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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

김지형(건양대 교양학부 교수)

   “눈에 눈이 들어가서 나오는 것이 눈물이냐, 눈물이냐?”

  이 문장에서 ‘눈’과 ‘눈물’은 어떻게 발음해야 할까? 우리말에는 단어에 따라 길게 발음해야 하는 것과 짧게 발음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른바 장단음의 구별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이 필요한 것은 형태가 같은 단어라도 의미가 다른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와 같이, 장단음의 구별은 의미 변별을 쉽게 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라고 할 수 있다.
  장단음을 구별하는 것이 의미를 정확히 변별하기 위한 것이라면 일상생활에서까지 이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굳이 장단음을 구별하지 않더라도 의미 변별을 하는 데 큰 문제가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위의 문장을 보자.
  “①눈에 ②눈이 들어가서 나오는 것이 ③눈물이냐, ④눈물이냐?” 이것을 굳이 “눈에 눈ː이 들어가서 나오는 것이 눈물이냐, 눈ː물이냐?”처럼 장단음 구별을 하지 않더라도 ①과 ③의 ‘눈’을 [目], ②와 ④의 ‘눈’을 [雪]로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다. 물론, ③과 ④는 바뀌어도 상관없다.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말은 다른 언어에 비하여 상황의존성이 강하다. 따라서 어떤 단어가 놓이는 문맥만 제대로 파악되고, 말을 하는 상황만 이해된다면, 심지어 틀리게 말하더라도 의미를 파악할 수도 있다.
  순 우리말에서 장단음 구별은 몇몇 경우에 국한되어 있다. ‘눈[目]과 눈ː[雪]’, ‘말[馬]과 말ː[言]’, ‘발[足]과 발ː[簾]’, ‘밤[夜]과 밤ː[栗]’, ‘솔[松]과 솔ː[刷]’ 등. 이 정도의 구별은 굳이 발음으로 하지 않더라도 문맥에 따라, 상황에 따라 쉽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눈을 뜨다 : 눈이 내리다 말을 타다 : 말을 하다
발이 아프다 : 발을 걷다 밤이 깊다 : 밤을 먹다
솔이 푸르다 : 솔로 닦다

  어떤가? 어떻게 발음하든 이들을 구별하지 못하지는 않을 것이다. 만약 장단음을 구별하지 않아서 이들의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다면, 표기상으로도 항상 장단음 표시를 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더라도 읽어서 의미를 파악하는 데 문제가 없다. 이것은 장단음을 구별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
  장단음 구별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한자음의 경우이다. 한자음 역시 장단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 변별을 위해서는 장단음을 엄격히 구별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갖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길게 발음해야 하는 글자도 짧게 발음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경상도(慶尙道)와 경기도(京畿道)에서 ‘慶’과 ‘京’은 각각 길고 짧게 구별하여 발음해야 한다. 그러나 경상도의 ‘경’도 짧게 발음하는 경우가 있으며, 같은 글자를 쓰는 ‘경희궁(慶熙宮)’의 ‘경’을 길게 발음하기보다는 짧게 발음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듯하다. 이것을 꼭 틀렸다고 해야 할까?
  물론, 장단음을 엄격하게 구별하여 쓸 수 있다면 좋은 일이다. 굳이 문맥이나 상황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의미를 쉽게 변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유어나 한자어를 막론하고 장단음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 일정한 규칙은 없다. 단어마다, 글자마다 일일이 외워야 한다. 원칙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족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방송이나 학교와 같이 정확한 발음이 요구되는 경우는 있다. 그러나 일상 언어생활에까지 이러한 정확성을 강요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본다. 게다가 발음이란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하게 마련이다. 언중들이 그렇게 발음하고, 그것이 일반화되었다면 굳이 ‘원래의 것’을 고집해야 할까? ‘귁’이 ‘중국’이 된 것처럼 발음은 변하는 것이다. 장단음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까지나 중세기적 발음을 가지고 갈 수는 없는 것이다. ‘원래의 것’이라는 기준을 정할 수는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