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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1]


   부부간에 서로 부르는 호칭은 최근에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왔다. 한때는 ‘자기’란 재귀대명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에 ‘아빠’로 불러 우리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아빠’는 ‘아기 아빠’란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실상은 1960년대 말에 유흥주점의 젊은 여인들이 나이가 지긋해서 ‘아빠뻘’이 되는 남자 손님을 애교 있게 부르기 위해 ‘아빠’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나온 ‘아빠 안녕’이란 제목의 영화는 어린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오빠’라고 불러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연애 시절에 ‘오빠’처럼 가깝게 느껴져서 부르던 것이 혼인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불러서 된 호칭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사정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호칭을 듣고서는, 한국에서는 ‘근친혼인’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부부간에 사용되는 여러 호칭중에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쓰였던 것은 ‘여보’였다.
   ‘여보’는 사람을 부르는 말로 보통은 부부 사이에 흔히 사용하지만, 같은 또래의 사람들끼리도 사용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른이, 가까이 있는 자기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을 부를 때 쓰이는 말, 부부 사이에 서로 상대편을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여보, 마누라!”, “여보, ○○ 아빠!” 또는 “여보, 주인장!”처럼 쓰이기도 하고, “여보!”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부부간에 쓸 때에는 대체로 단독으로만 사용한다.
   ‘여보’의 어원을 ‘여기(를) 보오’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즉 ‘여보’는 ‘여 + 보’로 분석되고 ‘여’는 ‘여기’의 준말이며 ‘보’는 동사 ‘보다’의 어간 ‘보-’에 어미 ‘-오’가 붙은 ‘보오’가 줄어들어서 된 말이라는 것이다. ‘여보’를 ‘여보(如寶)’, 즉 ‘보배와 같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을 부를 때 쓴다는 주장이 있지만, 무시해도 좋을 견해다.
   ‘여보’가 ‘여기 보오’에서 왔다는 주장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언제부터 쓰이었으며, 그 쓰임과 뜻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는 아무도 검토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여보’의 ‘여’는 과연 ‘여기’에서 ‘기’가 줄어든 말일까? ‘여보’가 등장하던 시기의 ‘여기’는 ‘여긔’의 형태였다. 이것에서 ‘긔’가 생략될 수 있다는 음운론적 조건은 찾기 어렵다. ‘여’가 방언형에서 쓰이는 형태들을 살펴보면 그 해석이 가능하다. 즉 ‘여긔’가 ‘역’으로 축약되고 이 ‘역’이 ‘여’로 변화를 겪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먼 역까지(여기까지) 온 짐잉께 엇찧게 엇찧게라우. 성님댁이로 들래서 갈께라우.” <한국구비문학대계6-2 : 전라남도 함평군 편, 45p>
   이렇다고 이 환약 시 개를 넣고 내 집이 역까지(여기까지) 온짐잉께 찾아가서 집이나 귀경허고 가련 허고 가먼은 내 자식들이 큰 아부지 와겠다고 눈도 떠볼 안 헐 새이요. <한국구비문학대계6-2 : 전라남도 함평군 편, 39p>
   내가 여보소 신경통이 영 도져가주 그 아프든 게 여(여기) 이틀 달어 놓이께 영 다 나아 가니더.”<한국구비문학대계7-10 : 경상북도 봉화군 편, 43p>
   “당신 여(여기) 왜 이래 앉아 있소?”<한국구비문학대계7-10 : 경상북도 봉화군 편, 45p>

   ‘여보’의 ‘보’를 ‘떡보, 울보, 먹보’ 등에 보이는 접미사 ‘-보’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부를 때 ‘떡보!, 울보!, 먹보!’ 하고 부르지 않고, ‘떡보야, 울보야, 먹보야’로 부르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애교로 ‘여보야’로 부르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이것은 ‘여보’가 명사처럼 굳어진 후에 생겨난 말이다. 간혹 어느 지역(예컨대 전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남편이나 아내를 지칭할 때 “우리 여보야가 그렇게 말했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어서 ‘여보야’까지도 명사로 굳어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화났을 때 부르는 ‘여봇’은 ‘여보’에 ‘ㅅ’을 붙인 것인데, 이것은 ‘열중 쉬엇, 차렷’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뜻을 가진 ‘ㅅ’은 동사에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여보’의 ‘보-’는 동사 어간 ‘보-’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여보’가 언제부터 쓰이었을까? 문헌에 ‘여보’의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이다. 다음에 19세기(철종 때)의 춘향전에 나오는 ‘여보’를 살펴보도록 한다.

방자가 이몽룡에게
방 엿오되 여보 도련임 쳔황씨가 목으로 왕이란 말은 들어쓰되 쑥으로 왕이란 말을 금시초문이요 <상,15a>
방 듯고 여보 도련임 졈잔이 쳔자는 웬 이리요 <상,15b>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춘향이 홰을 여 여보 도련임아 굴지 보기 실소 그만 울고 력 말리나 오 <상,37a>
여보 도련임 인자 막 하신 말삼 참말이요 농말이요 <상,38a>
춘향이 다라 여보 도련임 인졔 가시면 언졔나 오시랴오 <상,45a>
이몽룡이 월매에게
여보소 장모 춘향만 다려 갓스면 그만 두건네 그례 안이 다려가고 젼데가 <상,41a>
월매가 이몽룡에게
춘향의 모 기가 막켜 여보 도련임 남우  갓탄 자식을 이 지경이 웬 이리요 <상,43b>
춘향이가 변사또에게
반반사 져 춘향이 졈졈 포악는 마리 여보 사 드르시요 일런포한 부지상사 어이 그리 모르시오 <하, 14b>
춘향이가 월매에게
춘향이 듯고 여보 어만이 져 봉사 좀 불너 주오 <하, 19b>
변사또가 운봉 영장에게
물 업난 져 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를 단이시요 <하, 37a>

   요즈음 여기에 쓰인 용법대로 ‘여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오해를 받을 것이다. 방자가 상전인 이몽룡에게 ‘여보 도련임’이라고 하지를 않나, 춘향이가 남원부사 변사또에게 ‘여보 사’라고 쓰지를 않나, 춘향이가 자기의 어머니에게 ‘여보 어만이’라고 말하지를 않나, 현대국어의 ‘여보’의 용법으로 볼 때 모두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이러한 쓰임새가 통했던 것이다. 즉 아랫사람이나 윗사람 그리고 평교에도 두루 쓰일 수 있었던 호칭이 ‘여보’였다. ‘여보’가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19세기와 이것이 널리 쓰이던 20세기 초에 나타나는 ‘여보’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는 ‘여보’ 자체가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여보’의 뒤에 ‘도련임, 사, 어만이, 운봉’ 등의 다른 호칭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간혹 호칭의 뒤에 ‘여보’가 붙어서 사용되기도 하였고, ‘여보’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였지만 흔한 예는 아니었다.

   시쟝텬 구든  도셔 그릿가 도 여보 듯조시오 <약산동(1913년),49>
   방 듯다가 말을 하되 여보 하날임이 드르시면  놀실 거진말도 듯거소<춘향전(19세기)상,15a>

   둘째는 ‘여보’의 뒤에 호칭을 쓰고 그 호칭에 다시 호격 조사를 붙여서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보 도련임’의 뒤에 ‘-아’를 덧붙여서 ‘여보 도련님아’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춘향이 홰을 여 여보 도련임아 굴지 보기 실소 그만 울고 력 말리나 오 <춘향철종(19세기)상,37a>
   여보쇼 동리 들아 이 아 거동을 보쇼 <김학공젼(19세기),138>
   셔로셔로 의논 말이 여보와라 여슉아 가 틀린 말이 잇거든 아모리 동관이라도 곳 욕을 여라 <남원고사(19세기)3,12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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