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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순(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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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디찬 아침인데
妙香山行 乘合自動車는 텅하니 비어서
나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오른다
옛말속 가치 진진초록 새 저고리를 입고
손잔등이 밧고랑처럼 몹시도 터젓다
계집아이는 慈城으로 간다고 하는데
慈城은 예서 三百五十里 妙香山 百五十里
妙香山 어디메서 삼촌이 산다고 한다
새하야케 얼은 自動車 유리창 박게
內地人 駐在所長가튼 어른과 어린아이 둘이 내임을 낸다
계집아이는 운다 느끼며 운다
텅 비인 車안 한구석에서 어느 한 사람도 눈을 씻는다
게집아이는 몃해고 內地人 駐在所長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를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이러케 추운 아침에도 손이 꽁꽁 얼어서
찬물에 걸레를 첫슬 것이다
(‘八院’, 「朝鮮日報」, 1939. 11. 10.) |
백석(白石, 1912~1995)의 시 「八院 - 西行詩抄 3」은 「西行詩抄 1~4」의 연작물로 1939년 11월 8일부터 11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이 시에서 묘사하는 대상은 어린 나이에 혼자서 먼 길을 여행해야 하는 어떤 여자아이의 이야기다. 계집아이는 승합마차를 타고 慈城으로 가는데, 자성은 여기서 350리 길로서 妙香山行 승합마차를 타고 가서(아마도 묘향산까지 200리 길) 또 150리나 더 가야 하는 먼 길이다. 난방이 안 된 승합마차를 타고 먼 길을 여행하기에는 힘든 몹시 추운 날씨이다. 계집아이의 처지 또한 어린 나이에 남의집살이를 하다 친척 집(삼촌 집)을 찾아가는 처량한 신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전송 나온 어른과 어린아이 둘을 보면서 말하는 이가 상황을 짐작하기로는 계집아이는 일본인(여기서는 내지인으로 표현) 주재소장(일제 강점기에 순사가 머무르면서 사무를 맡아 보던 경찰의 말단 기관) 집에서 남의집살이를 했을 거라는 사실, 떠난다고 마련해 주었을 진진초록빛 새 저고리를 입고 있다는 사실, 그 새 옷에 어울리지 않게 계집아이의 손등은 밭고랑처럼 몹시 갈라지고 터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계집아이가 입은 초록색 저고리는 옛말 속에 나오는 저고리같이 예쁜 새 저고리로 묘사된다. 그러나 아무리 새 옷을 입혀 주고 배웅을 나왔어도 계집아이의 남의집살이가 수월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사실을 터진 손등에서 잘 알 수 있다. 계집아이는 여러 해 동안 그 집에서 밥을 짓고 걸레질을 치고 아이보개를 하면서 추운 날 찬물에 걸레를 빨았을 것이고 이번에 입은 진초록빛 새 저고리는 그 대가일 것이란 사실이 짐작된다. 어린 계집아이인데도 부모 슬하가 아닌 바에는 세상을 살아가기에 공짜가 없다는 사실이 그녀의 터지고 갈라져 피 나는 손등이 증명하고 있다. 밭고랑 같이 터진 계집아이의 손등에서 상하수도 시설이나 난방 시설이 갖추어지지 못한 채 추운 겨울날 찬물로 설거지나 빨래를 해야 했을 1930년대가 짐작된다.
이렇게 고생하고 지냈을 계집아이는 그래도 주재소장 가족과 헤어지는 게 섭섭해서인지, 찾아갈 삼촌댁이 낯설어서인지 아니면 앞으로 혼자 가야 할 여행길이 두려워서인지, 앞으로 살아갈 험난한 인생길이 두려워서인지 승합마차 안에서 계속 울고 있다. 거기에 전염된 듯 승합마차에 탄 다른 사람도 눈을 씻는다. 어린 여자 아이가 부모 덕 없이 남의 집을 전전하는 모습이 추운 겨울날 승합마차 역에서 잘 포착되고 있다.
이 시에서는 이렇게 일제 강점기에 의지할 데 없이 남의집살이를 하던 조선 여자 아이의 딱한 처지를 비교적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의 독자에게까지도 분노, 동정, 슬픔 등의 여러 가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렇게 보호자 없는 어린 계집아이의 딱한 처지는 시대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됨을 이 시에서 잘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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