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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국적 기업(외국 회사)의 외래어 표기 실태
한규희(韓奎熙) / 기자, 중앙일보 어문연구소
  교열기자에게 가장 곤혹스러운 것 중 하나가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외국 기업의 상호, 상표와 관련된 외래어 표기 문제다. 정부에서 정해 준 외래어 표기법이 있는데 왜 고민을 하는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그와 관련한 외래어 표기법은 이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을 기준으로 상호와 상표를 정해 쓰고 있는 기업이 과연 몇 군데나 되는지 의심이 갈 정도다. 이러한 현실 때문에 교열기자들에게는 외래어 상호 표기 문제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이다.
  각 신문사의 경제면 기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에 있는 외국 기업의 상호, 상표가 신문사마다 상황에 따라 약간 달리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한 회사의 이름이 복수로 쓰이고 있는 데 원인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 상호: 씨티/시티, 휴렛팩커드/휼렛패커드, 미쉐린/미슐렝, 모토로라/모토롤라, 푸르덴셜/프루덴셜, 듀폰/뒤퐁, 프라자/플라자, 쉐라톤/셰러턴, 메리어트/매리어트, 바이엘/바이에르, 씨멘스/지멘스, 화이자/파이저, 휠라/필라, 인터컨티넨탈/인터콘티넨털, 맥도날드/맥도널드, 쉘/셸, 썬마이크로시스템즈/선마이크로시스템스, 말보로/말버러, 히타찌/히타치, 씨즐러/시즐러, 마르쉐/마르셰, 캐피탈/캐피털, 니꼬동/닛코동, 나쇼날/내셔널, 쁘렝땅/프렝탕, 까르푸/카르푸, 덴쯔/덴쓰, 코메르쯔/코메르츠 등 (상호 중 외래어 부분만 발췌했음. 앞 표기가 한국 지사의 표기 방식이고 뒤가 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임)
  * 상표: 구찌/구치, 입센로랑/이브 생 로랑, 니나리찌/니나리치, 루이뷔똥/루이뷔통, 크리스찬 디올/크리스티앙 디오르, 까뮤/카뮈, 발렌타인/밸런타인 등(상호 방식과 동일)

  앞에서 빗금으로 묶은 비슷한 두 가지 이름은 원래 같은 회사, 같은 상표를 달리 표기한 것이다. 표기 방식은 한국에 있는 지사냐, 해외에 있는 본사냐에 따라 달라진다. 해외에 있는 외국 기업을 표기할 때는 외래어 표기법을 근거로 표기한다.
  그런데 그 외국 기업이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거나 한국 기업과 합작하게 되면 외래어 표기법과 무관하게 한글 상호, 상표를 만들고 등록한다. 이렇듯 회사마다 외래어 표기법을 고려하지 않고 고유의 이름과 로고를 만들어 쓰게 되니 본사와 자사의 이름이 달라지고 결국 한 회사가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의 기사에서 본사와 한국 지사의 이름이 같이 나올 때 발생한다. 한 기사 내에 한 회사의 이름과 상표를 두 가지로 표기할 수 없어 외국 본사의 표기에 맞춰 통일을 하게 된다. 그러면 당장 한국 지사 홍보실에서 항의가 들어온다. 교열기자들은 그들에게 외래어 표기법상 그렇게 써야 올바르다고 설득하지만 회사의 고유 상호라는 이유를 들어 받아들이지 않는다. 차라리 외국 본사 표기를 바꿔 달라고 요구한다. 많은 논의를 거치지만 결국 그들의 요구에 따라 정정해 줄 수밖에 없다. 외래어 표기법이 왜곡되는 현장이다.
  한국 지사의 표기법에 맞춰 통일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럴 땐 외래어 표기법을 알고 있는 독자들로부터 신문에 오자가 났다고 전화가 온다. 어찌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날이면 하루는 임시변통으로 지나가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외래어 표기법은 한국 어문 규정의 한 부분이다. 이 규정은 지키자고 만든 것이다. 그러나 어문 규정에 어긋났다고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정부는 그 회사의 설립 등록 과정에서 외래어 표기법의 경우 국립국어원의 감수를 받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는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하면 그 회사나 국민 모두에 혼란을 주는 것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월간 · 비매품   발행_국립국어원
서울특별시 강서구 방화3동 827   ☎ (02) 2669-9721
제자(題字): 송은 심우식(松隱 沈禹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