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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표(연세대 교수)

  ‘함께’란 ‘함께 간다, 함께 일한다, 이것도 함께 가져 가라’ 등에서 보는 것처럼 ‘한꺼번에, 또는 서로 더불어’란 뜻을 가진 부사어다. ‘함께’는 주로 ‘-와 함께’의 형식으로 쓰이지만 ‘-와’를 생략시켜 ‘나와 함께 가자’를 ‘함께 가자’처럼 ‘함께’를 독립적으로 쓰기도 한다. ‘함께’는 위의 예들에서 보듯이 ‘동반’의 뜻을 지니고 있다.
  ‘함께’는 ‘함께’의 ‘께’가 ‘어저께, 그저께’의 ‘께’와 음상이 같아서 ‘함 +께’로 분석될 듯이 보이는데, ‘함께’는 ‘동반’의 뜻을 가진 반면에, ‘어저께, 그저께’의 ‘께’는 시간과 연관되어 있어서 우연히 음상만 동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설령 그 분석이 맞는다고 해도 ‘께’ 앞에 있는 ‘함’을 해석하기 어렵다. ‘함빡, 함싹, 함부로’ 등의 ‘함’과 연관시키고 싶지만, 음상만 동일할 뿐 그 의미의 동질성을 찾기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함께’는 그것이 처음 등장할 때의 어형이 ‘’이기 때문이다. ‘’는 수사 ‘나’의 관형형인 ‘’(오늘날의 ‘한’)에 시간을 나타내는 명사 ‘’가 통합되고, 또 여기에 처격 조사인 ‘-의’가 붙어서 생긴 단어이다. 처격 조사 ‘-의’가 연결되었기 때문에 이것이 부사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래서 ‘’는 ‘[一] +[時] + -의(처격 조사)’로 분석된다. 오늘날의 뜻으로 말하면 ‘일시에, 동시에’란 뜻을 지닌다.

  太子ㅣ 도라올 디 업스실  車匿이 와  울오 도라오니라<석보상절(1447년)>
  나옷 외면 아기와 나와  죽고 올면 하히 본즈 시리라 시고 <석보상절(1447년)>
  됴 초애 진으로 플 수어 머귓 여름마곰 환 라  열 환곰 머고 <구급간이방(1489년)>
  오직 렴블공덕으로 브와 쳐와 가지로 인가 도라 보내여  늘거  머므러 부쳐을 렴케 호리니 <권념요록(1637년)>

  ‘’는 오늘날에는 단독으로는 사용되지 않지만 ‘끼니를 때운다’의 ‘끼니’의 ‘끼’에 그 화석형이 남아 있는 단어다. 그 곡용형이 독특한데, 주격형은 ‘’, 처격형은 ‘’, 대격형은 ‘’, 그리고 도구격형은 ‘로’이다.

  攻戰애 니샤 不進饍이 현 신 알리 <용비어천가(1447년)>
  굴근 比丘衆 一萬 二千 사과  잇더시니 이  부텻 나히 닐흔 나히러시니 <석보상절(1447년)>
  밤낫 여슷 로 여슷 니 낫 세 밤 세히라 <월인석보(1459년)>
  阿難아 네 녜 두  두  大食 小食 라 <능엄경언해(1461년)>
  二六時中 四威儀內예 二六時 열둘 라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535년)>
  그 太子ㅅ 나히 漸漸 라거시 <석보상절(1447년)>
  그 부톄 眉間白毫相앳 光明을 펴샤 東方앳 萬八千世界 비취샤 <월인석보(1459년)>
  그  天帝釋이 化야 旃陁羅ㅣ 외야 王의 身肉을 비온대 王이 곧 버혀<금강경언해(1575년)>
  그  當야 三千 大千 世界 六種震動고 <월인석보(1459년)>
  나조 鬼神 爲야 說法시고 바도 세  說法더시다 <월인석보(1459년)>
  이 다 念 그춤 得  일후미 一念 相應어니 <선종영가집언해(1475년)>
  밤 낫 여슷 로 뎌 藥師瑠璃光如來 저 供養고 <석보상절(1447년)>
  밤낫 여슷 로 여슷 니 낫 세 밤 세히라 <월인석보(1459년)>
  즉자히 밥 머 로 믿 나라해 도라와 밥 먹고 두루 니니 <월인석보(1459년)>

  ‘’는 현대국어의 ‘때’란 뜻이지만, 이 ‘’가 쓰이던 15세기에는 오늘날의 ‘때’에 대응되는 단어는 ‘’여서, ‘’와는 그 뜻을 달리 하였다. 시간을 나타내던 이러한 명사에는 ‘’와 ‘’(오늘날의 ‘때’)와 ‘적’(또는 ‘제’)이 있었는데, ‘’와 ‘적’은 동일한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는 ‘’나 ‘적’과는 같은 의미로 쓰인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그’(그 + )와 ‘그저긔’(그 + 적 + -의)는 서로 교체되어도 의미차이는 없었다.

  그 一切 衆生喜見菩薩이 부텻 滅度 보고 <1459월인석,18,038b>
  내 그  소로 받고  소로 눌로라 니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1525년)>

  그저긔 阿私陁이 나히 一百 스믈히러니라 <석보상절(1447년)>
  그저긔 그  俱夷도 講堂애 오샤 太子 아 보거시 <석보상절(1447년)>
  그 예 니르면 반시  디니 <언해태산집요(1608년)>

  ‘어저께, 그저께’ 등의 ‘께’는 ‘어제 - 어저긔’ ‘그제 - 그적의’에서 음운변화를 거쳐 생긴 단어이기 때문에 ‘함께’의 ‘께’와 음상이나 ‘시간’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서로 상관이 없는 단어로 보인다.
  ‘때’는 매우 폭넓은 시간을 지칭하고 있지만, ‘’와 ‘적’은 한정된 시간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그 때에’ 또는 ‘그 순간에’란 의미를 갖는다.
  ‘’는 ‘일시에’(一時에)란 뜻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한 ‘동시에’(同時에)란 뜻도 가지고 있었다. ‘’(一)이 그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그 중의 한 가지’는 ‘일종’(一種)을 뜻하지만 ‘-과 -는 한가지다’라고 할 때에 ‘한가지’는 ‘동종’(同種)을 뜻한다.
  ‘’는 ‘’의 어두자음군이었던 ‘ㅴ’의 ‘ㅂ’ 때문에 앞의 ‘’이 이에 동화되어 ‘’으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이미 16세기에 일어나서 ‘’가 ‘’로 나타나거나, 또는 ‘ㅴ’이 ‘ㅺ’으로도 표기되면서 ‘’로도 표기되기 시작한다.

  아비 安이  올 李壽의게 죽고 제 兄弟 세히  病야 죽거늘 <속삼강행실도(1514년)>
  보 그려기와  가면 반시 아쳐로 보리라 <두시언해중간본(1613년)>
  魚復浦애셔 잠 머믈오 楚王의 臺로  디나가리라 <두시언해중간본(1613년)>
  흔이 와  타 노니시 다가 마니 보내여늘  가져 니 <삼강행실도(1471년)>
  내 나라 위야 죽노니 내 아 거진이 이  주구려 리니 <삼강행실도(1471년)>
  넷 사이 民으로 더불어  樂 故로 能히 樂니이다 <맹자언해(1590년)>

  이러한 표기들은 표기의 다양성으로 인해 ‘긔, 끠’ 등으로도 표기된다.

  령혼과 피와 텬쥬 셩이 끠 계시고 <쥬년쳠례광익(1865년)>
  졍월 십삼일에 젼요안과  가지로 잡혀 셔문 밧 네거리에셔 끠 치명니 나흔 오십칠 셰오 때 병인 졍월 이십일이러라 <치명일기(1895년)>
  무진 삼월 이십삼일에 아과 쳐슉과 끠 잡혀 우변에셔 치명니<치명일기(1895년)>

  18세기에 들어서 처격 조사 ‘-의’가 ‘-에’로 표기되면서(또는 ‘-’로), 그리고 ‘ㆍ’의 변화로 ‘께, , 함, 함’ 등으로도 표기된다.

  샹 너와  야 텬셩 가 길을 인도기 라노라 더라 <천로역정(1894년)>
  이 와 즘승이 뎌로 더브러  말지 못이라 <훈아진언(1894년)>
  이 즉  집안  사 자의 구별 바니라 <한자용법(1918년)>

  삼년상을 함 지거든 치지 아니며 <여사수지(1889년)>
  현승상 쥬윤 등이 어가를 뫼셔 함 닐으매 <현씨양웅기(19세기)>

  그리고 오늘날의 표기와 같은 ‘함께’는 20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는 북받치는 울음 소리와 함께 「집에서 돈이 업다고 도화지를 사주지 안하요」 하엿습니다. <十七圓(1923년)>
  장에서 장으로 걸어다니는 동안에 이십 년의 세월이 사람과 즘생을 함께 늙게 하였다. <모밀꽃필무렵(1936년)>
  일요일인 까닭에 오래간만에 문수와 함께 뚝 우에서 하로를 보낼 수 있었다. <들(1936년)>

  그런데 ‘일시에, 동시에’의 의미를 가진 ‘’가 동반성을 갖게 되는 것은 ‘동시에 같이’ 하는 일은 ‘동반성’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누구와 누구가 동시에 가는 것’은 곧 ‘누구와 누구가 동반하는 것’인 셈이다. 그래서 ‘’가 원래의 의미, 즉 ‘일시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가, 음운변화로 ‘’가 되면서 ‘’[一]의 의미나 ‘’[時에]의 의미를 잃어 버려서, ‘동시성’이란 의미는 사라지고 ‘동반성’의 의미만 지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하여, 오늘날의 ‘함께’에서는 ‘동시성’은 전혀 인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국어에서는 부사가 이처럼 ‘동반성, 동시성, 동일성, 동일 처소’ 등을 보이던 부사들이 각각 발달되어 있었다. 즉 동시성은 ‘’, 동일성은 ‘가지로’, 동일 처소는 ‘’, 동반성은 ‘아오로’ 등으로 표시하였다.

  스스로 목라 죽어 그 지아비로더브러  무티다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누회 녀공과  밥먹으며 누호의 안 녀공의 안와  밥 먹더니 <오륜행실도(1797년)>
  救야 내디 못면 더로려 곳에서 죽음이 모던다 <오륜전비언해(1721년)>
  내 인여 널로려 가지로 가 형을 救홈이 엇디 됴티 아니리오 <오륜전비언해(1721년)>
  妾이 마 그로더부러 가지로 사디 못디니라 <여사서(1736년)>
  신이 지로더브러 가지로 계 드럿더니 <천의소감언해(1756년)>
  翌日의   儒臣으로여곰 原篇과 아오로 繕寫야 刊印고 <훈서언해(1756년)>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러한 동시성, 동반성, 동일 처소 등을 나타내는 ‘동일’이란 개념에 ‘하나’의 의미를 가진 ‘한’이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는 ‘동일하다’란 의미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국어의 ‘함께’는 원래 동시성을 가지던 ‘’( +  + -의)였었으나, 음운변화로 인하여 ‘하나’라는 의미를 가진 ‘’이 ‘함’으로 바뀌고, ‘때’를 뜻하던 ‘’가 쓰이지 않고 사라지면서 ‘’가 ‘함께’로 변화하였는데, 이 변화로 형태 변화는 물론 의미 변화까지 일으켜, ‘동시성’을 지녔던 단어의 의미가 ‘동반성’을 뜻하는 단어로 바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