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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해(경희대 교양학부 전임강사)

  한 언어에서 어떤 출신(어원)이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지를 알려면 신상품이나 가게 이름을 보는 게 빠른 길이다. 새로운 대상에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는 당대 언어공동체의 취향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요즈음 나오는 상품은 ‘글로벌’하게도 ‘영어틱’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 반대편에는 그루터기처럼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온 고유어(토속어)가 있다. 고유어 상품이름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주체)이 자신이 생각하는 ‘순수함, 아름다움’의 정신을 언어에 얼마나 의식적으로 개입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상품이나 가게, 거리 이름에 아름다운 고유어 이름이 붙는 순간 한글운동(고유어 운동)을 하는 분들의 노력이 꽃피어난다.
  그런데 최근 이 사이에 ‘귀환’이라고 불러도 좋을 현상이 있으니, 바로 한자(어)의 귀환이다. 무엇이든지 귀환을 할 때에는 이전 모습 그대로이면 싱겁거나 허탈하다. 모든 언어는 여러 가지 요소가 뒤섞인 잡종(하이브리드, hybird)인데 한자는 현대에 와서는 영어 세력과 고유어 세력 양쪽으로부터 협공을 당하며 뒤로 밀리는 형국이었다. 젊은이들도 달가워하지 않았고 기업이나 동사무소에서도 즐겨 쓰지 않았다. 공적 영역이든 사적 영역이든 한자는 더 이상 21세기와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특히 새로운 이름을 지을 때 두드러졌다. 영어식 이름이 주종을 이루고, 가끔 ‘부드러운’ 고유어가 맛보기로 끼어들어갔다.
  그러다가 한자가 옛날의 인기를 다시 노리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초등학생 대상 한자 열풍이 불어 어느새 연간 수천 억 원의 새로운 사교육 시장을 형성하였다. 신입사원 채용에 한자 능력을 평가하는 대기업이 늘어나고 있고, 한 해 수만 명이 한자능력검정시험을 치르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한자 열풍은 언어공동체의 자발적 필요성이라기보다는 입시나 취업, 지능개발(?) 등 외부적 강제의 성격이 크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수는 없어 보인다. 이러한 외부적 강제의 영향인지 일상생활에서 한자의 노출 횟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
  한자는 때로는 고유어와, 때로는 영어와 뒤엉켜 쓰이며 언어의 잡종성을 보여준다. 이제 한자는 새 단어를 만들 때나 신문 표제를 뽑을 때 중요한 고려 대상이 된다. 자신이 그 동안 천대받아 온 이유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자기‘만’ 유일하게 살아남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영민해진 것이다. 이전에는 다른 출신들과 섞여 쓰이는 것이 순수함을 더럽힌다고 생각했다면, 귀환한 한자는 달랐다. 다른 것들과 절묘하게 엉켜붙음으로써 자신의 유연성을 보여주며, 존재 가치를 드높인다. 어떤 때는 뜻으로, 어떨 때는 소리로 자신의 모습을 변신하며 현실에서 생존력을 높여가고 있다.
  어느 인터넷 쇼핑몰 광고에서 ‘○○에 가면 多 있다.’고 했더니 신문에서 이를 표절하여 ‘TV, 영화, 음악 多되는 PC’라거나 ‘낭만·추억 등 명동엔 多 있다’, ‘불교 상품 多 모인다’ 등 아류작을 쏟아낸다. 어느 지방 방송국 홈페이지에는 ‘야, 문화재 多!’방도 있다. 농협에서는 ‘쌀 사랑 Love 米’ 캠페인을 펼치며, 하루 세 끼 밥을 먹는 ‘米人’이 되라고 한다. 이는 미인(美人)과 소리를 겹치게 함으로써 미인(美人)은 미인(米人)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러한 예들은 이제 흔하다. 사실 동음이의어로 말장난이나 개그를 하고 광고 카피를 뽑아내는 것은 너무나 고전적인 방법이다. 그런데 요즘처럼 한자어를 활발하게 이용한 적은 없었다. 신문을 잠깐 펼쳐보아도 <수석 입학, 졸업도 수석 “女봐라”>라고 하며, <박찬호, 선발 컴백 ‘美'친다>'고 한다. 하단 광고에는 최신 가전제품 광고에 멋진 글씨체로 <내 맘대로 쥐樂펴樂>이라고 한다. 어느 화장품 이름은 <다나한(多娜嫺)>으로 ‘단아한’을 발음대로 적으면서 아주 어려운 한자를 억지로 끼워 맞추며 뜻을 ‘단아하게’ 만들었다. 선술집에 갔더니 벽에 ‘별별세대, 평범한 건 싫다. 우리는 별처럼 別나다. 별’ 하며 새 소주가 우리를 유혹한다.
  이런 예들은 한자어와 고유어 사이에 소리로 다리를 놓아 의미적 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이전에는 못 느끼던 새로운 말맛을 복원시켜 준다. 주름잡혀 있던 관계가 펴지면서 새로운 의미 세계가 열린다. 나는 이런 뒤섞임이 좋다. 중의성은 상상력을 자극하며 우리의 우주를 넓힌다. 말놀이를 통해 의미의 영토는 확장되고 우리의 세계도 넓어진다. 그래서 한자의 귀환은 즐겁고 기쁘다. 원고를 보내고 요 앞 ‘茶스름’에 가서 차 한 잔 기울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