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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석의 시 “동뇨부(童尿賦)”에 나타난 오줌에 대한 단상

김옥순(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봄철날 한종일내 노곤하니 벌불 장난을 한 날 밤이면 으레히 싸개동당을 지나는데 잘망하니 누워 싸는 오줌이 넓적다리를 흐르는 따근따근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

첫녀름 이른 저녁을 해치우고 인간들이 모두 터앞에 나와서 물외포기에 당콩포기에 오줌을 주는 때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오강에 한없이 누는 잘 매럽던 오줌의 사르릉 쪼로록 하는 소리

그리고 또 엄매의 말엔 내가 아직 굳은 밥을 모르던 때 살갗 퍼런 막내고무가 잘도 받어 세수를 하였다는 내 오줌빛은 이슬같이 샛말갛기도 샛맑았다는 것이다.

「문장」1권 5집. 1939. 6.

   백석(1912~1995)의 시 ‘동뇨부(童尿賦)’는 소재가 기발하고 유머가 느껴진다. 부(賦)라는 문체란 ‘시경에서 이르는 시의 여섯 체(부[賦], 비[比], 흥[興 ], 풍[風의], 아[雅], 송[頌]) 중의 하나로 사물이나 그에 대한 감상을 비유를 쓰지 아니하고 직접 서술하는 작법, 또는 한문체에서 글귀 끝에 운을 달고 흔히 대(對)를 맞추어 짓는 글(표준국어대사전)’이다. 부에 대한 해설을 생각하면 ‘동뇨부’는 ‘어린시절의 오줌에 대한 단상’ 정도로 바꾸어 적을 수 있을 듯하다. ‘신성한 시에서 오줌에 관한 글을 쓰다니’ 하고 분노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지만 기발하고 재미있는 착상인 것은 분명하다. 시인은 각 연마다 독자적인 오줌에 관한 기억을 쓰고 있다.
   1연은 봄날 하루 종일 벌불(들불) 장난을 한 밤이면 으레 싸개동당(오줌싸개의 왕)을 지난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충분히 오줌을 가릴 수 있는 나이의 어린아이가 신나게 불장난하고 너무 고단해서 자다가 그만 오줌을 싸는 장면이다. 흔히 “불장난하면 오줌싼다”는 말이 있듯이. 2연은 여름철 남자들이 텃밭에 몰려 나가 물외(오이) 포기나 당콩(땅콩) 포기에 시원스럽게 오줌을 누는 장면이다. 오줌도 거름이 된다고 시골에서 흔히 하던 행동이다. 서서 오줌을 누지 않는 여자들은 이런 추억을 간직할 수 없다. 3연은 추운 겨울에 바깥에 있는 뒷간에 가기 싫으니까 방안에 요강을 놓고 오줌을 누는 장면이다. 4연은 엄마의 추억을 빌려 인용하고 있는데 어린 내가 엄마 젖을 먹을 때 누던 오줌을 살갗 퍼런 고모가 미용을 위해 받아다가 세수를 하였다는 이야기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여자들이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라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은 이미 세상이 다 아는 일이긴 하다.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한국인들은 아마 1~4연 중에서 한두 가지 정도는 시인과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 1연에서처럼 오줌을 변소에 가서 누어야하는 것을 알면서도 졸음에 겨워 “싸개동당을 지나는” 경험이 없는 어른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여러분의 그때의 체험은 어땠는지? 아마 백석이 묘사하듯이 “잘망하니(하는 짓이나 모양새가 잘고 얄밉게) 누워 싸는 오줌이 넓적다리를 흐르는 따근따근한 맛 자리에 펑하니 괴이는 척척한 맛”이었을 것이다. 그때는 좋았지만 아침이 오면 젖은 요를 들고 어떻게 하면 엄마에게 감출까하고 고민하던 일을 기억할 것이다.
   2연은 남자들만의 추억으로 “터앞에 밭마당에 샛길에 떠도는 오줌의 매캐한 재릿한 내음새”를 남긴다. 텃밭이 없는 요즘 시대의 남성들도 ‘소변 금지’라고 써 붙인 담벼락에다 보는 사람이 없을 때면 항용 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3연에서의 공통의 추억은 제법 사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긴긴 겨울밤 인간들이 모두 한잠이 들은 재밤중(한밤중)에 나 혼자 일어나서 머리맡 쥐발 같은 새끼오강에 한없이 누는” 것이다. 그런 오줌 누는 행위는 시인이 어렸을 때부터 보통의 인간들과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사색적인 면모를 지녔음을 느끼게 한다. 4연의 경험을 한 여성들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오줌이 피부를 하얗게 하는 미백 기능이 있다고 민간에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시인의 고모가 잘도 받아 세수를 하였을 것이다.
   또 ‘한문체에서 글귀 끝에 운을 달고 흔히 대(對)를 맞추어 짓는 글’이라는 ‘부(賦)’의 특성을 생각할 때 각 연마다의 끝 구절을 눈여겨보게 된다.



   오줌의 미각만 빠지고 오감이 다 표현되고 있다. 아마 어린 시인의 오줌을 받아 세수하였던 시인의 고모는 오줌의 그 맛까지도 알았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때 네 개의 감각에 미각을 추가하지 않을 수 없긴 하다. 그렇게 되면 이 시가 오줌에 대한 오감(五感)을 다 표현하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으리라. 여기서 밑줄 그은 부분을 연결 시켜 보면 나름대로의 운도 맞는다. ‘부(賦)’라는 형식이 무엇인지 사전적인 정의만을 아는 오늘날의 세대에게 이 시는 한시(漢詩)가 아니라도 한글로 된 시에서 ‘부’가 가지는 문체의 특성인 ‘사물이나 그에 대한 감상을 비유를 쓰지 아니하고 직접 서술하는 작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시와 우리 시에 모두 능통한 시인이나 할 수 있는 기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