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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국어원 국어전문교육과정 특강 - 박갑수 교수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 1. 3. 조회수 3141

■ 제목: 국립국어원 국어전문교육과정 특강 - 박갑수 교수

■ 주제: 언어의 기능과 교양인의 언어생활

■ 분량: 1시간 29분    



국립국어원 국어전문교육과정

박갑수 교수 특강

 

주제 : 언어의 기능과 교양인의 언어생활

박갑수 (명예교수/서울대학교)

 

예, 지금 소개받은 박갑수입니다.

 

어 힘드시죠? 어 며칠이나 교육받으셨어요? (4일째) 4일째 힘들지 않아요? (힘들어요) 힘들어요? 앉아계시는데 본래도 이제 앉아계실 거고 뭐 여기 와서도 앉아있고 에어컨도 잘 나오고(머리가 복잡합니다) 아, 머리가 복잡하다. 강의 내용은 좀 골치 아프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저 뭐야 우리 국어에 관한 얘기를 하면은 별로 그 재밌는 이야기가 아닌데 어때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보세요. (어렵습니다) 어려워. 역시 그쪽하곤 아무래도 거리가 있기 때문에 어려울 거고 내용도 비교적 언어에 관한 것, 언어학에 관한 것들 이런 것들이 많기 때문에좀 어 좀 어려우셨으리라 그렇게 생각됩니다.

 

이 시간에는 이름도 이제 특강이니까 뭐 그렇게 이제 딱딱한 이야기보다는 좀 더 부드러운 이야기, 좀 재밌는 이야기 이런 쪽의 이야기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지금 여러분들에게 나눠드린 그 자료들에는 딱딱한 이야기 이런 것도 많이 있지마는 예화를 많이 들어서 여러분들이 이해하기 쉽게 또 재미를 느낄 수 있게 그렇게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어의 기능과 교양인의 언어생활이라고 이렇게 제목을 붙였는데, 교양인이라고 하는 것은 뭘까요 하는 것부터 우선 얘기를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교양인이 뭐예요? 전주 이 시간에도 여기서 말씀을 드렸는데 모두 아무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그래서 몇 번이나 이렇게 반응이 없느냐고 제가 좀 욕을 했습니다. 교양인은 뭐 말할 것도 없이 교양이 있는 사람이 교양인이죠. 그렇죠? 그러면 교양인이라고 하는 것이 뭐냐. 학문이라든가 아니면 지식이라든가 언어생활을 하면서 생겨나는 이루어지는 그런 품격 이런 것이 교양인이라고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제 교양인에 대가 되는 말, 상대가 되는 말. 이런 말은 따로 단어가 있는 것은 아니고 비교양인, 교양이 없는 사람 이렇게 얘기를 하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교양인이라고 하는 사람들, 학문적으로라든가 그밖에 이제 인간 생활을 하면서 무엇인가 고상한 이런 이제 인품을 가지고 있는 이런 분들, 이런 분들을 지난날은 뭐라고 했을까요? 요샌 교양인 그러는데 지난날은 교양인에 해당하는 그런 분들을 뭐라고 했을까?

 

(지식인) 지식인하고 교양인하고 그렇게 대가 될까? 옛날에는 사람들을 일반적으로 이제 구분을 한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양반과 상인이죠. 상인 대신에 이제 일반적으로 얘기한 말이 상놈 그러지만은, 상인 상민 평민 이렇게 하는데 그래서 그런 것들을 흔히 뭐라고 얘기하면 반상이라고 그랬죠. 반 양반의 반자예요. 그다음에 상은 떳떳상 자, 일반 상인. 상상상 자가 아니라 떳떳상 자, 일반인들. 그렇다면은 교양인이라고 한다면은 이 가운데 상인, 평민이라기보다는 누구라고 할 수가 있느냐 하면 양반이라고 할 수가 있죠. 여러분들은 그러니까 교양인이고 양반이죠. 그러니까 교양인이고 양반인 여러분들을 상대로 해서 교양인의 언어생활에 관해서 좀 얘기해 보자. 우리가 이것을 생각을 해 보자 그런 말씀이에요.

 

그렇다면은 여기서 조금 더 생각을 펼쳐서 양반이라고 하는 것은 뭘까? 양반이 뭐죠? 이렇게 이제 대답이 안 나오면 질문을 구체적으로 이제 지명을 해서 해야 해요. (동반서반) 동반서반이 양반이다. 지금 말씀 잘 해주셨어요. 그렇다면 이 앞의 분. 맨 앞의 분. 고개를 숙이고 계시는데 동반서반이라고 하는 것은 뭘까요? 이렇게 되면 좀 긴장하죠. 나한테 질문을 안 할까 하고. 여러분들 저 고궁에 가보셨죠. 덕수궁도 그렇고 경복궁도 그렇고 가보면은 예를 들면 이제 임금님이 이제 정사를 베푸는 근정전이 있다. 그 앞에 뜰이 있고 그 앞에 이제 일반 이제 평지가 있는데, 가운데 통로 옆으로 비석들이 서 있어요. 맨 앞에 정1품, 종1품, 정2품, 종2품 해서 맨 끝이 정9품 다음에 종9품까지예요. 그러니까 정1품에서부터 이제 종9품까지. 그렇게 되니까 몇 개의 계급이 되는가 하면은 18개의 계급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뭐냐 하면은, 동반서반의 관료들이 쭉 늘어서는 위치를 표시한 거란 말이에요. 다시 말하면 동반서반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동반은 지금 얘기한 고 자리들이 다 비석이 서 있는데 그 자리에 동쪽과 서쪽에 관리들이 늘어서는 거예요. 동쪽에 늘어선 사람들 서 있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문관이에요. 문관. 문관이 정1품에서부터 종9품까지 늘어서 있어. 그다음에 이제 서쪽에 무관이 정1품에서부터 종9품까지 늘어서 있는 거예요. 그래서 동쪽에 있는 동반, 다시 말하면 문관과 그리고 서쪽에 이제 늘어서 있는 무관. 이 두 개의 반열들 다시 말하자면 두 개의 말하자면 클래스죠. 두 개의 클래스를 합치니까 양반 두 개의 반이다 그런 말이에요. 따라서 양반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 하면은 구체적으로 정부의 벼슬을 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양반이에요. 여기에 이제 대부분이 공무원이신데 여러분들이 양반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 양반들, 이 양반들. 이 사람들은 평민하고는 다르죠. 상인하고는 다르죠. 교양 있는 사람들,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식견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말을 하더라도 일반 평민들 서민들하고는 차이가 있죠. 점잖은 말을 하죠. 교양 있는 말을 하죠. 이렇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여기에 계신 분들도 다 양반 쉽게 말해서 이제 공무원들인데 따라서 점잖은 말, 교양 있는 말을 해야겠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교양인의 언어생활을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 하는 것을 얘기하겠다 그런 얘긴데, 우선 그럼 말을 왜 하나 언어생활을 이제 왜 하게 되느냐. 왜 하느냐.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요. 여기서 이제 영어로 얘기하면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란 말이에요.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의사소통은 뭐냐.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거죠.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럼 사상과 감정을 왜 전달하느냐? 왜 하죠? 사람들은 혼자 살 수 없다. 집단생활을 한다. 협동을 한다. 언어라고 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 커뮤니케이션을 왜 하느냐 하면은 협동을 하기 위해서다. 협동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 생활의 대원칙이다. 이 대원칙은 언어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언어생활을 잘해야 한다. 그런 거예요. 지금 이제 사상과 감정을 이제 표현하는 것이 이제 언어다.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다 그랬는데 고 말속에 ‘사상’과 ‘감정’이라고 하는 말을 했어요. 사상 다시 말하면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거죠. 사상을 전달한다는 것은 이런 것을 언어의 기능 가운데 ‘통달적인 기능’이라고 그래요. 통달적인 기능 아니면 지시적인 기능, 보고의 기능이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런 데 비해서 또 하나의 기능이 있는데 사상과 감정을 전달한다고 그랬는데 그 감정을 전달하는 기능이에요. 말을 바꾸면 ‘정서적인 기능’이죠. ‘지금 3시 반이다.’ 이것은 구체적인 의사전달, 사상 감정 가운데 사상 쪽의 전달에 속하죠. ‘야 이 방은 참 시원하다.’ 이건 뭐냐하면 우리의 감정과 태도를 표현하는 거예요. 이와같이 우리의 사상을 전달하는 면하고 그다음에 감정을 전달하는 면하고 이 두 가지로 언어의 기능을 크게 나누어 볼 수가 있다. 이렇게 이제 언어의 기능을 이제 둘로 나누는 그런 방법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이보다는 좀 더 여러 가지로 나누는 그런 방법들이 있어요. 그것이 셋으로 나누거나 넷, 또는 여섯 가지로 나누는 그런 방법들이 있습니다.

 

셋으로 나눈다는 것은 지정의, 지적인 것, 정적인 것, 그다음에 의 의지, 이와 같은 셋으로 나눌 수가 있어요. 이건 말을 바꾸면은 문장에서 평서문이라고 해서 서술해 주는 그런 기능이 하나 있고, 그다음에는 감정을 나타내 주는 그런 기능이 하나 있어요. 소위 이제 성상문이라고 해서 형용사가 이제 따라오는 거죠. 그다음에는 이제 명령문이죠. 이렇게 지정의로 나누는 그래서 세 가지가 되는 그런 것이 있어요.

 

그다음에 이제 여섯 가지라고 하는 것은 야콥슨이라고 하는 이제 언어학자가 나눈 건데 우선 이 여섯 가지 속에는 두 가지가 우리가 다 아는 두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소위 이제 통달적인 기능이라고 하는 것 하나하고, 그다음엔 정서적인 기능이라고 하는 것. 구체적인 지시를 하거나 지적을 하는 기능이 이제 ‘통달적인 기능’이고, 감정이나 태도를 환기하는 것 나타내 주는 것 이런 것은 이제 ‘정서적인 기능’인데 이 두 가지가 있고 이 밖에 이제 네 가지가 있는데 그것이 이제 뭐냐면은 ‘욕구적인 기능’이에요. 명령형과 관계되는 것. 자기의 이제 마음 하고자 하는 것을 나타내는 것, 이것은 명령형만이 아니에요. 예를 들면 뭐가 있나. 애들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어 착하지. 우리 애기 착하지. 우리 애기 안 울지.’ 그 말은 뭐냐? 울지 말라는 거죠. 울지 말라는 거예요. 그렇게 간접적으로 명령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다음에는 이제 ‘친교적인 것’, 사교적인 것 이런 기능이 있죠. 그다음에는 관어적이라고 해서 언어를 언어로 나타내 주는 그런 기능이 있어요. 예를 들면 민주정치는 중우정치다. 민주정치라고 하는 말은 그 뜻은 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이제 다스리는 정치를 그런 정치를 중우정치라고 하는데 중우정치다.’ 이렇게 얘기하거나, ‘까투리는 암꿩으로 부른다.’ 이렇게 어떤 언어를 언어로 설명해 줄 때 이런 것을 ‘관어적인 기능’이라고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기능이 있고 또 하나 이제 마지막으로 하나 더 보탤 것은 소위 ‘시적인 기능’이라고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언어가 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리듬을 준다든가 아니면은 즐거움을 주는, 미적인 면을 제시하는 이런 것이 있다는 말이에요. 예를 들면은 나는 그 노래를 이제 잘 몰라요. 모르지만 싸이가 두 번째 발표한 그 노래가 뭐라고 소개가 되어 있느냐 하면은 많은 운율적인 요소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게 얘기를 해요. 우리 고려의 노래들, 흔히 고려의 속요라고 합니다만은 ‘지로링지로링 링딩딩’ 이런 이제 소위 매끄러운 소리, 운율적인 소리 이런 것들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이런 것이 이제 시적인 기능이에요. 자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또는 나라들이 아주 뭐 싸움을 이제 잘하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제 평화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 이렇게 크게 둘로 나누어지죠. 그래서 흔히 그들을 매파라든가 비둘기파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매파하고 비둘기파 두 파가 있는데 이 두 파를 내가 이제 설명을 하겠다. 그런데 ‘매파와 비둘기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비둘기파와 매파’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어떤 것이 더 좋을까요? 자 또 침묵이에요? 그럼 여기 뒤의 분. 어느 쪽이 더 좋겠어요? (비둘기파와 매파) 왜 그렇죠? 뭐 그러니까 그렇지 뭐. 뭐요? (선순환적인 것을 먼저 하고) 뭐를 하고? (선순환적인 것을 먼저 쓰고 그다음에 악순환적인 것을)아아 선순환적인 것을 먼저 하고 나중에 악순환적인 것을 나중에 했으면 좋겠다. 비둘기를 먼저 내걸고 그다음에 이제 매를 내걸었으면 좋겠다. 뭐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럴 수도 있는데 여기에서 말하는 시적인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뭐냐면은 앞에 나오는 말이 쉽게 말해서 여러 글자가 여러 글자로 이루어진 말, 그것을 앞에 나오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야 운율적인 효과를 드러내요. 비둘기 이건 세 음절로 되어 있단 말이에요. 매는 한 음절로 되어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세 음절로 되어 있는 말을 먼저 하고 그다음에 한 음절로 된 말을 나중에 하는 것이 운율적인 효과를 더 드러내는 겁니다. 이런 거예요. 이런 것. 이런 것이 소위 시적인 기능이에요. 그래서 이제 언어의 기능은 통달적인 기능과 정서적인 기능 둘로 나눌 수가 있는가 하면, 여섯 가지까지 나눌 수가 있다 하는 말씀을 이제 드렸고요.

 

그런데 이와 같은 기능들은 다 각각 그 나름의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서로 혼동을 해선 안 된다. 언어의 기능을 이제 섞박아서 사용을 하면 안 된다. 그건 뭐 그렇게 섞박겠는냐 그렇게 이제 생각이 되실 텐데요. 여러분들 이제 우스갯소리로 달밤에 남자와 여자가 데이트한다는 얘기 그 말을 좀 들어보셨을 거예요. 남자와 여자가 이제 달밤에 데이트를 했어요. 특별히 이제 여자가 달밤에 사랑하는 남자와 같이 데이트를 하게 되니까 기분이 좋았죠. 그래서 하는 얘기가 뭐였느냐 하면 “참, 달도 밝군요.” 그랬어요. 달도 밝군요. 이 말은 참 달이 밝다 그래서 당신하고 나하고 이 달 밝은 밤에 같이 이제 산책을 하는데 참 기분이 좋다. 정말 당신에 대한 이제 그 사랑의 마음이 더 간절해진다. 이런 뜻을 담은 말이에요. 그런 느낌을 나타내 주는 말이죠. 그런데 남자는 뭐라고 대답을 했다고 하는가 하면은 “보름달이라 밝지.” 그랬다고 그래요. 그랬을 때 여자는 참 마음 상했겠죠. 남자는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던 정서적인 기능으로 이 말을 여자의 말을 받아들이질 않고 소위 통달적인 기능으로 받아들인 거예요. 달이 밝다는 것을 정말 조명 도구가 어제보다 오늘이 더 밝다 이런 뜻으로 받아들였단 말이에요. 통달적인 기능의 언어 기능으로 이제 받아들였어요. 그렇게 되니까 여자는 김이 샜죠. 그래서 어쩌면 둘 사이에 연애는 그것으로 끝이 났을지도 몰라요. 이렇게 답답한 남자하고 같이 이제 연애를 하고 평생을 살 순 없다고 해서 헤어졌을지 모른단 말이에요. 이런 것이 뭐냐. 언어의 기능을 혼동한 거예요.

 

또 하나의 얘기를 할게요. 개화기 때에요 개화기 때. 그때 이제 선교사들 이제 많이 들어왔는데 어떤 선교사 목사라고 해도 좋아요. 이 양반이 이제 심방을 가게 되었단 말이에요. 심방을 가는 목사님을 본 신도들이 모두 가 “목사님 어디 가세요?” “목사님 어디 가세요?” 하고 이렇게 인사를 했다. 그러니까 이 신부는 어디 간다고 하는 설명을 하나하나 하는 거예요. 어디 사는 신도가 지금 병환이 나서 거기에 이제 문병차 심방을 가는 거다. 이렇게 이제 설명을 하느라고 이 목사는 정말 갈 길을 제대로 가지 못했다 하는 얘기가 구체적으로 책에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은 뭐냐 우리가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물은 것은 또는 그 신도가 어디 가십니까 하고 묻는 것은 “당신 어디 가요? 국립국어원 가요? 아니면 세무서 가요?” 이렇게 물어본 것 아니에요. 목사님 어디 가시는군요. 저 목사님 알아요. 잘 다녀오셨으면 좋겠어요. 이런 감정의 표시를 한 겁니다. 다시 말하면 정서적인 기능으로 말을 한 건데 목사님은 그것을 잘 모르고 통달적인 기능으로 이제 받아들인 겁니다. 그러니까 언어소통이 제대로 안 됐죠. 그러니까 통달적인 기능으로. 그러니까 아까 거기서 커뮤니케이션의 마지막 목표는 뭐라고 했는가 하면 코퍼레이션이라고 했는데 협동이 제대로 안 된 거예요. 언어 행동이 제대로 안 된 거죠.

 

따라서 이와 같은 언어의 기능을 제대로 알고 그런 언어의 기능이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잘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언어의 기능 가운데 대표적인 기능 셋을 들 수가 있는데, 하나는 ‘과학의 언어’고 하나는 ‘시의 언어’고 하나는 ‘일상언어’가 되겠는데 과학의 언어는 통달적인 언어 이것이 가장 잘 쓰이고 있는 예에요. 만약에 여기 과학의 언어에서 의미전달을 하는 정보적인 이런 것이 제대로 안 된다면은 그 과학적인 연구 성과는 제대로 나올 수가 없을 거예요. 그런 데 비해서 이제 시는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 이런 것을 전달하자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자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정서적인 기능의 가장 대표적인 사용 영역이 시다. 그러면 일반 언어생활은 어떠냐. 이 둘의 중간에 해당한다. 둘의 중간에 해당하는데 그러면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것은 어느 쪽이냐 하면은 사실을 전달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감정을 전달하는 그래서 공감을 하게 하는 그런 것이 주가 된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이제 마지막 결론도 이렇게 낼 텐데요. 언어의 정서적인 표현 이런 것을 잘하도록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더구나 공무원의 세계, 민원인들하고 상대하는 이제 여러분들의 위치로 봤을 때 이런 정서적인 표현을 잘해야겠다 하는 것을 앞에 이제 서론으로 이렇게 내려깔고 그다음에 구체적으로 바람직한 효과적인 표현에 관해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언어의 기능은 아까 얘기하듯이 둘 내지 셋 여섯 가지쯤으로 나눌 수가 있다고 그랬는데 여기서는 두 가지로 나누는 분류의 방법 이것을 중심으로 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제 통달적인 그런 이제 언어 표현을 먼저 보기로 하는데 이거는 무엇보다도 언어를 사실과 부합하게 표현을 해야 한다 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요소예요. 그 말은 말을 바꾸면은 지도가 있습니다. 지도는 뭐 하는 거냐면은 실제의 세계를 지도를 그려서 대신 나타내는 거예요. 그래서 이제 어 서울에서 이제 북쪽으로 얼마를 가면 신의주가 있고 신의주에서 또 얼마를 가면 선양이 있고 거기서 또 얼마를 가면은 모스크바가 있다. 이런 것을 우리가 지도를 통해 가지고서 알 수가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저 밑에 호주가 있고 호주보다 더 내려가서 뉴질랜드가 있다. 이런 것을 지도를 통해서 안다 그 말이에요. 그러나 지도는 실제의 사실은 아닙니다. 대신 나타내 주는 거죠. 그와 마찬가지로 언어라고 하는 것도 현실 세계, 사물 세계 그것을 외재 세계라고 그러는데 우리 바깥에 있는 세계 그것 자체는 아니죠. 대신해서 나타내 주는 거죠. 어 시계라면 시계라고 하는 말이 시계 자체는 아니라는 거예요. 개라면 개라는 기호지 그것이 개 자체는 아니다. 근데 때로는 언어를 실제 사물로 오인하는 경우도 있어요. 에이 뭐 그럴 수가 있을까 하실지도 모르는데 원시민족일수록 이런 것이 많습니다. 어 옛날에 어떤 민족은 자기의 이름을 땅에다 쓰고 그것으로 모래를 덮으면 자기 죽는다고 생각했어요. 아니고 상대방이 자기 이름을 부르면 자기 혼이 빠져나간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절대 이름을 안 부르는 거예요. 이런 것은 언어와 사물의 세계, 이것을 혼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아마 이 가운데 많은 분들이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을 텐데 그 전에 이제 ‘딸’이라고 하는 방송 드라마가 있었어요. 거기에 이제 안은숙이라고 하는 여자가 이제 나왔는데 그 여자가 그 드라마에서 집안이 어려워 가지고서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는 그런 과정이 이제 그려졌어요.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안은숙이의 학비를 대겠다고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이런 것이 언어와 현실 세계 이걸 착각을 하는 거예요. 미국에선 어떤 일이 있었느냐 하면 UFO가 뉴욕에 이제 침공해 들어온다는 드라마 때문에 뉴욕 시민들이 피난을 가게 되는 그런 사태가 빚어졌어요. 이게 언어와 사물의 세계를 이제 어 혼동을 하는 거죠. 따라서 언어는 사물의 세계가 아니다 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고, 되도록이면 언어를 사용할 때에는 사물의 세계에 부합한 그런 표현을 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서 그것이 외재적인 사고예요. 자 이 세상에서 제일 높은 타워는 어떤 타워일까요? 구체적으로 난 잘 모르겠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남산타워가 세계에서 가장 높대요. 왜 그래요? 남산 위에 서 있기 때문에 가장 높다는 거예요. 그건 말이 안 되지. 사물의 세계를 제대로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이에요. 남산의 높이가 262미터 돼요. 그걸 빼야 남산타워의 높이가 제대로 나오는 거죠. 근데 262미터라고 하는 남산의 높이까지 플러스 해 가지고 남산타워가 세계 최고로 높은 타워다 그건 말이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사물의 세계를 제대로 안 보는 거구나. 에 따라서 사물의 세계를 제대로 보고서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표현을 해야 정확한 표현이 된다.

 

여기 대부분이 이제 공무원들이신데 어떤 플랜을 이제 만들 때에 수요조사를 합니다. 그 수요조사가 사실에 부합해야 제대로 된 결과를 얻어낼 수가 있죠. 아 쉽게 말해서 공항에 수요조사 같은 것을 많이 했어요 하고서 지방 공항을 많이 세웠어요. 그러나 어떻게 됐습니까? 사실을 제대로 못 봤다 그 말이에요. 못 봤기 때문에 어떻게 됐느냐? 지방 공항이 개장 휴업 상태로 많이 빠졌다. 이런 것은 외재 세계, 바깥의 세계 이것을 제대로 안 봤기 때문이에요. 따라서 바깥의 세상을 제대로 보고 거기에 부합하는 표현을 해야 한다. 거기에 부합하는 표현을 해야 한다 하는 표현의 방법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뭐냐 하면 보고의 언어예요. 보고해 주는 말이죠. 그래서 이제 남산타워 얘기도 했지마는 이런 것도 마찬가지예요. 어 한국은 단일민족 국가다. 그렇게 얘기해요. 우리 뭐 끊임없이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여기에 앞에 여자분 우리 정말 단일민족이에요? (그렇게 배웠어요) 어 그렇게 배웠는데 본인은 그렇게 생각 안 한다는 얘긴가 그렇다고 생각한다는 얘긴가. (그런 걸로 알고 있어요) 어 그런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절대로 단일민족 아니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딴 민족으로부터 우리 민족으로 귀화됐죠? 자 구체적인 뭐 예를 들어보면 자기네 조상의 족보를 이제 펼치면은 우리 조상은 본래 중국 사람인데 한국으로 귀화했다 라든가 이런 분들이 좀 많이 있어요. 많아요.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나 할까요? 에 고려대학 총장을 지낸 이제 홍일식 선생이 있는데 그 양반이 홍일식이라고 얘기했듯이 홍 선생이란 말이에요. 에 경기도 남양 홍씨예요. 그런데 그 양반 스스로 얘기하기를 뭐라 그러느냐면 자기는 남양 홍씨라고도 그러고 당 홍이라고도 한다 그래요. 당나라 당 자예요. 당나라에서 온 홍씨다 그래서 당 홍이라고 한다는 거죠. 이런 식이에요. 김수로 부인 인도에서 왔잖아요 허씨. 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이 한민족은 아니었다 그 말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단일민족이라고 일반화해서 이제 얘기를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것은 사실에 부합한 표현이 아니죠.

 

에 그래서 이제 보고의 언어를 하는 것 이것이 이제 가장 객관적인 세계에 이제 부합하는 그런 표현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예를 들면 우리 회사는 전방으로 100미터쯤 가셔서 우회전을 하세요. 우회전해서 50미터만 가세요. 그리고 거기서 이제 다시 좌회전해서 30미터만 가세요. 그러면 거기에 검은 빌딩이 나타날 겁니다. 그게 저희 회삽니다. 이렇게 설명을 하죠? 이건 객관적으로 몇 미터 몇 미터 어디로 어떤 방향으로 해서 누구나가 그 말대로 하면은 그 회사를 찾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게 보고의 언어예요. 실제로 증명할 수 있는 언어, 이게 보고의 언어예요. 이렇게 얘기할 때 객관성을 이제 띠게 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언어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추론을 하거나 아니면 단정을 하거나 이렇게 되면은 그것은 제대로 보고하는 언어가 아니다 라는 말씀을 드릴 수가 있어요. 추론, 어 미루어서 어떤 결론을 내는 거죠. 이건 일반적으로 제대로 된 결론을 내질 못합니다. 전문가나 제대로 이제 추론을 할 때 올바른 결론을 내릴 수 있지,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결론은 거짓이 되는 거죠. 그다음에 단정, 무엇 무엇이다라고 하는 단정 어 이것은 사실에 대한 표현이기보다는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보는 거예요. 어 특별히 영어에서 be 동사를 사용한다고 해서 be 동사의 용법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사용할 때는 조심해라 하는 겁니다. 예를 거기 이제 들어드린 것이 아 뭐 “걔는 깍쟁이다.”라는 것은 깍쟁이라고 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알려주기보다는 나는 걔가 깍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느낌이 든다. 그래서 이제 걔가 난 싫다 이런 감정의 표현이에요. 남자는 뭐 늑대다. 여자는 뭐 여우다. 이런 것들도 다 사실의 표현이기보다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느껴진다.’ 그런 거죠? 만약에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늑대와 여우가 결혼해서 살 필요는 없죠. 에 그다음에 이제 ‘보고의 언어를 이제 사용해야 한다.’하는 말씀을 드렸고.

 

그다음에 이제 비총칭적인 사고를 해라 했는데 비총칭 비자 빼보면 총칭적인 사고가 되는데 ‘모두가 어떻다.’ 하는 것이 총칭적인 사고예요. 요새 젊은 애들은 다 버릇이 없다. 이런 것이 이제 총칭적인 사고다. 모든 A는 B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 이것이 이제 총칭적인 사고다. 이와 같은 것은 역시 사실에 부합한 교육이 아니냐. 유태인은 주장로다라고 흔히 얘기합니다. 유태인이 다 구원밖에 모르느냐. 그렇진 않죠. 과학자도 있죠. 사상가도 있어요 ‘다’라는 말을 붙여선 안 된다. 다 모두가 늘, 뭐 이와 같이 전체를 나타내는 표현 이런 것은 사실에 부합한 표현이 아니다. 따라서 이런 표현을 하지 말아라. 어떤 표현을 하면은 그 표현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딴 면도 얼마든지 있다고 하는 것. 다시 말하면 A라고 얘기했다면 A 외에 뭐 B, C, D, E 등등 이와 같은 여러 가지가 더 있다고 하는 사실, 그것을 늘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잘 압니다. 장님의 귀를 만져보면서 뭐라 그래요? 부채 같다고 그럽니다. 귀를 만지고 부채 같다고 하면서 그걸로 끝나면 좋은데 코끼리는 부채 같다 이렇게 된다는 거죠. 부분을 가지고 전체로 파악을 한 거죠. 기둥을 만지고 기둥을 만지고 아니라, 다리를 만져보고 기둥 같다라고 한다는 것 그것 자체는 좋다. 그러나 코끼리는 기둥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그거는 안 된다. 부분을 전체로 이제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예를 들면 지금 얘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부채다, 기둥이다. 이 밖에도 코끼리를 나타내 주는 여러 가지 특성이 있다고 하는 것 그것을 항상 유념해라 하는 거예요.

 

거기서 더 나아가서 날짜 데이트 이런 것들을 염두에 두어라. 예를 들면 2013년 뭐 6월 15일의 어떤 상황은 아니면 어떤 사물은 하루 이틀 사흘 뒤에도 똑같으냐 하면 아니에요. 다르다고요. 예를 들면 박갑수다. 그러면 박갑수가 1950년대의 박갑수하고 2013년대의 박갑수하고 박갑수 같지를 않다 그 말이에요.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육체적인 조건도 다르고 다른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예를 들면 박갑수 1960하고 이렇게 데이트를 날짜를 붙여서 표현할 때 그게 정확한, 객관적인 표현이 된다. 이렇게 데이트를 표시하라 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객관적인 표현을 하려면 차이점을 언제든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는 말씀을 드리고요.

 

그다음에 이제 다채적인 사고인데 이건 어떤 것을 가치가 하나밖에 없다 또는 두 가지밖에 없다 또는 세 가지밖에 없다 이렇게 몇 가지의 가치밖에 없는 것을 생각하지 말아라. 여러 가지의 가치가 있다고 하는 것을 늘 유념을 해라. 원시 민족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좋았어요. 소위 일치적이라는 말까지 하는데 하나의 가치밖에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나는 먹어야 산다. 그래서 먹는 것만 생각하는 거죠. 그렇죠. 새들도 보면 하루 종일 뭘 먹고 있어요. 걔들은 먹는 것 외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 더 올라가면 두 가지로 생각한다. 이치적이다. 사느냐 죽느냐는 거예요. 먹느냐 먹히느냐 하는 거죠. 바르냐 바르지 아니하냐 아름다우냐 아름답지 아니하냐 이렇게 둘로 생각하는 거예요. 말을 바꾸면 흑백논리죠. 이렇게 이제 흑백논리를 빠지게 되면은 그것도 객관적인 세계를 제대로 이제 표현한 것이 못 된다. 아 예를 들어서 목욕물이다. 목욕물 탕에 이제 들어간 아버지가 어우 시원하다라고 했다고 그러죠? 그랬더니 아들 녀석이 이제 시원한지 알고 들어갔다가 뜨거우니까 뭐라 했대요? 세상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고 그러고. 그건 뭐냐? 이때의 시원하다하고 이제 뜨거운 거하고는 다른 차원의 이제 얘기지만 어떤 물 그것을 A라는 사람은 뜨겁다고 하고 B라는 사람은 왜 차다고 뜨거운 물 더 넣으라고 이렇게 얘기한단 말이에요. 물에 차다 뜨겁다 이렇게 한 두 가지의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고 무수한 차이가 있다는 거예요. 등급이 있다는 거예요. 아 그래서 이런 것들을 뭐 간단하게는 다섯 가지로 이제 차이를 구분한다거나 아니면 일곱 가지로 이제 구분한다거나 뭐 이런 것들을 볼 수가 있어요. 자 우리가 잘 아는 무지개, 무지개를 우리가 칠 색이라고 하지마는 우리 칠 색이라고 그래요? 일곱 가지 빛깔이라고 그러죠?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부르느냐? 아니에요. 바사이족 같은 민족은 둘로밖에 안 본다 그 말이에요. 붉은 빛깔 계통, 푸른 빛깔 계통. 소나와 같은 것은 삼 색으로 본다. 세 가지 빛깔로 본다. 이렇게 달라요. 가치를 현상을 좁게 보는 사람도 있고 여러 가지로 이제 나눠보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되도록 여러 가지로 나눠봤을 때 사물 세계에 근접하게 된다. 그럼 되도록이면 사물세계에 근접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했으면 좋으냐. 거기에 이제 소개해 드린 것이 논어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눌어언인어행 눌 자는 말 더듬을 눌 자예요. 말할 때는 더듬고 행동할 때는 민첩하게 해라. 이때의 더듬는다는 꼭 더듬는다는 말이 아니고 좀 천천히 말을 해라. 천천히 말을 하라는 것은 좀 생각해 보고 말해라. 누가 어떤 이제 말을 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말고 좀 생각해 보고 반응을 보여라. 그렇게 생각을 해 보고 말을 했으면 그다음에 행동은 실천에 옮겨라 말대로 실천에 옮겨라 이런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아 일화 하나 황희 정승의 얘기예요. 어 황희 정승은 여기서 말하는 소위 이제 가치적인 여러 가지 가치를 인정하는 그런 표현을 한 거예요. 어떤 사람이 “대감님, 이건 이렇고 이건 이렇습니다.” 이렇게 이제 말씀을 드려요. 그러면 황희 정승이 “오 네 말이 옳다. 그렇게 해야겠구나.” 이렇게 이제 얘기를 해요. 그랬더니 이제 또 딴 친구가 “아닙니다. 대감님, 이건 이렇고 이렇고 이렇기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합니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니까 황희 정승이 “어어, 참 그렇게 해야겠구나.” 다시 말하면 그때 이제 한문 표현을 하는데 연이시하라 A라고 하는 사람이 말할 때도 “네 말이 맞다.” B라고 하는 사람이 얘기할 때도 연이시하라. “네 말이 맞다.”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제 삼 자가 듣자니까 좀 이상하단 말이야. A의 얘기하고 B의 얘기하고 완전히 다른 얘긴데 반댄데 둘 다가 맞다는 얘기가 어떻게 된 거야? 그래서 “아니, 대감님 A하고 B의 얘기가 다른 얘긴데 어떻게 다 옳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랬더니 황희 정승은 요원이시하라. “네 말도 맞다.” 뭣한 사람 같으면 그를 바보라고 했겠지마는 대감 정승인 황희 정승의 말이니까 새겨듣죠. 이것은 A라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땐 그 사람 말이 옳고 B라는 입장에서 봤을 땐 그 사람의 말이 옳고 C라는 입장에서 봤을 땐 C라는 말이 옳다 그 말이에요. 그래서 한 가지로만 보지 말아라. 가치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다. 다채적인 사고를 해라.

 

그다음에 이제 동일시의 판단인데 같다고 생각하는 것 그건 바람직하지 않다. 차이가 나는 것을 무시하는 것이다. 아니면 높은 추상에 의해 가지고서 동일시하는 것이고, 아니면 아까 얘기한 바와 마찬가지로 가치를 하나나 둘이나 몇 가지 안 되는 가치로 봐 가지고서 동일시해버리는 거예요. 이건 바람직하지 않다. 어 우리는 여러 번 개헌을 했습니다. 개헌을 했어요. 헌법을 고쳤어요. 근데 그때마다 뭐라고 했느냐? 개정한다고 그랬어요. 개정. 개 고칠 개, 정 바를 정이에요. 정말 개정했을까요? 아니다 그 말이에요 아니다. 개정 안 할 때도 있다. 개악할 때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데모가 나고 소요가 일었다는 거예요. 이런 것이 객관적인 사실을 제대로 보지 아니하고 동일시한 거예요. 어 거기에 이제 시조 하나를 소개해드렸는데 어 예를 들면은 모란은 화중왕이요. 향일화는 충효로다. 모란은 꽃 가운데 왕이고, 향일화 해를 따라가면서 이제 피는 거죠 지금? 해바라기? 향일화는 충효로다 그랬는데 모란은 화중왕, 여기 동의 안 하는 사람도 많이 있을 거예요. 여기서 이제 서양 사조가 뭐 물밀듯 들어와서 모란은 화중왕이 아니라 장미가 화중왕이라고 하는 사람도 많다 그 말이에요. 이제 이런 것은 앞에서 얘기한 이다라고 하는 단정을 통해 가지고서 동일시한 거예요. 이런 동일시는 감정을 표시하는 것이지 구체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통달적인 표현 여기에서는 이런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이와 이제 대가 되는 것 그것이 이제 정서적인 표현이죠. 감정이나 태도를 환기한 것, 이것이 이제 정서적인 표현인데 이것은 이제 동일시함으로 의해서 일반화가 되는 거예요. 중국 사람은 더럽다. 중국이란 더럽다. 그렇게 얘기하죠? 진짜 중국인은 더러울까? 시진핑이도 더러울까? 그런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죠.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을 뭐라고 하느냐 더럽다고 한다. 기다나이 조센징, 더러운 조선 사람들. 여러분들 더러운 조선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겠지.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도 있고 안 그런 사람도 있죠. 여기에 구체적인 또 시조 소개해드리는 것이 님을 데리고서 이제 산에 가서 못 살겠다. 왜? 두견새 소리가 이제 시끄러워서 못 살겠다. 물에 가서 살려 했더니 물에도 못 살겠다. 왜? 뱃사공이 어위와 지국총, 배 젓는 소리 어기여차 하는 소리 때문에 못 살겠다. 그래서 나는 산도 물도 말고 어디 가서? 들에 가 살려 하노라 이런 거예요. 이것은 산에도 못 살겠다 들도 못 살겠다. 나는? 아니죠. 뭐예요? 산에도 물에도 못 살겠다. 나는 들에 가 사는 것이 좋겠다. 이렇게 딴 데 가서는 못 살겠고 들에 가서 사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감정을 표시하기 위해서 여기도 안 된다 저기도 안 된다라고 정서적인 표현을 한 겁니다. 이렇게 이제 정서적인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선 이렇게 이제 표현하는 것이 좋죠. 그러나 논리적으로 따지면 남산의 뭐 두견새 소리가 시끄러워서 못 살겠어? 한강이 뱃사공의 어이와 지국총 지국총 어이와 소리 때문에 못 살겠어? 아니죠. 특별한 어떤 산, 특별한 어느 물 그것을 일반화해서 동일시한 거예요. 감정적으로 그런데 가서 못 살겠다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런 표현을 한 겁니다.

 

그다음에 이제 편향인데 편향은 한쪽으로 쏠리는 거죠. 이런 것은 우리가 신문을 통해서도 많이 볼 수 있죠. 야당지 소위 여당지라고 하는 것들 이런 것들은 어떤 사실을 표현할 때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균형이 맞게 표현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한쪽으로 쏠려서 표현을 하는 거예요. 그게 편향이죠. 어디엔 삼천 명이 모였다고 하는데 어디엔 뭐 만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편향이죠. 이런 편향의 대표적인 것이 정화홍령전의 계모 허씨의 모습이라든가 흥부전에 놀부의 심사라든가 이런 것에 가장 잘 나타나 있어요. 못생겼다라는 것을 나타내 주기 위한 것이 이제 계모 허씨의 모습에 그린 것이고 그다음에 심사가 못됐다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표현한 것이 바로 흥부전의 놀부의 모습이란 말이에요. 자 장화홍련전의 모습을 보면 아직 못생겼는데 보는 환자 환자가 될 정도로 늘어졌어요.

 

눈은 통방울 봉으로 만든 이제 방울이에요. 통방울같이 생겼고 코는 질병같이 생겼고 이조백자처럼 생겼어요. 입은 메기같이 이제 떡 벌어졌죠. 머리털은 돼지털 같아요. 키는 장승만 해요. 소리는 이리 소리를 내요. 허리는 두 아름이나 돼요. 이 말은 여자들이 허리가 이제 가늘어야 한다고 새 요를 강조하는 건데 두 아름이나 된다. 게다가 곰배팔이고 수중달이고 쌍언청이고 그런데다가 주둥이가 삐쭉 나왔어요. 그걸 썰면 열사발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다가 또 얼굴은 콩멍석같이 얽었다. 이런 여자는 있을 수가 없죠.

 

사실 세계에서 이런 여자는 있을 수 없어요. 이건 뭐냐. 참 못생긴 여자다 흉물스럽게 생긴 여자다 이런 느낌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런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서적인 면에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통달적인 면에서는 전혀 쓸모없는 표현이죠. 그래서 이런 언어의 기능을 제대로 알고 수용을 해야 한다. 그다음에 명령이라고 하는 것 이름을 뭐라고 붙이느냐. 아까 양반 얘기를 했지만은 일본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환상의 계급이 있고 양반이라고 하니까 이 양반이라고 하는 한자를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쓸 줄 몰라서 고민을 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양반을 훌륭한 그런 가문을 얘기하니까 어질 양자 좋다는 양자 그자를 쓰는가 보다라고 생각했다는 거예요. 그렇게 이름을 붙여줬겠죠. 명명이야. 그렇게 이름을 붙여줬겠죠. 그런데 우린 그렇게 하지 않고 동반서반이 있으니까 그걸 양반이라고 한다. 이렇게 이름을 붙였어요. 이렇게 이제 언어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이렇게도 되고 저렇게도 되고 필연성이 없는 거예요. 자의적이라고 그러죠.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약 3천 개 내지는 6천 개의 언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람이다 맨이다 아니면 일본말 시도다 아니면 중국에 론이다 이게 다 다르다 그 말이에요. 사람인데 그 사람을 나타내주는 많이 달라. 그건 필연성이 없다는 말이에요. 의성어도 의태어도 달라요. 그러나 여기서 조금 생각해 볼 것은 조금 전에 양반 얘기를 했듯이 인연이 있는 관련이 있는 여기선 인연 연 자예요. 유연성이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양반이라고 하는 말이 이제 아 그렇다는 말씀을 드렸고 좌익 우익 요새 뭐 꼴통보수니 좌빨이니하고 많이 떠들어 되는데 좌우익이라고 하는 말은 어떻게 생겼다는 말일까요? 좌우익? 여러분 잘 쓰는 말이고 너무 잘 아는 말인데 좌우익은 무슨 뜻이야 왜? 좌우 좌익 그래? 오늘도 여전하시네요. 침묵을 시키는 건? 이건 용어로 말하면 우리 축구할 때 레프트윙 라이트윙 하는 그거에요. 오른쪽 날개, 왼쪽날개 그 말은 결국은 이제 오른쪽 왼쪽을 나타내 주는 건데 1972년에 프랑스의 국민회의에서 진보파가 좌측에 보수파가 우측에 쉽게 말해서 국회의사당에서 자리를 차지했던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서 라이트윙 레프트윙 이란 말이죠 생겨난 겁니다.

 

그게 우리 얘기까지 들어와서 우리가 왜 이 말이 생겼는지도 모르면서 쓰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이제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붙여져요. 여러분들은 주요섭이라고 하는 소설가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라고 하는 소설을 보셨는지 모르겠어요. 거기에는 박옥희라고 하는 여섯 살 난 아이가 주인공이 돼서 어머니 사랑 얘기를 하는 건데 그 아이가 처음에 뭐라고 하는가 하면 “나는 여섯 살 난 처녀애에요.” 이래요. 여섯 살 난 처녀 처녀애라고 명령을 한 거예요. 이름을 붙인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 아이는 “엄마 사탕 줘. 엄마 우유 줘.”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처녀기 때문에 뭐 얘기해? 사랑 얘기해. 처녀기 때문에 사랑얘기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사랑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 어머니는 그 딸의 장래를 위해 가지고서 결혼을 안 합니다. 사랑손님과 사랑을 심정적으로 극진한 사랑을 하지만 결혼 안 해. 왜 안 해? 자기가 다시 시집을 가면 모두가 자기 보면 화냥년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옥희라고 하는 아이에겐 화냥년의 딸이라고 해서 좋은 데 시집을 못 간다. 그러니까 우리 새아빠를 갖지 말자.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사랑손님과 어머니’는 처녀라는 말과 화냥년이라는 말 때문에 그 작품이 이루어질 거예요. 이 말을 이렇게 얘기하는 배경이 방진이 하나 있어요 뭐냐. 모파상의 시몬스 파파라고 하는 ‘시몬의 아버지’라고 하는 소설이 있어요. 거기서 이제 시몬이라고 하는 아이도 역시 과부의 아들로 아버지가 갖고 싶어요. 대장장이가 집 주변에 있었는데 그 얘기는 뭐 조금 더 설명을 하자면 이 아이가 이제 늘 친구들로부터 이제 아버지 없는 아이라고 놀림을 받아서 자살을 하려고 강가에 갔다가 거기서 이제 만난 대장장이에요. 그 대장장이가 이 세상 아버지 없는 아이가 됐느냐고 걔를 데리고 집으로 왔고 그때 이 시몬이 이 아저씨가 우리 아버지 하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함으로써 어머니를 당황하게 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이제 나중에 얘기는 둘이 이제 결혼을 해요. 결혼을 하는 이유는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결혼한다고 그 말이에요. 옥희는 옥희의 장래를 위해서 결혼을 안 하는데 시몬의 어머니는 시몬을 위해서 결혼을 해요. 거기에는 결혼을 해도 화냥년이라고 하지 않으니까. 화냥년의 아들이라고 그러지 않으니까 결혼을 한 거죠. 이렇게 이제 명명이라고 하는 것은 기가 막힌 정서적인 효과를 드러낸다.

 

자, 어 화장실 지금 우리가 다 뭐 화장실은 화장실이라 그래요. 어 그런데 이 화장실 옛날에는 뭐라 그랬죠? 흔히 뭐 뒷간 뒷간이라고 했어요. 아니면 측간이라고도 그랬어요. 옆에 있다고 그래서. 변소라고 하는 것도 난 그렇게 생각을 해요. 변자 그거 편할편 자거든요. 그래서 이북에서 내려오신 분들은 변소라고 안 하고 편소라고 그래요. 큰 것을 보면 크게 편하다는 말이고 작은 것을 보면 조금 편안하다는 말이죠. 그래서 그곳 가면 편안해지는 곳이라고 해서 편소예요. 그게 냄새가 나게 되니까 그런 것을 이제 완곡법에서 얘기하는 표현으로 냄새가 나게 되니까 그것이 변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이제 볼 수가 있어요. 절간에서는 뭐라고 그런대요? 해우소라고 그런다고. 해우소. 근심을 풀어 주는 곳. 이런 것은 서양도 마찬가지죠? WC라든가 toilet이라든가. 우리가 형무소 감옥소라고 얘기하는 것.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생겼을 땐 전옥서라고 했습니다. 그게 감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다음에 형무소로 바뀌었어요. 다 형을 집행하는 옥이죠. 감옥이에요. 좋은 것이 아니죠. 그런데 지금 뭐라고 그럽니까? 교도소라고 해요. 교정해 주고 바로 인도해 주는 곳. 이건 이름만 들으면 가볼 만한 그런 것이죠. 그래서 이 이름을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확확 달라진다. 정서적으로 달라진다. 양심수, 시국사범, 의식과, 운동권 똑같은 사항을 두고서 달리 이름을 붙였던 그런 낱말들이에요. 더군다나 강간, 성폭행. 성폭행이라는 말하기 전에 폭행이라는 말로 강간이라는 말을 바꾼다고 그랬어요. 그러다 보니까 뭐 때려준 눈까지 다 성폭행한 것으로 오인하게 돼서 성자가 나중에 불게 됐습니다.

그다음에 이제 위치적인 사고인데 둘로 가치를 나눠 가지고 한쪽을 좋다고 그러고 한쪽을 나쁘다고 그러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표현 효과를 강조하는 거예요. 위선자천보지이복 위불선천보지위화 착한 사람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복으로써 보답을 하고 착하지 않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화로써 보답한다. 둘로 해서 착한 일을 하도록 몰아가는 거예요. 그런 정서적인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거죠. 이런 예로 대표적인 것이 소위 이제 시저를 죽이고 난 다음에 브루터스가 이제 연설한 것이 있는데 이것도 바로 그런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한 사람이라도 노예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죄를 범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로마인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천한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죄를 범한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야비한 사람이 있습니까? 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죄를 범한 것입니다.” 자 있다면 보십시오. 나는 그 사람들에게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렇게 둘 가운데 하나로 몰아가 그래서 결국은 브루터스는 시자를 잘 죽였다 라는 쪽으로 민중들을 몰아간단 말이에요. 그래서 “브루터스 만세”를 외치게 돼요. 그다음에 안토니우스가 이제 등단을 해서 이것을 조목조목 비판을 함으로써 안토니우스 쪽으로 군중들이 이제 쏠리게 됩니다. 이렇게 일치적인 사고라고 하는 것이 한 쪽으로 휘몰아 가게 한다. 그건 빨갱이, 공산주의자 이것도 바로 이런 케이스예요.

 

그다음에 이제 완곡법은 완곡하게 얘기하는 거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이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는데 어떤 말이 풍기는 정서가 좋지 않아서 말을 바꾸는 것하고 또 하나는 어떤 사물이 마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 말을 피해서 다른 말로 하는 거예요. 나쁜 감정을 지니게 하는 것 그건 변소같은 것 그다음에 죽음 같은 것 이런 것이 이제 우리에게 불안 좋지 못한 느낌을 주게 되니까 이런 것을 다른 말로 돌리죠. 화장실이라든가 좋은 같은 천당 간다든가 이렇게 이제 바꿔요. 마력을 가진 말을 사물을 피하는 것은 호랑이 밤에 이제 산에 가다가 호랑이 만나면 목숨이 이제 달아날 수도 있어요. 무서워. 그래서 그걸 뭐라고 하느냐? 밤이 호랑이 만났다고 하지 않고 산신령을 만났다. 그럼으로써 그 호랑이가 자기를 해치지 않는 쪽으로 느낌을 이제 바꾸는 거예요. 이런 것은 섹스와 관계되는 것 배설물과 관계되는 것 지금 얘기한 죽음이라든가 질병과 관계되는 것 이런 것들을 재명명한다. 본래 이름과는 달리 다른 이름을 붙인다. 유행병 그 말 대신에 뭐라 그래? 손님이라고 그런다. 그다음에 여기서 이제 관계를 시켜서 말씀을 드릴 것은 모호한 표현 이런 것들을 되도록 많이 쓰면 좋다. 특별히 이제 공무원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에는 거부하기보다는 보류하는 선처해보겠다, 아니면 상의해보겠다, 알아보겠다 이런 표현을 함으로써 일단 민원인들을 누그러뜨리는 그런 표현이 필요할 것이다.

 

이 밖에 이제 여기에서 이제 말씀을 드릴 것은 소위 내용 없는 말이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실질적인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 말이에요. 이것은 오히려 상대방에게 감정적으로 여러 가지 표현 효과를 이제 드러내게 하는 건데 예를 들면 거기서 이제 골골거리는 말, 으르렁거리는 말이라고 했는데 ‘나는 당신이 좋다, 사랑한다.’ 이렇게 좋은 말만 해. 그런 하나의 방법이 있고 아니면 또 협박을 하는 방법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똑똑한 부하보다는 아첨하는 부하를 좋아한다고 그래요. 다 이제 과장님, 부장님이 좋다는 표현을 할 때 그 사람을 이제 더 사랑한다는 거죠. 따라서 이런 표현들을 잘 활용을 하시기를 바래요. 이런 말 가운데 이제 인사말이라든가 아니면 외교 사령이라든가 이런 것이 이제 있어요. 인사말 이건 본래 의미가 있는 말이었지만은 나중에 관례적으로 씀으로 말미암아 의미가 없는 말, 그냥 감정을 표시하는 말로 바뀌었어요. “진지 잡수셨습니까?”가 꼭 밥 먹었느냐는 말이 아니다. 그런 말을 아까 했고요. 외교 사령 같은 것도 외교관이 어떤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좋지 않다고 얘기하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다 원더풀! 좋다고 그래요. 그다음에 이제 특별히 발어사 말을 할 때 시작하는 말 이 말을 우리나라 사람이 할 줄을 모릅니다. 이 말을 좀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저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 말씀 좀 묻겠는데요.” 이런 말을 하질 않고 직접 “서울역 어디로 가요? 어디로 가요?” 뭐 이런 식이에요. 당황하게 되죠. 그다음에 이제 남이 말하면 소위 이제 추임새를 넣어라 “그래요? 그래서요? 참 잘했네요.” 이런 말을 넣어줘요. 그럼 상대방이 신이 나서 얘기를 계속 하게 되죠. 말을 했는데 이 사람이 들었는지 말았는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게 많아요. 택시를 타서 어디 가자고 해도 택시에 비상 기사가 반응이 제대로 안 나오죠. 음식점에 가서 무슨 음식을 주문해도 제대로 반응이 나오질 않습니다. 이런 것을 제대로 해야겠다. 특별히 우리나라가 이제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면서도 인사할 줄을 몰라요. 이런 인사하는 풍조를 우리가 이제 길러야겠다.

 

그다음에 이제 마지막으로 교양인의 이제 언어생활인데 여기서 이제 우선 우리 언어체계에 관해서 이제 제대로 알아야겠다. 한자와 고유어 체계를 우리가 제대로 알아야겠는데 특별히 우리 고유어들도 제대로 지금 몰라요. 예를 들면 집알이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집들이라는 말은 잘 알아요. 집을 사 가지고 남을 이제 초청을 해서 한턱을 낼 때 집들이라고 그러는데 그 집들이를 가는 사람 그 사람들도 흔히 집들이 간다고 그러는데 집들이 가는 게 아니에요 집알이 가는 거죠. 집을 알러 가는 거예요. 어디 있는데? 무슨 집인데? 어떻게 생긴 집인데? 이런 말을 모른다는 거예요. 옷깃차례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건 시계방향이란 말이에요. 우리가 옷을 이렇게 입는데 이렇게 이 옷이 돌아가는 방향 이게 이제 시계방향이에요. 옷깃차례. 그다음에 이제 장기튀김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도미노 현상을 나타내 주는 말이에요. 뭐냐. 도미노 현상이 어떤 자극을 줬을 때 쫘악 쓰러지듯이 장기도 예를 들면 말이 움직였다 그러면 그 말 때문에 딴 상대편이 이제 포든지 아니면 상이든지가 움직여야 한단 말이에요. 상이 움직이면 또 이쪽 편에서 또 뭐가 움직여야 한단 말이에요. 이런 것들을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알지를 않고 있다. 특별히 지역방언하고 관계가 있는데 사십두 살 오십세 개 오십 하면 삼 개, 쉰세 개 이렇게 되어야 할 텐데 한자말하고 고유어가 뒤섞여 쓰이는 그것도 이제 교양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건 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다음에 상류 지향의 언어 영국에서는 모두가 다 같다는 거예요. 상류층하고 하류층이. 비상류층이. 같은데 뭐만 다르냐? 언어만 다르다. 그래서 논류 비상류층이 상류층을 지향하기 위해서 상류층의 언어를 배운다 하고 아주 유명한 얘기에요. 근데 우리는 너무도 이런 고급 언어 점잖은 언어 이런 것을 배우려고 그렇지 않습니다. 초청장 같은데 이제 동영부인이라는 말이 쓰이는데 동영부인은 그 초청을 받은 남자와 동, 같은 사람의 부인이란 말이에요. 영자가 남매라고 하는 것을 존대하는 말이에요. 근데 그 말을 뭔가도 몰라요. 내가 지금 오늘 아침 신문에도 이제 이 비슷한 것이 나와서 신문을 사실 오려 가지고 왔습니다마는 박 대통령이 이제 영예 시절에 도서 전시회에 가보고 이제 안 가봤다고 하는 건데 영예라고 하는 말이 쓰였어요. 명예 때 근데 영예라는 건 대통령 딸에게 고유한 그런 표현이 아니에요. 남의 딸은 다 영예에요. 따라서 거기서 영예라는 말을 쓸 수는 없어요. 그것이 신문 헤드 라인에 나온다. 영부인도 마찬가지예요. 대통령 부인이 영부인이고 딴 사람 부인은 영부인이 아니냐? 다 영부인이에요. 남의 부인은.

 

그다음에 이제 바른말을 사용해라 표준어를 교양인의 말이라고 정해 놨어요. 그전까지는 중류사회에 쓰는 말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교양인의 말이라고 했어요. 따라서 우리는 표준어를 써야죠. 뭐뭐 하냐 하느냐 그러니까 참 많이 쓰이고 있는데 이것은 받침이 없는 그런 말 아래 에만 올 수 있지 형용사에는 올 수가 없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아예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 드리죠.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 가운데 참 되거나 바르거라 가르쳐 주신 했는데 참 되거라 바르거나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거라 불규칙 활용이 안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참되다 바르다 이건 형용사기 때문에 명령형이 올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가사의 넣은 노래를 매년 스승의 날에 부르게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그다음에 이제 고운 말을 사용해라. 여기서 이제 특별히 말씀을 드리고 싶은 것은 분리수거라고 하는 말 이건 분리수거는 분리는 가정주부가 하지만은 수거는 시에서 하는 건데 가정주부보고 분리수거 하라고 하는 말을 하는 것은 그 말 뜻도 모르는 공무원이 만들어 낸 말이에요.

그다음에 이제 예절 바른말을 해라 그것은 우리말의 소위 경어법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 말을 제대로 쓰지를 않아요. 자기 딸을 이제 데리고 가면서 “할머니가 빨리 오래.” 이렇게 말하고서도 자기가 할머니한테 불경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몰라요. “할머니가 빨리 오라셔.”라고 해야죠. “손님이 김치 달란다.” 그래요. 손님을 앞에 놓고 욕하는 거예요. “손님이 김치 달라신다.” 이렇게 해야죠. 그렇게 이제 망신을 당하면서도 좋다고 음식을 먹고 앉아있는 것이 우리예요. 지금.

 

그다음에 이제 언어의 운영 운영적인 면은 우리가 이제 말을 할 때 어떻게 사용을 했으면 좋겠느냐 하는 건데 앞에서 이제 구조를 중심으로 한 말씀이고, 이왕 거기서 이제 얘기가 나왔기 때문에 고 앞 전 것 사장님 앞에서 과장에 대한 얘기할 때는 낮춰서 한다는 건데 일본이 이 이 압존법이 이제 잘 세요. 사원 면접시험에 자기 아버지를 높이는 표현만 하면 그놈은 낙제라는 거예요. 자기 아버지 낮춰야 하는 건데 높인다 이러면 제대로 교양이 없는 겁니다. 그냥 낙제야. 그래서 이제 어느 장면에 이제 어울리는 표현을 하라 그런 거고 그다음에 완곡법에 대한 것은 말씀을 많이 드렸으니까 더 말씀을 안 드렸고. 그다음에 적절한 비언어 행동 비언어 소통 이걸 잘하라는 건데 말을 바꾸면은 몸동작 손짓 이런 것을 이제 제대로 하라는 말이고 음성적인 것도 제대로 사용해라. 음성적인 건 쉽게 말해서 남의 집에 갔을 때 언어가 아니라 음음음 이렇게 기침을 함으로써 사람이 왔다는 표시를 하는 거예요. 그다음에 그 언어적인 이제 표현을 이제 그 nonverbal로 비언어로 이제 하는 손짓 몸짓 이런 것들도 문화에 따라선 조금 달라요. 예를 들면은 그리스 사람이라든가 불가리아 사람 이 사람들은 (고개를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임) 이렇게 고개를 살레살레 젓는 것 이것이 긍정하는 거예요. 이게 긍정하는 거죠.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임) 이렇게 하는 것이 오히려 부정하는 거예요. 오케이 사인이라고 해서 이제 동그라미를 그리는 것 이건 우리 돈이죠. 서양 사람들 오케이 좋다. 터키 같은 데는 이건 구멍 더 나아가서 야비한 욕 그런 거예요. 이런 걸 제대로 알아야죠. 더군다나 이제 소위 다문화 사회가 이제 되고 있으니까. 그다음에 이제 적절한 반응을 지향해라 하는 것은 언어라고 하는 것은 stimulus 자극이 가야지만 거기에 대한 반응을 일으켜야 하는 거예요. 이건 숙명이에요. 그런데 자극이 가해지는데도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까 말씀을 많이 드렸는데 남이 이제 말을 하면 거기에 대한 반응을 제대로 하도록 해야 한다.

 

그다음에 이제 권리적인 표현에 관한 얘기를 조금 말씀을 드리는데 특별히 민원인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공무원이라고 하는 것은 소위 문턱이 높은 그런 지역이죠. 그렇기 때문에 더 들어보면 친절한 말 그리고 이제 쉬운 말 이런 것을 하는 것이 좋겠다. 어려운 한자어 같은 것을 되도록 쓰지 말고 경어법을 이제 제대로 이제 사용을 하고 이렇게 해야 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뭐 지시한다든가 시작한다든가 당부한다든가 이런 말 경고 엄단 보고 제출 또는 뭐뭐 할 것 뭐뭐 할 사 뭐뭐 한 자 이런 표현들을 되도록이면 쓰지 않고 부드러운 말을 바꾸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다음에 이제 되도록이면은 어려운 한자말들 이런 것을 많이 안 쓰는 것이 더 좋겠다. 그런 말씀을 드리고.

 

마지막으로 이제 결어에서 말씀을 드릴 것은 이미 아까 말씀을 드린 바와 마찬가지로 되도록이면은 언어의 기능을 잘 알고 사용을 하되 정서적인 표현 이런 것을 잘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 논리적인 면 지적인 면 이런 것보다 우리 인생 생활은 오히려 정서적인 면 감정적인 면 이런 것이 많이 작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도록 해라 하는 거고.

 

마지막으로 예화 하나. 어떤 이제 어머니가 병이 나서 입원했어요. 왜 그렇게 멀쩡하던 사람이 병이 났느냐고 그랬더니 “얘 내 말 좀 들어봐라. 내가 내 자식을 얼마나 사랑하니. 걔를 위해서 정말 뼛골이 다 빠지게 모든 일을 다 걔를 위해서 해주었는데 걔가 나한테 땡큐 고맙다는 인사를 말을 안 하는구나. 내가 얼마나 섭섭하게 해줬으면 걔가 그런 인사말을 안 하겠니? 그래서 내가 이렇게 병이 났다.” 그랬어요. 그래서 이 친구 어머니의 친구는 그 아들을 찾아가서 “넌 너희 어머니가 너를 위해서 잘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라고 잘해주신다고. 그런데 왜 감사하다는 말을 그렇게 한 마디도 안 하느냐. 너희 어머니는 그것 때문에 병이 났다.” “아니 마음속으로 뭐 그렇게 감사하게 생각하면 됐지 꼭 말을 해야 하느냐.” “아니다 사람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까 감사하다는 말 가서 해라.” 그래서 이제 갔어. 가서 “어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동안에 참 살아주신 은혜 감사하다는 말씀을 못 드렸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아들을 끌어안고 울었죠. 울 것은 뭐 병이 바로 그 정신적인 면에서 이제 나왔기 때문에 바로 이제 퇴원을 하는 거예요. 따라서 여러분들도 이와 같이 소위 정서적인 표현을 많이 함으로써 여러분들 친구들만이 아니고 대민 업무에서도 같은 좋은 결실을 이루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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