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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

안상순(금성출판사 사전팀장)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어느 집단에서 얼굴이 가장 예쁜 사람을 가리켜 ‘얼짱’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얼짱’이라는 단어가 최근 국어사전에 올라 항간에 가벼운 논란이 일고 있다. 과연 이 단어를 사전에 올리는 것이 타당한가? ‘얼짱’은 일시적 유행어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이 같은 물음에는 사전이 엄정한 기준 없이 아무 말이나 실었다는 힐난이 들어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얼짱’은 유행어처럼 보인다. 생긴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고 언제 사라질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주로 쓰일 뿐이다. 이런 단어를 사전에 싣는다는 게 무모하기 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속단은 금물이다. 차근차근 따져 볼 일이다. 우선 ‘얼짱’이 일시적 유행어인지 아닌지 주의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유행어란 유행에 따라 빠르게 유포되었다가 단기간 내에 소실되는 단어나 구를 가리킨다. 가령, 수년 전에 드라마 혹은 정치 비리 사건에서 비롯하여 크게 회자했던 ‘잘났어 정말’, ‘뭬야?’, ‘깃털(하수인)’ 등은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이 말들은 한때 폭발적으로 쓰이다가 수개월에서 길어야 1년을 넘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얼짱’ 역시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진 말이긴 하다. 하지만 앞의 유행어처럼 단기간 내에 사라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현재까지도 잦은 빈도로 사용되고 있고 앞으로도 상당 기간 사용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국언론재단의 뉴스 검색 사이트인 카인즈(KINDS)에 따르면 2001년 경향신문에 처음 나타난 이후(인터넷상의 최초 출현은 1999년경으로 추정), 2003년 302건, 2004년 1865건, 2005년 930건의 사용 빈도를 보이고 있다(참고로 같은 사이트에서 2005년에 ‘필통’은 206건, ‘연필’은 1368건의 사용 빈도를 보였다).
  이와 같은 사용 빈도는 ‘얼짱’이 ‘깃털’류의 일시적 유행어와는 현저히 다름을 보여 준다. 4~5년의 생존력만으로도 ‘얼짱’은 이미 한국어의 어휘 목록에 오를 자격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신문이라는 비교적 정제된 매체에 높은 빈도로 쓰이고 있지 않은가. ‘필통’이나 ‘연필’과 같은 단어와 대등하거나 더 높게 쓰였다는 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혹자는 “그렇더라도 좀 더 기다렸다가 싣는 게 옳지 않았을까.”라고 말할지 모르겠다. 하기는 사전이 새 단어를 수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이 통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새말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오늘날 이 주장은 더 이상 금과옥조가 아니다. 10년씩 기다리다가는 자칫 낡아 빠진 사전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사전이 언어 현실을 빠르게 반영하는 게 미덕인 시대가 되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외국의 사전들도 경쟁적으로 신어를 싣고 있다. 가령, 2005년에 개정된 옥스퍼드 영어사전(The New Oxford American Dictionary)에 보면 ‘flashmob(플래시몹)’이나 ‘SARS(사스)’ 같은 단어를 발빠르게 올리고 있다. 이 단어들은 2003년에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예를 보더라도 ‘얼짱’의 등재가 결코 성급했다고 보기 어렵다.
  또 이렇게 흠을 잡을지도 모르겠다. ‘얼짱’은 젊은이들이나 쓰는 속어인 데다가 조어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고. ‘얼짱’이 주로 젊은 층에서 많이 쓰는 속어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국어사전에 표준적이고 품위 있는 말만 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커다란 오해다. 당장 아무 국어사전이나 펼쳐 보라. 속어는 물론, 욕설과 같은 비어나 범죄자들이 쓰는 은어, 심지어 ‘심마니’ 같은 극소수의 사람만이 쓰는 말까지도 올라 있지 않은가. 사전은 말뭉치에 일정 빈도 이상 나타나는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다 수용할 수 있다. 따라서 ‘얼짱’이 속어이기 때문에 사전에 오를 수 없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다만 ‘얼짱’의 조어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은 음미해 볼 만하다. ‘얼굴짱’이 ‘얼짱’이 되는 현상은 국어의 전통적 조어 방식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은 ‘축구 협회’가 ‘축협’이 될 수 있는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한자어의 경우에는 음절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소의 지위를 가지므로 ‘축구’와 ‘협회’에서 ‘축’과 ‘협’을 각각 떼어 내도 핵심 의미가 훼손되지 않지만, 고유어 ‘얼굴’은 더 쪼갤 수 없는 하나의 형태소이어서 ‘얼’만으로는 아무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얼짱’은 전통적 조어 규칙에서 벗어난 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일탈 현상은 원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짱’이 언어 현실로 자리 잡은 엄연한 사실을 가볍게 무시해 버릴 수는 없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얼짱’은 이미 고빈도어가 되었다. 신문, 잡지, 인터넷 등에 무수한 흔적을 남기고 있다. 즉, 언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아 한국어 어휘로 들어온 것이다. 이를 무시하고 조어 규칙 위반을 이유로 ‘얼짱’을 사전에서 내몬다면, 한 시대를 풍미한 중요 단어를 한국어 어휘에서 지우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사전에 이 말을 잘 갈무리해 두면 먼 훗날 우리 후손들은 ‘얼짱’이라는 말 속에서 그 표면적 의미 외에도 한국 사회에 만연했던 외모 지상주의도 함께 읽어 낼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