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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성(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이번 호에서도 지난 호에 이어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한글 주소: 말터, 영문 주소: www.malteo.net)’에서 다듬은 말들 가운데 글쓴이의 생각으로는 예쁘게 잘 다듬은 것 같은데도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 ‘말터’ 안에만 갇혀 있는 말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말 다듬기의 주체로서 ‘말터’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만큼, 이젠 그동안 다듬은 말을 어떻게 널리 퍼뜨릴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1) 메신저(messenger) → 쪽지창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문자나 자료를 주고받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가리켜 ‘메신저’라고 한다. 그동안 많이 써 온 전자우편이 실시간으로 의사 교환이 되지 못하는 반면에 메신저는 보내는 즉시 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간편하다. 그래서 요즘엔 웬만한 업무 연락은 메신저로 한다고 한다. 종이에 쓰는 편지가 전자우편에 밀려 보기 어렵게 됐다는 뉴스를 들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전자우편도 메신저에 밀려서 황금시대를 마감할 처지라고 한다.
  이렇게 메신저가 급속도로 퍼지게 된 계기는 작년부터 우리 사회에 불기 시작한 미니홈피 열풍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메신저가 미니홈피와 연동하는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자연스럽게 메신저의 이용량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직장에서 업무와 관계없는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에 메신저만큼 좋은 것이 없다 보니, 생산성이 하락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기업에서는 정규 근무 시간에는 아예 메신저를 하지 못하도록 막아놓기도 한다. 어떤 물건이든 그것을 쓰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도움이 되기도 하고, 해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메신저도 이왕 우리 생활 속에 자리를 잡은 만큼 도움만 되는 물건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처럼 널리 쓰이는 ‘메신저’는 ‘전달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이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에서는 예전에 이를 ‘전달자’로 다듬은 적도 있다. 그러나 ‘전달자’는 지금껏 우리가 얘기한 ‘메신저’를 염두에 두고 다듬은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서류나 물품 따위를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지게 된 정보 통신 용어 ‘메신저’를 ‘쪽지창’이라는 새로운 말로 다듬은 것은 참으로 적절해 보인다. 지난 2005년도 ‘말터’ 최고의 다듬은 말로 ‘누리꾼’과 더불어 ‘쪽지창’이 뽑힌 것만 봐도 이 말이 참 예쁘게 잘 다듬어진 말임을 알 수 있다.
  학창 시절에 수업 중에 선생님 몰래 친구에게 쪽지를 전해 본 경험을 떠올려 보면, ‘메신저’와 ‘쪽지’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쪽지’도 대개 자그마한 종이를 쓴다는 점도 ‘메신저’와 비슷하다. 기능으로 보나 겉모습으로 보나 ‘메신저’는 ‘쪽지’와 쏙 빼닮은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메신저’를 대신할 말로 ‘쪽지창’을 선택한 ‘말터’ 회원들의 선택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2) 투잡(two job) → 겹벌이

  날마다 오르는 집값 때문에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4년 동안 집값만큼은 잡아주겠지 싶었던 현 정부가 아직까지 보기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여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를 어린이방에 맡기고 맞벌이를 하며 차곡차곡 돈을 모아 온 사람들은 차라리 발품 팔아 집이나 보러 다녔으면 더 큰돈을 모았을 것이라며 억울해 하기도 한다. 집값뿐만 아니라 다른 물가도 덩달아 올라 살림살이는 더욱 팍팍해지고 있지만 소득은 그만큼 따라주지 못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것이 요즘 우리나라 경제 사정이다. 게다가 걸핏하면 구조 조정을 명분으로 해고가 일상화하고 살아남기 위한 동료 간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다니던 직장에서 언제 쫓겨날지 몰라 미리미리 퇴직 이후를 대비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런 경제 사정 때문에 낮에는 직장에서 월급 받으며 일하고, 퇴근 후에는 자기 사업을 하면서 하루 종일 돈 버는 일에만 매달리는 이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이 두 가지 직업을 가지는 일’을 ‘투잡’이라고 하고, 그런 사람들을 보통 ‘투잡족’이라고들 한다. 그런데 ‘투잡’이라는 말이 참 낯설다. 우리는 어째서 이런 말을 처음부터 우리말로 쓰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일까? 어렵지 않은 영어 단어로 이루어진 말이라서 영어를 그대로 써도 뜻과 감정을 전하는 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서일까? 글쓴이는 ‘와이브로’나 ‘디엠비’와 같은 말이 쓰일 때보다 ‘투잡’과 같은 말이 버젓이 유행할 때 더 소름이 돋는다. 외래어로 굳어진 말들은 우리말로 쉬 고치기가 어려운 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런 말이 우리말의 일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와이브로’나 ‘디엠비’는 아마도 그런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투잡’과 같이 쉬 고쳐 쓸 수 있는 말마저 우리말로 고쳐 쓰지 않는 일이 일반화된다면 우리말의 존립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그러므로 이런 말일수록 더 철저하게 우리말로 다듬어 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투잡’을 ‘겹벌이’로 다듬은 것은 시기적으로 발 빠르게 대응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다듬은 결과도 매우 좋아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겹벌이’는 따로 의미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쉬운 말로 만든 말이면서도 ‘투잡’의 의미를 오롯이 잘 반영하고 있어 아주 잘 다듬은 말이라 할 수 있다. 어떤 이는 ‘겹’이란 같은 것을 반복하는 의미가 있으므로 ‘투잡’의 다듬은 말로는 적절치 않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나, ‘두 가지 일을 겹쳐서 하다 보니 힘이 든다.’와 같은 문장이 곧잘 쓰이는 것을 보면 반드시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경우만 ‘겹’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고민이 하나 생겼다. 세 가지, 네 가지 직업을 가진 경우에는 뭐라고 하지?

  (3) 핫팬츠(hot pants) → 한뼘바지

  경기가 안 좋아지면 깡동치마(미니스커트[mini-skirt])와 비싼 속옷이 잘 팔린다고 한다. 어려운 경제 상황 때문에 생기는 짜증을 짧은 치마로 멋을 내어 풀고, 비싼 겉옷 대신 속옷이라도 좋은 것을 입자는 심리가 퍼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거리에서는 깡동치마를 입고 다니는 젊은 여성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전에는 날씨가 추워지면 이런 옷차림을 하는 여성들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요즘에는 계절을 불문하고 그 수가 일정한 듯하다. 멋스럽게 보이고자 하는 욕심이 앞선 탓에 건강을 해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요즘에는 깡동치마 같은 맵시를 내면서도 활동하기에도 편해서 그런지 ‘핫팬츠’를 즐겨 입는 여성들도 많이 늘었다. 주로 젊은 여성들이 입는 ‘가랑이가 아주 짧고 몸에 꼭 맞는 바지’를 ‘핫팬츠’라고 한다. ‘핫팬츠’는 엉덩이를 겨우 가릴 만큼 가랑이 부분이 아주 짧다는 점에서 ‘반바지’와는 차이가 있다. 보통 반바지는 가랑이 부분이 적어도 허벅지 정도는 가릴 만큼 길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가랑이가 긴 바지의 반 정도 되는 바지가 반바지라면,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바지가 ‘핫팬츠’인 것이다. 결국 ‘긴 바지’, ‘반바지’, ‘핫팬츠’는 길이를 기준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핫팬츠’를 가랑이 부분의 길이가 한 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깡동한 바지라는 뜻으로 ‘한뼘바지’로 다듬은 것은 매우 적절해 보인다. 다만 ‘미니스커트’를 ‘깡동치마’로 다듬은 것을 감안하면, ‘깡동바지’로 다듬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는 하다.
  ‘핫팬츠’는 영어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이 내포하는 의미를 생각해서라도 없어져야 할 말이다. ‘핫팬츠’의 ‘핫(hot)’은 ‘뜨겁다’는 뜻이 아니라 ‘성적 매력을 풍기는’, ‘성적으로 흥분한’ 따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말하자면 ‘핫팬츠’를 입으면 성적인 흥분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인데, 이는 ‘핫팬츠’를 입은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할 만하다. 짧은 치마나 바지를 입는 행위를 남성의 성적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행위로 잘못 인식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말의 건강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핫팬츠’는 사라져야 할 말인 것이다.

  (4) 헝그리 정신(hungry情神) → 맨주먹정신

  고통 중에서도 가장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배고픔이라고들 한다. 글쓴이는 굶어 죽을 만큼 굶어 본 적이 없어서 그 고통이 어떠한지를 가늠할 수도 없으나 간혹 굶주림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난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보면 이렇게 하루 세 끼 거르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것마저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새삼스럽게 깨닫게 된다. 불과 삼사십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도 굶어 죽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그만큼 그런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한 이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이들은 가난과 굶주림을 이겨내기 위해서 흔히 ‘헝그리 정신’으로 버텨냈다고 한다. ‘헝그리 정신’은 직역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다. ‘배고픈 정신’, 또는 ‘굶주린 정신’이 되는데, 이는 오히려 부정적인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어서 대체적으로만 뜻을 가늠해 볼 수 있을 뿐인데, ‘끼니를 잇지 못할 만큼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한 의지로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정신’ 정도로 이해할 수 있다. 요즘에는 ‘헝그리 정신’이라는 말이 예전보다 덜 쓰이는 듯하다. 그만큼 풍요로워졌다는 뜻일 테지만, 사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필요한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좋은 뜻을 담고 있는 말을 굳이 영어로 쓸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직역을 하면 엉뚱한 뜻으로 해석되는 영어로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말터’에서 ‘헝그리 정신’을 ‘맨주먹정신’으로 다듬은 것은 평가할 만하다. 오래 전부터 써 온 말이어서 갑자기 다른 말로 바꾸어 쓰라고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권위주의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말을 다듬어 쓰려는 이유가 말과 그 말을 쓰는 사회가 지향하는 가치에 부합하고자 함이라면, 아무리 오래 전부터 써 오던 말일지라도 그 말이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에 어긋난다면 언제든지 고쳐 쓰는 것이 합당하다. 그리고 ‘헝그리’는 단지 배고픔에 머무는 말이지만 ‘맨주먹’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상황’을 빗대어 이르는 말이어서 좀 더 폭넓게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여러 모로 ‘맨주먹정신’으로 다듬어 쓰는 것이 좋겠다.

  (5) 그 밖

  지난 제11호부터 지금까지 소개한 말들 말고도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운 말들이 많이 있다. 마지막으로 그런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다크서클(dark circle)’‘눈그늘’로 다듬었다. ‘다크서클’이 기본적으로 눈 아랫부분이 거무스름하게 음영이 지는 것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특징을 잘 포착하여 다듬은 말이다. ‘웰빙(well-being)’ ‘참살이’로 다듬었다. ‘웰빙’이 단순히 비싼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참된 삶의 가치를 지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잘 다듬은 말이다.
  ‘슬로푸드(slow food)’ ‘여유식(餘裕食)’으로 다듬었다. 몸과 마음의 여유를 되찾음으로써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슬로푸드’ 운동의 목적이라는 점에서 잘 다듬은 말이다.
  ‘터프가이(tough guy)’‘쾌남아(快男兒)’로 다듬었다. ‘터프가이’에 담긴 남성우월주의적인 의미를 없애고 ‘성격이나 행동이 시원스럽고 쾌활한 남자’를 가리키는 말인 ‘쾌남아’로 다듬은 것은 우리말 다듬기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를 시사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선팅(sunting)’ ‘빛가림’으로 다듬었다. 국적 불명의 외국어인 ‘선팅’을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잘 다듬었다. 국적 불명의 외국어가 난무하는 것은 외국인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다.
  ‘파일럿 프로그램(pilot program)’‘맛보기 프로그램’으로 다듬었다. ‘프로그램’을 그대로 살려 쓴 것은 조금 아쉽지만, 웬만한 영어 지식으로는 알아내기 힘든 ‘파일럿’ 대신 ‘맛보기’라는 쉬운 우리말을 쓴 것은 매우 적절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뉴타운(new town)’‘새누리촌’으로 다듬었다. 행정 용어는 마땅히 국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뉴타운’을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받을 만하다. 따라서 하루 빨리 ‘새누리촌’이 공식 용어가 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3회에 걸쳐 글쓴이가 보기에 잘 다듬은 말들을 살펴보았다. 여기서 소개한 잘 다듬은 말은 전적으로 글쓴이의 생각에 따른 것이므로, 여기서 소개하지 않은 말 가운데 더 잘 다듬은 말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여기서 소개한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가 의도한 것은 자신이 보기에 잘 다듬은 말부터라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해 보면 점차 우리말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생각이 퍼지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우리말 다듬기를 주관하는 국립국어원의 홍보도 중요하지만 다듬은 말 하나라도 실생활에 적용해 보려는 우리들의 의지가 결국 우리말 다듬기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이다.
  요즘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를 들어가 보면 사이트 관리를 거의 하지 않는 듯한 모습이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시작한 지 몇 년이 흘렀는데도 처음 문을 열었을 때의 초기화면이 아직도 그대로이고, 회원들이 지적하는 문제점들도 전혀 개선되고 있지 않다. 어떤 사정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이 사이트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가 자못 크다는 점을 인식하여 좀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