시져를 맛나니 <번역박통사(1517년)>

  이 ‘맞나다’(또는 ‘맛나다’)의 ‘맞’(또는 ‘맛’)은 접두사이다. 접두사 ‘맞’(또는 ‘맛’)은 ‘맞다’(迎)의 어간 ‘맞’에서 온 것으로 추정된다. ‘맞다’(迎)는 원래 ‘마주 나아가 맞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조 나아 맞다’란 용례까지도 보인다. 즉 ‘마주 나가서 맞이한다’는 뜻이다. ‘맞다’(迎)의 ‘맞’과 ‘맞나다’의 ‘맞’은 의미도 동일할뿐더러 성조도 평성으로 같다.

  즉자히 니러 竹園으로 오더니 부톄 마조 나아 마샤 서르 고마야 드르샤 說法시니<석보상절(1447년)>

  ‘맞나다’의 ‘맞’이 접두사임은 이 ‘맞’이 접두사로 쓰인 합성어들에서 알 수 있다. 즉 ‘맛다’(또는 ‘맛다, 맛닫다’)(‘맞닫치다’의 뜻), ‘맛보다’(‘만나다’의 뜻), ‘맛졉다’(‘마주 접다’의 뜻) 등의 예에서 알 수 있다. 이들은 ‘맞다 + 다’, ‘맞다 + 보다’, ‘맞다 + 졉다’가 합쳐진 의미를 가진 합성어가 아니라 여기에 보이는 ‘맞’(또는 ‘맛’)은 모두 ‘마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을 뿐이기 때문에 ‘맞-’은 접두사인 것이다.

  다가  이  맛로 因야 道 일우면 得혼 秘密 마리 도로 本來 아롬 려니와 <능엄경언해(1461년)>
  두 사리 서르 맛다 논 마 스숭과 弟子와 야 工夫ᅵ  가지로 니르니라 <1525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525년 심원사판)>
  살와 히 맛면 두 사리 서르 맛돋다 논 마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472년)>
  願 우리 罪 샤 뎌와 겻구아 맛보게 쇼셔 <월인석보(1459년)>
  모미 늙고 時節이 바리온 저긔  맛보고져 노니 一生앳  누를 向야 열리오 <두시언해(1481년)>
  나가고져 다 니글 빗내 湯休上人을 처 맛보과라 <두시언해(1481년)>
  맛졉다(雙疊起來) <역어유해보(1775년)>

  이 ‘맞’은 오늘날에도 접두사로서 매우 활발히 사용되고 있다. 동사에도 붙고 명사에도 붙어서 ‘마주’ 또는 ‘마주 대하여’란 뜻을 더하여 주고 있다. 동사에 붙는 것으로는 ‘맞겨누다, 맞겨루다, 맞견주다, 맞겯다, 맞닥뜨리다, 맞닥치다, 맞당기다, 맞닿다, 맞대들다, 맞뒤집다, 맞들다, 맞뚫다, 맞맺다, 맞물다, 맞밀다, 맞바라보다, 맞받아치다, 맞버티다, 맞보다, 맞부딪다, 맞붙다, 맞서다, 맞세우다, 맞앉다, 맞옮기다, 맞잇다, 맞잡다’ 등이 있고, 명사에 붙는 것으로는 ‘맞고소, 맞고함, 맞담배질, 맞대결, 맞바둑, 맞대응, 맞돈, 맞바느질, 맞바람, 맞벌이, 맞보증, 맞불, 맞불질, 맞상대, 맞수, 맞장기, 맞장구, 맞총질, 맞흥정’ 등이 있다.
  접두사 ‘맞-’의 근원인 ‘맞다’는 매우 다양한 변화를 거쳐 왔다. 명사형은 15세기에 ‘마’가 사용되었었으나 점차 사라지고, ‘마죵’이 등장하여 ‘마죵>마즁>마중’의 변화를 겪어 오늘날의 ‘마중’이 생겨났다. 부사형은 ‘마조(마죠)>마주’의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마주’가 되었다.

  처 와 傲色 잇더니 濟世英主ᅵ실 마예  놀라니<용비어천가(1447년)>
  니좌랑 셔울로셔 오신다 고 마죵간다 다 <병자일기(1636년)>
  마즁다(相遇) <한불자전(1880년)>
  마중 가다(中路迎接) <국한회어(1895년)>
  어린이들이 수십 명이나마 마중을 나와서 손과 치마꼬리에 매어 달리며 <상록수(1935년)>
  둘히 손 줄 마조 자바 터되더니 <석보상절(1447년)>
   婆羅門이 하 고 잡고 오거늘 마조 보아 무로 그듸 어드러셔 오시니 <석보상절(1447년)>
  모다 마조 안자셔 화 주더니 <번역소학(1517년)>
  즉시 후당에 드러가 마조 안자셔 술 쟝만여 서로 졉여 <삼역총해(1703년)>

  그런데 ‘맞나다’는 15세기부터 20세기까지 ‘맞- + 나다’란 어원의식을 간직한 채 ‘맞나다’나 ‘맛나다’, 또는 ‘맏나다’로 표기되어 왔다.

  셩군 문익졈은 단셩현 사이니 어믜 상 맏나 빙소 겯 업더여셔 바다도적이 라드로 피티 아니니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니찬은 합쳔군 사이라 나히 칠십이 너머셔 부모상 맏나 글 져셔 무덤을 일우고 스스로 밥 지어 졔 초고<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즁의 렴불 권호 맛나  번 치 듣고 <권념요록(1637년)>
  뫼도 서르 맛나 날이 잇니 <노걸대언해(1670년)>
  水旱과 가난  맛나샤 음식을 나오실 제 <어저내훈(1737년)>
  악  앙화를 맛나 손이 너지니라 <명성경언해(1883년)>
  인 이 졀야 가난 이 맛나면 긔 밥을 화주더라 <기해일기(1905년)>

  그러나 이 ‘맞나다’나 ‘맛나다’는 15세기에 자음 동화를 일으켜 ‘만나다’로 변화한다. 그래서 ‘만나다’는 16세기부터 ‘맛나다’보다 훨씬 더 많은 빈도를 가지고 ‘만나다’의 뜻을 가진 단어의 대표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眞實 善知識 만나 젓와 나며 주그며  일 크믈 브터 念 사마 <몽산화상육도보설(1467년)>
  입과 눈과 만나게 면 히 믌 긔운이 의 겨드러 <구급간이방(1489년)>

  이 ‘만나다’는 ‘맛나다’와 함께 오늘날까지 함께 쓰이어 왔다.

  不幸야 사오나온 병을 만나나 <소학언해(1586년)>
  만일의 굴헝의 딤을 만나 힘 긔여 내고<연병지남(1612년)>
  엇던 사을 만나 사의 텨 죽임을 닙어 命이 업이다<오륜전비언해(1721년)>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15세기에는 오늘날의 ‘만나다’란 의미를 가진 다른 단어가 있었다는 점이다. ‘맞보다’가 그것이다. ‘맞보다’는 ‘맛보다’로 표기되었는데, 그 어간 ‘맞보’는 역시 ‘맞-(접두사) + 보-(視, 見)’로 분석된다. 그 뜻 그대로 해석하면 ‘마주 대하여 보다’란 뜻인데, 15세기에는 ‘만나다’란 뜻이었다. ‘맛보다’의 한문 원문이 주로 ‘會, 逢’이기 때문에 그러한 해석이 가능하다.

  願 우리 罪 샤 뎌와 겻구아 맛보게 쇼셔 <월인석보(1459년)>
  모미 늙고 時節이 바리온 저긔  맛보고져 랑노니 一生앳  누를 向야 열리오 (身老時危思會面 一生襟抱向誰開) <두시언해(1481년)>
  忽然  맛보니 내 오래 病 넉슬 慰勞다 (忽會面慰我久疾魂) <두시언해(1481년)>
  길헤 누록 시른 술위 맛보아 이베 추믈 흘리고 封爵을 옮겨 酒泉郡으로 向디 몯논 이 슬놋다 (道逢車口流涎恨不移封向酒泉) <두시언해(1481년)>

  마주 보는 것이 ‘만나다’의 결과이기 때문에, ‘맞보다’란 단어가 발생한 것이었지만, 엄밀히 분석해 본다면 ‘맞나다’와 ‘맞보다’는 그 의미가 달랐다. ‘맞나다’는 순수한 ‘만나다’의 뜻이었지만, ‘맞보다’는 ‘마주 보다’, 즉 ‘마주 대하다’란 의미가 강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맞보다’는 ‘맞나다’와의 경쟁에서 물러나고, 다시 16세기 이후에는 표기법이 ‘맛보다’로 통일되면서 ‘맛을 보다’의 ‘맛보다’에 밀려 사라지는 운명이 되었다.
  오늘날의 ‘만나다’의 ‘만나’는 ‘맞-(접두사) + 나-(出, 生)’와 같은 파생에 의해 만들어진 단어다. 서로 상대방을 향하여 마주 대하고 안에서 출발하면 밖의 어디에서 ‘만나다’란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이어서 ‘맞나다’는 ‘오거나 가서 마주 대하다’란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15세기에는 ‘맞나다’와 ‘맛나다’가 어원 의식을 간직한 채 쓰여 오다가, 15세기에 자음동화로 말미암아 ‘만나다’로 표기되기 시작하였다. 15세기에는 ‘맛나다’가 ‘만나다’보다 훨씬 높은 빈도를 보이다가 16세기에는 ‘만나다’가 ‘맛나다’보다 훨씬 우세한 빈도로 등장하게 되어, 이때부터 ‘만나다’는 그 어원 의식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그 어원 의식을 간직한 채, ‘맛나다’나 ‘맞나다’가 20세기 초까지 쓰여 왔으나, ‘만나다’에 밀려 오늘날에는 ‘만나다’로 통일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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