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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해 물건'과 '해당 물건'

이대성(겨레말큰사전 남북공동편찬사업회 선임연구원)

   법조문에서 자주 눈에 띄는 용어 가운데 ‘당해(當該)’가 있다. 이 말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바로 그 사물에 해당됨을 나타내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해당(該當)’과 별 차이가 없는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전에서는 이 둘을 비슷한 말로 처리하였다. 그러고 보니 ‘당해(當該)’와 ‘해당(該當)’은 같은 한자를 순서만 바꾸어 쓴 말인 것을 알 수 있다. 밖에 나가서 물어보면 어떤 말을 더 많이 알까? 법조문을 자주 접하는 이들 말고는 ‘당해’를 아는 이가 많지 않을 것이다. ‘당해’는 그야말로 ‘그들만의 말’인 것이다. 이처럼 일상생활에서는 쓰이지 않는데도, 그래서 어려운 말인데도 유독 법조문이나 공문서에서는 자주 쓰이는 말들이 있다. 법이 진정으로 누구에게나 공평하려면 누구나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법조문이나 공문서에 쓰는 용어를 다듬는 일에 힘을 써야 한다.

(1) 취득세의 과세표준이 되는 취득가격은 과세대상물건의 취득의 시기를 기준으로 그 이전에 당해 물건을 취득하기 위하여 거래상대방 또는 제3자에게 지급하였거나 지급하여야 할 일체의 비용을 말한다. <지방세법 시행령>

   (1)에서 ‘당해 물건’은 ‘해당 물건’으로 바꾸어 써도 문제가 없다. 더 나아가 ‘그 물건’이라고 해도 괜찮아 보인다. 이미 앞에서 ‘과세대상물건’이라 하였기 때문이다.

(2) 공단은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신고 또는 제출받은 자료에 대한 사실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소속직원으로 하여금 당해 사항에 관하여 조사하게 할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법>
(2-1) 공단은 제1항 규정에 따라 신고되었거나 제출된 자료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 소속 직원에게 해당 사항을 조사하게 할 수 있다.

   (2)에는 ‘당해 사항’을 ‘해당 사항’으로 바꾸는 것 말고도 고칠 점이 많다. 글은 필요한 만큼만 쓰면 되는데, 우리 법조문은 쓸데없는 말들을 너무 늘어놓기 일쑤다. 그래서 (2-1)과 같이 고쳐 보았다.

(3) 민법 제750조에 대한 특별규정인 민법 제755조제1항에 의하여 책임능력 없는 미성년자를 감독할 법정의 의무 있는 자가 지는 손해배상책임은, 그 미성년자에게 책임이 없음을 전제로 하여 이를 보충하는 책임이고, 그 경우에 감독의무자 자신이 감독의무를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을 입증하지 아니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

   (3)에 쓰인 ‘해태(海苔)하다’는 사전에 “어떤 법률 행위를 할 기일을 이유 없이 넘겨 책임을 다하지 아니하다.”로 풀이되어 있다. 즉, 해야 할 일을 제때에 하지 않을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평소에 ‘해태’라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없다. 말하자면, “너는 왜 학교 숙제를 해태하니?”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3)을 쓴 대법관들도 평소에는 거의 쓰지 않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유독 법조문에는 이 말이 자주 쓰인다. 일상 언어에서 동떨어진 말은 죽은 말과 다르지 않다. (3)의 ‘해태하지 아니하였음’은 ‘성실히 수행하였음’이나 ‘게을리하지 않았음’ 정도로 고쳐 쓸 만하다.

(4) 징역 또는 금고의 집행중에 있는 자가 그 행상이 양호하여 개전의 정이 현저한 때에는 무기에 있어서는 10년, 유기에 있어서는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 행정처분으로 가석방을 할 수 있다. <형법>
(4-1) 징역형이나 금고형으로 수감 중인 자가 생활 태도가 양호하여 뉘우치는 빛이 뚜렷할 때에는 무기형은 10년, 유기형은 형기의 3분의 1을 경과한 후에 행정처분으로 가석방할 수 있다.

   ‘행상(行狀)’은 ‘하는 짓이나 태도’를 가리키는 말로 평소에는 거의 들을 일이 없는 말이다. ‘개전(改悛)의 정(情)’ 또한 어색한 표현인 것은 매한가지다. 게다가 (4)에 쓰인 ‘~에 있어서’는 일본어투로 자주 거론되는 표현이다. 그래서 (4-1)처럼 고쳐 보았다. 글쓴이가 법 전문가가 아니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친 것은 아닌지 걱정되는 바가 있지만 취지는 드러나리라 생각한다. 함부로 사람을 처벌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형법은 다른 법조문보다도 명확하고 엄격해야 하는데도 실상은 그렇지 못한 듯하여 매우 안타깝다. 엉성한 표현과 이해 못할 어려운 한자어들이 너무 많다.

(5) 향후 안전관리 실태를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모니터링하여 문제가 있을 경우 영업정지 등의 엄중한 행정처분을 확행할 것이며 <소방방재청>
(5-1) 앞으로 안전 관리 실태를 꾸준히 살피고 감시하여 문제점이 있을 때에는 영업 정지, 면허 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엄격히 시행할 것이며

   ‘확행’은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말이다. 잠깐 찾아보았지만 일어사전이나 중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인 듯하다. 그래서 그 뜻을 짐작만 할 뿐인데 ‘確行’ 즉, ‘확실하거나 엄격하게 시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말을 싣지 않은 사전을 탓해야 할까? 아니면 사전에도 없는 말을 함부로 써 대는 공공기관을 탓해야 할까?

(6) 취재를 목적으로 출입을 요청하는 언론사는 인터넷 사전 예약과는 별도로 수도방위사령부에 승인을 득한 후(얻은 다음에/받은 후에) 안내를 받아 취재할 수 있습니다. <북악산 관람 준수 사항>
(7) 본 절의 선거관리에 소요되는 경비는 후보등록 마감 익일에(→이튿날에/다음날에) 각 후보의 선거자금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파악, 확정하여 각 후보에게 고지한다. <○○대학교 총학생회 회칙>
(8) 군 복무를 필한 자(→마친 자)

   (6)~(8)도 조금만 신경을 쓰면 훨씬 자연스럽게 고쳐질 수 있는 예들이다. ‘득(得)하다’, ‘익일(翌日)’, ‘필(畢)하다’ 따위는 이런 문서들이 아니면 좀처럼 보기 힘든 말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말들이 전문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것도 아니다. 워낙 눈에 익어 그리 어렵지 않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말들 하나하나를 쉽게 다듬어 쓰려는 자세가 우리말을 다듬고 바루는 첫걸음이 된다.

   공공기관이 일상의 말과 동떨어진 말을 쓰게 되면, 그만큼 국민은 공공기관에서 멀어지게 된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는 말, 생명력이 넘치는 말을 쓰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이다. 몇 해 전부터 법제처에서 ‘알기 쉬운 법령문 만들기’라는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