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 끝에 피어난 제목(4) - 수사법에서 본 제목(2)
김희진(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지난 호에서는 수사법의 한 갈래인 비유·비교법형 중 은유법형 제목을 다루었다. 이번 호에서는 비유 비교법형 중 의인법형, 제유법형, 중의법형으로 된 제목을 살펴본다.
의인법형
‘의인법형’은 사람 아닌 것을 사람에 비기거나 사람이 하는 행동처럼 표현하거나 무정물(無情物)을 감정을 가진 것으로 나타내는 유형이다.
15평이 6억… 집값이 미쳤다
(조선일보 오경환 2003. 9. 5. B1. 함정훈)
주택 정책은 제 정신일까. 반어의 묘미가 연상되는 절규 같은, 비수 같은 이 한 마디. 다음 날 ‘광풍(狂風)’으로 이어간 지속적 끈질김이 후한 점수를 땄다.
제유법형
‘제유법형’은 전체와 부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의미가 축소되거나 확대될 때 또는 의미가 특수화하거나 일반화할 때 나타난다. 신문에서는 사물의 한 부분이 그 사물 전체를 의미하는 형이 많이 나타난다.
女神은 동양의 남자를 거부했다
(영남일보 백승훈 2004. 8. 20. 16. 구자건)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한국의 3인방이 모두 메달권 진입에 실패했음을 알리는 제목이다. 전혀 억지가 없고 매끄러우면서도 간결하다. 더욱이 흔히 습관적으로 생략하기 쉬운 토씨(조사) '의'를 살린 점에 호감이 간다. ‘의’가 있고 없음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예컨대 ‘동양 남자’라는 표현은 인종적 구분으로 오해되기 쉬운 반면 ‘동양의 남자’는 토씨의 구실로 ‘의’를 살려 공간적 구분(동양에서 온 남자)으로 이해되도록 도움을 준다. 편집기자에게 치밀함과 섬세함은 결코 빠뜨릴 수 없는 덕목이다.
중의법형
‘중의법형’은 하나의 말에 둘 이상의 뜻을 포함하여 표현하는 유형이다. 이런 유형은 전후 사정을 파악하고 있어야 문맥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는 부담이 있다.
오만이 아닌 '자만'에 졌다
(굿데이 김병곤 2003. 10. 23. 8. 조시행)
베트남에 이어 오만에 참패한 코엘류호 한국 축구의 현주소를 함축성 있게 잘 나타냈다.비교적 약체로 평가받는 오만에게 진 것은 한국 축구가 자만(自慢)에 빠진 탓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잘 표현했다. 다만 ‘오만이 아닌……’보다 ‘오만 아닌……’으로 하여 조사 ‘이’를 생략했더라면 더욱 힘 있는 제목이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만’과 ‘자만’이라고 ‘만’자로 운율까지 맞춘 점은 좋았다.
고기현 ‘銀메달’ 김동성 '怒메달'
(굿데이 김병곤 2002. 2. 25. 12. 조시행)
동계올림픽 쇼트트랙의 김동성 선수의 불운과 울분을 ‘怒메달’로 잘 표현했다. 미국 선수 오노의 헐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도둑맞은 뒤 다시 금메달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김동성 선수의 심정을 잘 묘사한 수작이다.
軍소리 마
(굿데이 김웅 2003. 5. 12. 9. 구자건)
네덜란드에 진출한 이영표 축구 국가대표 선수가 군입대(특례로 기초 훈련)를 법정시한인 30세까지 미루겠다는 뉴스. 키워드라고 할 수 있는 '軍'과 발음이 같은 우리말 '군소리 마'를 함축성 있게 조합했다.
“李를 어쩌나…” “앓던 李 빠지다”
(국제신문 안인석 2005. 1. 7.~ 8. 3.~ 4. 홍휘권)
‘이기준 교육부총리 임명 파문’이 정치권에 쟁점화되면서 여야의 첨예한 대립을 “李를 어쩌나…”라고 ‘李’기준 부총리의 이니셜을 넣어 간결하고도 통쾌하게 표현했다.
또 다음날 (1월 7일) 교육부총리의 사퇴를 발표한 배경을 “앓던 李빠지다”로 표현하여 혼란스러운 상황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쉬운 말로 풀어 쓰며 정곡을 찌른 안 기자의 순발력이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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