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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목월의 시 “당인리 근처(唐人里 近處)”에 나타난 흙의 상징성
김옥순(金玉順) 국립국어원
  唐人里(당인리) 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가보아./ 나이는 들고....../ 한 四·五百坪(사오백평)(돈이 얼만데)/ 집이야 움막인들./ 그야 그렇지. 집이 뭐 대순가./ 아쉬운 것은 흙/ 五穀(오곡)이 여름하는./ 보리·수수·감자/ 때로는 몇그루 꽃나무./ 나이는 들고....../ 아쉬운 것은 自然(자연)./ 너그러운 呼吸(호흡), 가락이 긴 삶과 生活(생활)./ 흙을 終日(종일),/ 흙하고 親(친)하고/ (아아 그 푸군한 微笑[미소])/ 등어리를/ 햇볕에 끄실리고/ 말하자면/ 精神(정신)의 健康(건강)이 필요한./ 唐人里(당인리) 변두리에/ 터를 마련할가보아/ (괜한 소리. 자식들은/ 어떡하고, 내가 먹여살리는)/ 참, 그렇군./ 한쪽 날개는 죽지채 부러지고/ 가련한 꿈./ 그래도 四·五百坪(사오백평)/ 땅을 가지고(돈이 얼만데)/ 수수·보리·푸성귀/ (어림없는 꿈을)/ 지친 삶, 피로한 人生(인생)/ 頭髮(두발)은 히끗한 눈이 덮이는데./ 마음이 허전해서/ 너무나 허술한 채림새로(누구나 허술하게 떠나기야 하지만)/ 길 떠날 차비를. 祈禱(기도) 한 句節(구절) 올바르게/ 못 드리고/ 아아 땅버들 한가지만 못하게/ (괜찮아, 괜찮아)/ 아냐. 진정으로 까치새끼 한 마리만 못하게/ 어이 떠날가보냐./ 나이는 들고....../ 아쉬운 것은 自然(자연)./ 그 품 안에 쉴/ 한 四·五百坪(사오백평)./ (돈이 얼만데)/ 바라보는 唐人里 近處(당인리 근처)를/ (자식들은 많고)/ 잔잔한 것은 아지랑인가(이 겨울에)/ 나이는 들고.
(“唐人里 近處(당인리 근처)”, 『난, 기타』, 1959)

  박목월(1917~1978)의 시 “ 당인리 근처”는 1959년에 잡지 『사상계』에 발표한 시인데 그의 나이 44세였다. 사회생활에 지쳐서 예이츠가 ‘이니스프리의 섬’을 찾거나 서양인들이 이상향 ‘아르카디아’를 찾듯이 박목월은 아지랑이가 낀 당인리 근처를 바라보았다. 예전에 우리나라의 율곡 선생이나 퇴계 선생은 시조에서 ‘천석고황(泉石膏肓: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를 몹시 사랑하고 즐기는 성벽)이라고 하여 자신들에게 자연에 돌아가 살려는 병이 있음을 강력히(?) 밝히곤 했고, 중국(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의 사부(辭賦),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노래했다. 이렇듯 인생살이에 지쳐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은 고금 동서를 막론하고 강했다.
  시인이 이 시에서 말하는 것은 단순히 과중한 생활인의 의무와 스트레스 때문에 사회생활에 염증을 느껴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라(그런 점도 없지 않지만), 사람이 흙에서 났으니 다시 흙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우리나라가 지금은 산업사회를 지나 지식정보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원래는 농경사회였고 그 중심에는 흙이 있다. 흔히 흙에서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으므로 흙과 땅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생활의 터전이고 고향이며 안식처이고 죽어서 돌아갈 곳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생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바다[물]에서 나서 바다[물]로 돌아간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시인은 “당인리 변두리에 땅을 마련할가보아”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 이유로 ‘나이는 들고’가 등장한다. 40대가 뭐가 늙었냐고 반문하겠지만, 육이오 전쟁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어 살기가 어려운 1950년대에는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40대였고 환갑을 넘는 것은 큰 축복이었던 시절이었던 만큼 그 당시의 ‘나이는 들고’란 말은 설득력이 높다. 지금의 시인이 살던 용산구 원효로에서 바라보는 당인리 근처는 서강대교와 강변북로를 넘어가는 한강변의 마포구 당인동으로 서울 시내에 속하지만 1950년대에는 당인리 발전소가 있고 채마밭이 펼쳐 있는 상당한 변두리였다. 이 시를 읽으면서 ‘나이는 들고’가 의미하는 속성을 생각해 보면 자신이 짊어져야 할 책임으로 짓눌려 ‘지친 삶’, 어느 정도 인생을 살아 봐서 삶에 대한 환희가 줄어든 자의 ‘마음이 허전’한 ‘피로한 인생’, ‘두발은 히끗한 눈이 덮이는데’, ‘너무나 허술한 채림새로’ 흙으로 돌아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어설픈 모습이 함축되어 있다.
  시인은 계속해서 ‘땅버들 한 가지만 못하게’, ‘진정으로 까치새끼 한 마리만 못하게’ 자신이 ‘(저승)길 떠날 채비’를 아직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아득 바득거리며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정신없이 사는 이들에게 시인은 ‘당인리 근처’를 바라보라고 말한다. 그곳의 이미지는 사람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기도 한 구절이고, 가톨릭의 종부성사(사고나 중병, 고령으로 죽음에 임박한 신자가 받는 성사)이며, 정신의 건강을 생각할 시점임을 알려 주는 안식처의 이미지를 띄고 있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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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