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을 했어요 우리 시 다시 보기
신문 제목 다시 보기 내가 본 한국 사람, 한국말
말의 뿌리를 찾아서 교실 풍경
문화 들여다보기 일터에서 말하다
만화로 배우는 우리말 국어 관련 소식
우리말 다듬기
김희진(국어생활연구원 원장)
   신문 제목 유형 중 수사법에 따른 것을 지금까지 여러 회에 걸쳐 살펴보았다. 현상이나 사물을 비교하거나 차이 등을 살피는 비유·비교법형, 힘찬 문장으로 인상(印象)을 강하게 하는 강조법형, 용법에 따라 어형을 바꾸는 변화법형, 뉴스의 주인공이 한 말에서 따오거나 이를 다듬은 인용·원용법형, 말로써 재치를 부리는 희언법형(戱言法型)을 한국편집기자협회의 편집상을 받은 제목과 함께 보았다.
   수사법에는 이 밖에도 모순어법형(矛盾語法型)과 형용어구법형(形容語句法型)이 있다. 이번 호에서는 모순어법형 중 반어법형, 역설법형, 모순형용법형을 보기로 한다.


   


   ‘모순어법형’은 수사법에서 의미상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말을 함께 사용하는 유형이다. 이에는 반어법형, 역설법형, 모순 형용법형, 공감각적 표현법형이 있다.


   

   ‘반어법형’은 문장의 뜻을 강조하거나 풍자할 목적으로 반어를 사용하는 유형이다. ‘반어(反語)’란 어떤 말을 그 본래의 뜻과는 반대로 써서 그 뒤에 숨은 반대의 뜻을 강조하는 말이다.

   
(동아일보 이나연 기자 1997. 9. 20.)

   염색이나 사이즈 등에 작은 흠이 있는 신상품을 정상가보다 30∼50% 싸게 팔고 1년 정도 묵은 이월 상품은 더 깎아서 판매하는 의류 상설 할인 매장 타운을 소개한 기사다. 서울의 광진구 건대입구역 근처에 조성된 이 타운이 문정동 · 목동 · 창동 · 연신내에서처럼 여러 연령층이 이용할 수 있을 만큼 물건이 많고 가격이 싸서 별로 흠잡을 것이 없다는 내용이다.
   물건 값이 다른 곳보다 싸서 나쁠 리 없다. 그런데 흠잡을 것이 그것밖엔 없다는 식으로 소개하여 그 판매장이 이용할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음을 드러낸 것이다.


   

   ‘역설법형’은 표면적으로는 모순되고 불합리하지만, 내면에는 사실을 담고 있는 유형을 말한다.

   
(경향신문 강영구 기자 2006. 11. 1.)

   문화방송의 아침극 ‘있을 때 잘해’에서 악역을 맡은 연기자 김윤석 씨와 지수원 씨가 시청자에게서 ‘욕’을 먹을수록 행복하다는 내용이다. 바로 두 악역 배우 덕에 인기가 오르면서 시청률도 덩달아 올라 아침 드라마로서는 드물게 20% 고지까지 돌파했기 때문이다. 이들 연기자는 착한 역으로 나왔을 때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하다가 악역으로 출연하면서 인기가 높아졌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욕’이란 부끄럽고 치욕적이고 불명예스러운 일이지만 그 욕이 자신의 가치를 높임은 물론 출연 작품을 인기 드라마로 만들었으니 배우로서 신나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역설법형에는 이 밖에도 “가진 것이 많을수록 줄 수 있는 것은 적다”(세계일보), “불황이 호기” · “위기가 기회로”(한국일보),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집니다”(스포츠조선), “성인 가요 부르는 아이들”(조선일보), “20대에는 실패의 쓴맛도 달콤하다”(동아일보) 등의 예가 있다.

   
(동아일보 이희성 기자, 1997. 10. 23.)

   대부분의 기업들이 사람을 뽑을 때 서류전형으로 일정 배수의 인원을 선발한 뒤 보통 1, 2차에 걸쳐 면접을 한다. 서류전형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면접 결과가 나쁘면 탈락한다. 필답시험과 서류전형만으로는 적극성, 성실성, 균형 감각 등을 확인할 수 없으므로 기업들이 면접의 비중을 높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응시자들도 첫눈에 느껴지는 인상으로 면접관의 호감을 사기 위해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 이 제목은 첫인상이 곧 최종 인상, 곧 끝 인상이 될 정도로 매우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모순 형용법형’은 사물이 어떠함을 나타내되 앞뒤가 논리적으로 모순되게 표현하는 유형이다.

   
(경인일보 신창윤 기자, 2007. 2. 6.)

   ‘금빛 설원’에 독자의 눈길이 쏠릴 것이다. 설원(雪原)은 “눈이 덮인 벌판”이나 “눈이 녹지 않고 늘 쌓여 있는 지역”이다. 고산 지역이나 남북극 지역에 많이 있고 곡빙하의 빙설을 공급하는 근원이 되기도 하는 설원이 어디에 있든 하얀색임이 틀림없는데 왜 황금과 같이 광택이 나는 금빛으로 표현했을까.
   제19회 통일배 전국 알파인스키 대회 첫날인 2월 5일 여고부 대회전에서 우승한 김수지 선수(남양주 평내고등학교)에게는 희디흰 강원 용평리조트의 설원이 금메달 색깔인 ‘금빛’으로 보였을 것이다. 신창윤 기자는 이 점을 놓치지 않았다.

   
(국민일보 선정수 기자, 2007. 8. 31.)

   한나라당이 경선 이후 화합을 위한 첫 행사로 1박 2일 일정으로 전남 구례 지리산 한 호텔에서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 합동 연찬회를 열었다. 그런데 경선에서 패배한 박근혜 씨 측에 불참자가 많았다.
   ‘화합(和合)’이란 화목하게 어울린다는 말이다. 어울린다는 것은 둘 이상이 있어야 취할 수 있는 행위이다. 그런데 어느 한쪽만 있고 다른 한쪽이 없으면 화합하려야 화합할 수가 없다. 위의 제목에서 보인 ‘공허한’이란 말은 이명박 씨 측이 화합을 시도했지만 화합할 상대가 별로 없었던 상황―상대방의 자리가 빈―을 나타낸 것이다.

   모순 형용법형에는 이 밖에도 “공허한 열창”(한겨레), “금빛 ‘은메달’ ”(스포츠조선), “소로스는 ‘사악한 구세주’ ”(한국일보), “용인된 탈법”(국민일보), “이름만 남은 유명 ‘나루터’”(경향신문) 등이 있다.

   
(경향신문 김석 기자, 2007. 8. 31.)

   “달콤한 사탕”, “달콤한 잠”, “달콤한 이야기”, “달콤한 휴식”, “달콤한 목소리”는 좋은데 “달콤한 전쟁”은 이상하지 않은가.
   진로의 “설탕 뺀 소주” 광고 문구에 대해 두산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며 발끈한 일을 두고 만든 제목이다. 진로가 만든 광고 문구 “설탕을 뺀 껌, 설탕을 뺀 요거트, 설탕을 뺀 주스, 설탕을 뺀 소주”가, 다른 소주 브랜드는 설탕을 사용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두산 측이 주장하였다. 국내 소주업계 1.2위인 진로와 두산이 ‘설탕물’ 공방을 벌인 것이다. 두산 주류 비지(BG)는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19.5%로 도수를 낮춘 ‘참이슬 후레쉬’를 내놓은 진로가 소비자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 줄 우려가 있는 광고로 업계의 빈축을 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김석 기자가 전쟁을 왜 ‘달콤한’ 것이라고 했는지 알 수 있다. 양측 공방이 바로 ‘달콤한 설탕물’ 공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