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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보'의 어원

홍윤표(연세대 교수)

[1]


   부부간에 서로 부르는 호칭은 최근에 여러 가지로 변화하여 왔다. 한때는 ‘자기’란 재귀대명사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남편을 부를 때에 ‘아빠’로 불러 우리를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 ‘아빠’는 ‘아기 아빠’란 의미를 지니기도 하지만, 실상은 1960년대 말에 유흥주점의 젊은 여인들이 나이가 지긋해서 ‘아빠뻘’이 되는 남자 손님을 애교 있게 부르기 위해 ‘아빠’라고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 당시에 나온 ‘아빠 안녕’이란 제목의 영화는 어린이를 주제로 한 영화가 아니었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오빠’라고 불러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연애 시절에 ‘오빠’처럼 가깝게 느껴져서 부르던 것이 혼인 이후에도 계속 그렇게 불러서 된 호칭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러한 사정을 전혀 모르는 외국인들이 이 호칭을 듣고서는, 한국에서는 ‘근친혼인’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었다. 하지만 부부간에 사용되는 여러 호칭중에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쓰였던 것은 ‘여보’였다.
   ‘여보’는 사람을 부르는 말로 보통은 부부 사이에 흔히 사용하지만, 같은 또래의 사람들끼리도 사용한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어른이, 가까이 있는 자기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을 부를 때 쓰이는 말, 부부 사이에 서로 상대편을 부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여보, 마누라!”, “여보, ○○ 아빠!” 또는 “여보, 주인장!”처럼 쓰이기도 하고, “여보!”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는데, 부부간에 쓸 때에는 대체로 단독으로만 사용한다.
   ‘여보’의 어원을 ‘여기(를) 보오’로 보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즉 ‘여보’는 ‘여 + 보’로 분석되고 ‘여’는 ‘여기’의 준말이며 ‘보’는 동사 ‘보다’의 어간 ‘보-’에 어미 ‘-오’가 붙은 ‘보오’가 줄어들어서 된 말이라는 것이다. ‘여보’를 ‘여보(如寶)’, 즉 ‘보배와 같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보배와 같이 소중하고 귀중한 사람을 부를 때 쓴다는 주장이 있지만, 무시해도 좋을 견해다.
   ‘여보’가 ‘여기 보오’에서 왔다는 주장은 검증되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옳은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이 언제부터 쓰이었으며, 그 쓰임과 뜻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는 아무도 검토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여보’의 ‘여’는 과연 ‘여기’에서 ‘기’가 줄어든 말일까? ‘여보’가 등장하던 시기의 ‘여기’는 ‘여긔’의 형태였다. 이것에서 ‘긔’가 생략될 수 있다는 음운론적 조건은 찾기 어렵다. ‘여’가 방언형에서 쓰이는 형태들을 살펴보면 그 해석이 가능하다. 즉 ‘여긔’가 ‘역’으로 축약되고 이 ‘역’이 ‘여’로 변화를 겪은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러먼 역까지(여기까지) 온 짐잉께 엇찧게 엇찧게라우. 성님댁이로 들래서 갈께라우.” <한국구비문학대계6-2 : 전라남도 함평군 편, 45p>
   이렇다고 이 환약 시 개를 넣고 내 집이 역까지(여기까지) 온짐잉께 찾아가서 집이나 귀경허고 가련 허고 가먼은 내 자식들이 큰 아부지 와겠다고 눈도 떠볼 안 헐 새이요. <한국구비문학대계6-2 : 전라남도 함평군 편, 39p>
   내가 여보소 신경통이 영 도져가주 그 아프든 게 여(여기) 이틀 달어 놓이께 영 다 나아 가니더.”<한국구비문학대계7-10 : 경상북도 봉화군 편, 43p>
   “당신 여(여기) 왜 이래 앉아 있소?”<한국구비문학대계7-10 : 경상북도 봉화군 편, 45p>

   ‘여보’의 ‘보’를 ‘떡보, 울보, 먹보’ 등에 보이는 접미사 ‘-보’로 해석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을 부를 때 ‘떡보!, 울보!, 먹보!’ 하고 부르지 않고, ‘떡보야, 울보야, 먹보야’로 부르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애교로 ‘여보야’로 부르는 경우가 간혹 있지만, 이것은 ‘여보’가 명사처럼 굳어진 후에 생겨난 말이다. 간혹 어느 지역(예컨대 전남의 일부 지역)에서는 남편이나 아내를 지칭할 때 “우리 여보야가 그렇게 말했어.”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어서 ‘여보야’까지도 명사로 굳어지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화났을 때 부르는 ‘여봇’은 ‘여보’에 ‘ㅅ’을 붙인 것인데, 이것은 ‘열중 쉬엇, 차렷’ 등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런 뜻을 가진 ‘ㅅ’은 동사에만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여보’의 ‘보-’는 동사 어간 ‘보-’임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여보’가 언제부터 쓰이었을까? 문헌에 ‘여보’의 형태로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19세기이다. 다음에 19세기(철종 때)의 춘향전에 나오는 ‘여보’를 살펴보도록 한다.

방자가 이몽룡에게
방 엿오되 여보 도련임 쳔황씨가 목으로 왕이란 말은 들어쓰되 쑥으로 왕이란 말을 금시초문이요 <상,15a>
방 듯고 여보 도련임 졈잔이 쳔자는 웬 이리요 <상,15b>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춘향이 홰을 여 여보 도련임아 굴지 보기 실소 그만 울고 력 말리나 오 <상,37a>
여보 도련임 인자 막 하신 말삼 참말이요 농말이요 <상,38a>
춘향이 다라 여보 도련임 인졔 가시면 언졔나 오시랴오 <상,45a>
이몽룡이 월매에게
여보소 장모 춘향만 다려 갓스면 그만 두건네 그례 안이 다려가고 젼데가 <상,41a>
월매가 이몽룡에게
춘향의 모 기가 막켜 여보 도련임 남우  갓탄 자식을 이 지경이 웬 이리요 <상,43b>
춘향이가 변사또에게
반반사 져 춘향이 졈졈 포악는 마리 여보 사 드르시요 일런포한 부지상사 어이 그리 모르시오 <하, 14b>
춘향이가 월매에게
춘향이 듯고 여보 어만이 져 봉사 좀 불너 주오 <하, 19b>
변사또가 운봉 영장에게
물 업난 져 본관이 여보 운봉은 어를 단이시요 <하, 37a>

   요즈음 여기에 쓰인 용법대로 ‘여보’를 사용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오해를 받을 것이다. 방자가 상전인 이몽룡에게 ‘여보 도련임’이라고 하지를 않나, 춘향이가 남원부사 변사또에게 ‘여보 사’라고 쓰지를 않나, 춘향이가 자기의 어머니에게 ‘여보 어만이’라고 말하지를 않나, 현대국어의 ‘여보’의 용법으로 볼 때 모두 이상한 것이다. 그러나 19세기에는 이러한 쓰임새가 통했던 것이다. 즉 아랫사람이나 윗사람 그리고 평교에도 두루 쓰일 수 있었던 호칭이 ‘여보’였다. ‘여보’가 문헌에 등장하기 시작했던 19세기와 이것이 널리 쓰이던 20세기 초에 나타나는 ‘여보’는 몇 가지 특징을 보인다.
   첫째는 ‘여보’ 자체가 단독으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여보’의 뒤에 ‘도련임, 사, 어만이, 운봉’ 등의 다른 호칭이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간혹 호칭의 뒤에 ‘여보’가 붙어서 사용되기도 하였고, ‘여보’ 단독으로 쓰이기도 하였지만 흔한 예는 아니었다.

   시쟝텬 구든  도셔 그릿가 도 여보 듯조시오 <약산동(1913년),49>
   방 듯다가 말을 하되 여보 하날임이 드르시면  놀실 거진말도 듯거소<춘향전(19세기)상,15a>

   둘째는 ‘여보’의 뒤에 호칭을 쓰고 그 호칭에 다시 호격 조사를 붙여서 사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여보 도련임’의 뒤에 ‘-아’를 덧붙여서 ‘여보 도련님아’ 등으로 부르는 것이다.

   춘향이 홰을 여 여보 도련임아 굴지 보기 실소 그만 울고 력 말리나 오 <춘향철종(19세기)상,37a>
   여보쇼 동리 들아 이 아 거동을 보쇼 <김학공젼(19세기),138>
   셔로셔로 의논 말이 여보와라 여슉아 가 틀린 말이 잇거든 아모리 동관이라도 곳 욕을 여라 <남원고사(19세기)3,12a>


[2]


   셋째는 상대방을 맞대면해서 부를 때에만 사용된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보이지도 않는데도 ‘여보’하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보’로 시작된 호칭은 부르는 사람의 신분에 따라 상대높임법의 다양한 형태들로 발달하였다. 즉 아주높임인 ‘합쇼체’에는 ‘여보옵시오, 여보십시오, 여봅시오, 여봅소’ 등이 등장하고, 예사높임의 ‘하오체’에는 ‘여보오, 여보, 여보시오(여보시요), 여보세요, 여보쇼, 여보소, 여보슈, 여보시우’ 등이 등장하고, 예사낮춤의 ‘하게체’에는 ‘여보게, 여보게유, 여보시게’등이 등장하고, 아주낮춤의 ‘해라체’에는 ‘여보아라(여보와라), 여바라’가, 그리고 반말에는 ‘여봐’가 쓰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발달한 형태들이다.


   (1) 아주높임

   ① 여보옵시오
   이놈아 그 말은 웨 알외니 최두  알외 여보옵시오 이놈 보옵시오 그 말을 알외오지 말나 고 역구리 콱콱 지옵니다 <남원고사(19세기)3,20a>

   ② 여보십시오
   귀ㅅ결에 큰물 흐르 소리를 듯고 얼풋 계교 한가지를 여 여보십시오 나를 무슨 죄로 이러케 어 가시지 모로겟슴니다마는 <화셰계(1911년),47>

   ③ 여봅시오
   여봅시오<한불자전(1880년),29>
   분주히 부억에 가서 록쓴 식칼을 가져다가 배를 그면서, 여봅시오. 선서 좀 위로를 시 것이 아니라 당신이 더 울으시니……. <무정(1918년),030>

   ④ 여봅소
   흥부 안 는 말이 고 여봅소 부졀업슨 쳥념 맙소 <흥부젼(19세기),02b>


   (2) 예사높임

   ① 여보오
   운봉이  말이 여보오 본관 담 말고 여 셩연의 풍월귀나 옵시다 <남원고사(19세기)5,23b>

   ② 여보시오
   져 계집아 거동 보소 판 소 반겨 듯고 허판님 여보시오 이리 와셔 여 가오 <남원고사(19세기)4,41b>

   ③ 여보시요
   대좌 우스며  말이 여보시요. 나 특무만치 얼골이 어엿부지 못여셔 가라  거시오 <소상강(19세기),054>

   ④ 여보세요
   여보세요 상인 씨 하고 조선 옷에 뒤짐을 진 종수가 말을 낸다. <화염에싸인원한(1926년)1,127>

   ⑤ 여보쇼
   미 다라 구박여 왈 여보쇼 동리 들아 이 아 거동을 보쇼 <김학공젼(19세기),138>

   ⑥ 여보소
   그 즁 늘근  두 암을 달여 왈 여보소 네들 글어치 아니 닐이 잇시니 쳐 사람이 셰샹의 나셔  닐을 면 쳔디신명이 도으시려니와 <졍두경젼(19세기),22a>

   ⑦ 여보슈
   그러나 그들은 수상스러웁게 자긔를 두 서너 번 치어다 보더니 여보슈 하고 말이 공순하여젓다. <지형근(1926년)3,088>

   ⑧ 여보시우
   여보시우 그만두시우. 술 취한 사람을 그러면 무엇을 하시우. 그만두시우. 그만두어요 <뉘치려할때(1940년),26>


   (3) 예사낮춤

   ① 여보게
   여보게 평양집 라 네 셔방임되냐 못 쓰견 <게우사(19세기),447>
   그런데 여보게 자네 왼 몸이 어 물독에 진 새앙쥐 가튼가. <운수조흔날(1924년),145>

   ② 여보시게
   여보시게 그 말 마소 어업법이 실시라네 어부 애 량이면 인허장이 어 잇나 <대한매일신문(1904년),02>

   ③ 여보게유
   다 쓰러저가는 물방아간 한구석에서 섬을 두르고 언내에게 젓을 먹이며 떨고 잇드니 여보게유 하고 고개를 돌린다. <만무방(1934년),83>


   (4) 아주낮춤

   ① 여보아라
   여보아라 요년 네 권쥬가 본이 그러냐 하 권쥬가 이러냐 <남원고사(19세기)5,21a>

   ② 여보와라
   쳥직이 불너 뭇 말이 여보와라 남원 하인 하나도 업냐 나가 보와라  졔 <남원고사(19세기)3,02a>

   ③ 여바라
   여바라 춘향아 져리 가거라 가는 도을 보자<춘향철종(19세기)上,28b>
   여바라 호왕놈아 황후 후 치 말나<유츙열전(19세기),하22a>


   (5) 반말

   ① 여봐
   여봐 편히 좀 앉게. 두루마기를 벗구. <봄봄(1930년대),326>

   이러한 높임법에 따라 나타나는 ‘여보’ 계열은 한 문장 안에서도 말하는 상대방의 신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어느 때는 ‘여보시오’를, 어느 때에는 ‘여보아라’를 쓰는 것인데, 그것은 상대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3]


   한 편의셔 탁견 씨름 쥬졍 홈 이럿트시 분난 졔 옥장이  말이 여보시오 이리 구시다가  염문의 들니면 우리 등이 다 쥭소 한 왈 다며  말이 여보와라  말고 오가 염문 말고 소곰문을 면 누구 날노 발기냐 <남원고사(19세기)4,7a>

   또 불특정 다수에게도 ‘여보’ 계열이 사용되었는데, 그때에는 주로 ‘여보아라(여보와라)’ 등으로 쓰이었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의 주의를 끌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서, ‘이리 오너라’와 동일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통인이 드러가 그로 엿자오니 사 도련임 승벽 잇스믈 크계 짓거야 이리 오너라 방으 가 목낭쳥을 가만이 오시라 <춘향철종(19세기)上,17b>
   기침을 한 번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이리 오너라." 하였다. 그때야 문여는 서리가 나더니 혜숙의 어머니가 나오며 "누구를 찾으세요?" 한다. <환희(1922년),067>

   그래서 ‘여보’는 복수를 뜻하는 ‘여러분’ 앞에서도 쓰이었다. ‘여보 여러분’은 현대국어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쓰임이지만 20세기 초에는 흔히 나타났던 예문들이다. 현대국어에서는 ‘여보시오 여러분들’은 쓸 수 있다.

   여보 여러분 나 녯날 평시에 슉부인지 밧쳣더니 지금은 가련 민죡 즁의  몸이 된 신셜헌이올시다. <자유종(1910년),1>
   여보 여러분  말 좀 들으시오 가 누구인지 알고 려가오 나 황간수 일리  권진오 <고목화(1907년)상,4>

   이러한 여러 가지 특징으로 보아서 ‘여보’를 비롯한 ‘여보’계의 어휘들은 원래 가지고 있는 의미인 ‘여기 보오’란 뜻을 내면에 감추고 있으면서 ‘말하는 사람에게 시선이나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르는 기능은 그 뒤의 호칭이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보 도련님(마누라 등등)’은 그냥 ‘도련님’(마누라 등등)하고 불러도 상관이 없지만, 대신 ‘여보 마누라(도련님 등등)’ 하고 부르면 현장성이 있으며, 말하는 사람에게 관심과 시선을 집중시켜서 두 사람 사이의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여보’가 다양한 높임이나 낮춤에 두루 쓰이다가 ‘여보’에 높임법에 따른 다양한 형태들이 등장하면서 ‘여보’는 예사높임에만 쓰이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사높임의 대상인 부부간의 호칭에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럼 ‘여보’가 부부간에 쓰일 때에는 어떻게 변화하여 왔을까? 남편이 아내에게 또는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를 사용할 때에는 대부분이 ‘여보’의 뒤에 ‘마누라(마노라)’나 ‘셔방님’ 또는 ‘영감님’을 붙여서 사용하였다.

   홍참의가 고두쇠의 눈에 뵈히지 아니려고 문을 왈칵역로 쑥드러셔며 여보 마누라 어셔드러오 부인이 급히 드러 가다가 너머진다 <치악산(1908년)상,96>
   (리판셔) 여보 마누라 우지말고 검홍의게 이약이 좀 자세 드러봅시다 <치악산(1908년)상,169>
   마누라 여보오 하인 불너 압 집에 가셔 술이나 좀 밧아오라 오 <설중매(1908년),60>
   여보 셔방님  말 듯소 가 모도 화이오  거시 열증이라 <남원고사(19세기)4,38b>
   여보 셔방님  말 듯소 일이 본관 일 잔니 <남원고사(19세기)5,10b>
   (마누라) 여보 영감 뎌놈  양을 보닛가 우리 보 각이 더 나구려 <고목화(1907년)상,39>

   그런데 부부간의 예사높임을 약간 낮추면 ‘여보’ 대신에 ‘여보게’를 사용하였는데, ‘여보게 마누라’의 모습으로는 보이지만 ‘여보게 셔방님’이나 ‘여보게 영감님’ 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 당시의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동지) 여보게 마누라 아러셔 술잔 데여쥬게 만 거든 가 셔울가셔 길슨이 보
   고 오네 <귀의성(1907년),26>
   여보게 마누라 울지 말게. 그짓 소견업 년 뒤어진 무엇이 셜워 운단 말인가. <화의혈(1911년),70>

   그러나 ‘여보’나 ‘여보게’를 빼어 버리고 단지 ‘마누라, 셔방님, 영감님, 영감’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마) 영감 이말 뎌말 그만두고 인져 봄이 되얏스니 갑동이나 졔집에 갓다오게 주션 좀 시구려 (박) 마누라 그 말이 올소 <고목화(1907년)상,43>

   그러나 이러한 호칭도 빼어 버리고 단지 ‘여보’ 단독으로도 부부간의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19세기 말에도 간혹 그러한 예가 발견되지만 주로 20세기 초에 와서 일반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여보 그것이 나려올 지 김 주사집에 잇든 것을 데려다 둡시다 그려 <계집하인(1925년),10>
   (최) 응 죄를  혼자 지어다구 두 외 갓치 지엿지 (부인) 여보 남의  말 마르시오 <은세계(1906년),25>

   이처럼 19세기에는 ‘여보 마누라, 여보 서방님, 여보 영감님’ 등으로 많이 사용하였지만, 20세기 초에 와서는 ‘여보’를 빼어 버리고 단지 ‘마누라, 서방님, 영감님’으로 부르거나, 또는 ‘여보’ 단독으로 사용하는 용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여보’와 같은 용법으로 굳어진 것이다.
   그러면 19세기 이전에는 ‘여보’와 같은 기능을 가진 어휘는 없었을까? 16세기 문헌에 ‘이바’가 보여서, 이것이 오늘날의 ‘여보’의 기원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이바 네 닷 돈 덜어라 말오 네 고디시근 갑슬 니르면 <번역노걸대(1517년),하22b>
   이바 내 너려 쵸마 <번역박통사(1517년),상10a>
   이바 밥 앗기디 말오  세 번식 저희를 밥 주어 <번역박통사(1517년),상10a>
   개여 이바 우리 이 官人이  붓 갈흘 오져 니 <번역박통사(1517년),상17a>
   이바 내 너려 닐오마 쇽졀업시 간대로 갑슬 와 므슴 다 <번역박통사(1517년),상32b>
   이바 엇디 이리 누르고 여위뇨 <번역박통사(1517년),상37b>
   더러운 노마 이바 뎌 눈브 활와치 오를 블러 오라 <번역박통사(1517년),상59a>

   ‘이바’는 앞에 호칭이 나타나고 (개여, 더러운 노마) 뒤에 ‘이바’가 쓰이거나 ‘이바’ 단독으로 쓰이거나 한다. 대부분이 백화문을 번역한 문헌에만 출현하는데 항상 아랫사람에게만 쓰는 말이다. 백화문 ‘니래(你來)’의 번역문인데 ‘니래(你來)’는 ‘너 이리 와라’의 의미여서, 높임에는 사용되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이바’가 등장하던 시기에 ‘이봐, 여봐’와 같은 어휘는 보이지 않는다. ‘이바’가 ‘이 보아’의 축약형이라고 한다면 ‘-를 보아’도 ‘-를 바’의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로 그러한 형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이 보오’의 축약형이라면 ‘이보’로 나타나야 할 텐데, “놉푸나 놉푼 남게 날 勸야 올녀두고 이보오 벗님네야 흔드지나 말념우나<李陽元의 시조>”에서처럼 ‘이보오’로 나타난다.
   그래서 ‘이바’가 ‘여보’의 기원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이바’가 ‘이것 보아’의 뜻을 가지고 있는 듯이 해석될 수 있지만, ‘여보’의 어원으로 단정하는 것은 큰 무리다. 그리고 ‘여보’의 기원을 ‘이바’로 본다면, ‘여보’가 다양한 높임에 사용되는 용법으로 변화한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이바’는 백화문의 번역서인 ‘박통사언해(1677년), 노걸대언해(1670년), 박통사신석언해(1765년)’ 등에 쓰이다가 20세기에 와서 ‘보아’의 축약형인 ‘봐’에 유추되어 ‘이봐’로 변화하였고, 현대까지 구어에서 쓰이고 있다. ‘이봐’가 ‘이것 보아’로 해석되면서 ‘여봐’도 등장하여 일반화되었다. 그래서 ‘여봐’는 ‘이바’로부터의 발달형과 ‘여보’로부터의 발달형의 두 가지가 있게 된 셈이다. 그러나 ‘이바’로부터 발달한 형태에는 ‘이바요’(또는 ‘이봐요’), 여봐라, 여봐요’의 형태가 생겨났고, 구어에서는 ‘이보세요’도 생겨났다.

   이봐 정순이 언니 식히는 대로 가만 잇서요 <찔레꽃(1937년),216>
   이봐 진호, 엄마가 말이야, <천맥(1938년),224>
   여봐-. 술 더웠거든 어서 들여 오구 무어 간즈메 좀 안주 될 걸루……<속천변풍경(1937년),205>
   아이구 여봐 <화상보(1951년),055>
   이봐요 정순이 난 암만 해도 옵바가 화가 나신 것 가태요 …… 정순이가 너무 옵바를 괴롭혓지 머 가엽게」<찔레꽃(1937년),268>
   이바요 저리 가서 맘에 드는 옷감 골라요 어여 <찔레꽃(1937년),216>

   ‘여보’는 ‘여기 보오’의 준말이다. ‘여보’는 말하는 사람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에게 두루 쓰이었던 것인데, 높임법에 따라 ‘보다’에 다양한 높임법이 사용되어 ‘여보십시오, 여보시오, 여보게, 여보아라’ 등이 발달되면서, ‘여보’는 예사높임에 주로 쓰이고, 예사높임을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갖춘 부부간에 자주 쓰이면서 부부의 호칭으로 발달하였다. 처음에는 말하는 사람에게 관심이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주의를 환기시키는 말로 등장하여서 ‘여보 마누라, 여보 서방님’ 등으로 쓰이었지만, 차츰 ‘여보’가 단독으로 쓰이거나 ‘여보’를 빼고 ‘마누라, 서방님’ 등으로 불리어 오늘날까지 쓰이게 된 것이다. 전화가 등장하면서 직접 대면하는 상태가 아닌 환경에서는 ‘여보’가 거의 쓰이지 않고, ‘여보세요’가 일반화된 것은 최근에 일어난 변화다.
   한 호칭이 시대를 따라 변화하면서, 이렇게 다양한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보면서, 한 어휘의 생성과 소멸, 그리고 변화에 대해 신비스러운 느낌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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