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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음 이야기
  한자어 표기에 나타난 발음의 흔적
최혜원(崔惠媛) 국립국어원
  한글은 글자 하나하나가 소리를 나타내는 표음 문자이다. 굳이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 글자만 보더라도 대략의 발음을 알 수 있는 것은 한글의 표음 문자적 특성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한글 맞춤법은 태생적으로 표준어의 소리를 비교적 충실히 드러낼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한글 맞춤법에 소리대로 적는 원칙 이외에 다른 하나의 원칙이 있는데 바로 ‘어법에 맞도록’ 표기한다는 원칙이다. 여기서 ‘어법에 맞는 표기’란 의미가 잘 드러나도록 표기를 일정한 형태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글자 한 글자가 어떤 일정한 뜻을 나타내고 있는 한자의 음을 표기할 때에 본래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의도가 맞춤법 곳곳에서 엿보인다.
  예를 들어 고유어끼리의 결합이나 한자어와 고유어로 된 합성어에서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날 때는 사이시옷을 받쳐 적지만 다음과 같이 한자어와 한자어의 결합에서는 사이시옷을 붙이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다.

  내과(內科), 대가(代價), 시점(時點), 이권(利權), 초점(焦點), 마구간(馬廐間), 맥주병(麥酒甁), 차이점(差異點)

  이는 사잇소리 현상이 나타나는 발음 현실과 달리 한자 ‘內, 代, 時, 利, 焦, 馬廐, 麥酒, 差異’가 언중의 의식 속에 ‘내, 대, 시, 이, 초, 마구, 맥주, 차이’라는 일정한 형태로 굳어져 있다고 보아 ‘냇, 댓, 싯, 잇, 촛, 마굿, 맥줏, 차잇’으로 쓰는 것을 피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표기가 실제 발음과는 동떨어지게 된다.
  [게, 레, 메, 페, 헤]로 발음되는 한자 ‘계, 례, 몌, 폐, 혜’의 본음 형태를 유지하게 한 것과, 두 번째 이하 음절에서 [이]나 [에]로 단모음화하는 ‘의’를 한자음 본래의 형태를 쓰도록 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즉 표준어의 소리에서 다소 멀어지더라도 한자음을 고정하여 의미가 잘 드러나도록 하는 한글 맞춤법의 원칙이 적용된 예로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한자의 본음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현실에서 나타나는 발음의 변화를 충실히 드러내 주는 표기도 있다. ‘곳간(庫間, 툇간(退間,) 찻간(車間), 숫자(數字), 횟수(回數), 셋방(貰房)’은 한자어의 결합에서 사이시옷을 표기하지 않는 기본 원칙과는 달리, 발음을 반영하여 사잇소리를 표기하고 있다.
  이른바 두음 법칙에 따른 한자어의 표기도 표준어의 발음을 형태 유지보다 우위에 둔 규정이다. 어떤 한자는 단어의 첫머리에 올 때 본음이 아닌 다른 음으로 소리 나는데 이를 표기에 반영하여 한자의 본음이 ‘녀, 뇨, 뉴, 니’인 경우에는 ‘여, 요, 유, 이’로, ‘랴, 려, 례, 료, 류, 리’는 ‘야, 여, 예, 요, 유, 이’로, ‘라, 래, 로, 뢰, 루, 르’는 ‘나, 내, 노, 뇌, 누, 느’로 적도록 한 것이다.

  여자(女子), 연세(年歲), 양심(良心), 역사(歷史), 낙원(樂園), 내일(來日)

  이러한 한자음의 변화를 수용한 표기는 단어 첫머리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나열(羅列), 치열(齒列), 분열(分裂), 진열(陳列), 규율(規律), 비율(比率), 선율(旋律), 전율(戰慄)’ 또한 모음이나 ‘ㄴ’ 받침 뒤에 결합되는 ‘렬(列, 烈, 裂, 劣), 률(律, 率, 栗, 慄)’이 [열], [율]로 소리 나는 현실을 중시한 표기이다. ‘연연불망(戀戀不忘), 유유상종(類類相從), 누누이(屢屢-)’와 같이 한 단어 안에서 같은 음절이 겹쳐 나는 일부 한자어에서도 두 번째 음절의 소리 변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두음 법칙에 따른 표기 외에 다음과 같이 본음뿐만 아니라 널리 쓰이는 관용음을 표기한 예도 있다.

  승낙(承諾) 수락(受諾), 쾌락(快諾), 허락(許諾)
  안녕(安寧) 의령(宜寧), 회령(會寧)
  분노(忿怒) 대로(大怒), 희로애락(喜怒哀樂)
  오륙십(五六十) 오뉴월(五六月), 유월(六月)


  이에 따라 '寧'은 본음은 ‘녕’이지만, 때로는 ‘령’으로 표기되기도 하고 어두에서는 두음 법칙의 적용을 받아 ‘영’으로 표기된다. 이렇게 한글 맞춤법의 한자어 표기에는 한자의 원래 음을 유지하려는 원칙과 한자가 우리말에서 변화한 현실을 반영하려는 원칙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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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