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인쇄하기     
  백석의 시「古夜」: 구순기(口脣期)의 환상

김옥순(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아배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山비탈 외따른 집에 엄매와 나와 단둘이서 누가 죽이는 듯이 무서운 밤 집 뒤로는 어늬 山곬작이에서 소를 잡어 먹는 노나리군들이 도적놈들같이 쿵쿵걸이며 다닌다

  날기 멍석을 저 간다는 닭 보는 할미를 차 굴린다는 땅 아래 고래 같은 기와집에는 언제나 니차떡에 청밀에 은금보화가 그득하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 뒷山 어늬 메도 조마구네 나라가 있어서 오줌누러 깨는 재밤 머리맡의 문살에 대인 유리창으로 조마구 군병의 새깜안 대가리 새깜안 눈알이 들여다 보는 때 나는 이불 속에 자즐어 붙어 숨도 쉬지 못한다

  또 이러한 밤 같은 때 시집갈 처녀 망내고무가 고개 넘어 큰집으로 치장감을 가지고 와서 엄매와 둘이 소기름에 쌍심지의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을 하는 밤 같은 때 나는 아릇목의 샅귀를 들고 쇠든밤을 내여 다람쥐처럼 밝어먹고 은행여름을 인두불에 구어도 먹고 그러다는 이불 웋에서 광대넘이를 뒤이고 또 눟어 굴면서 엄매에게 웋목에 둘은 평풍의 샛빩안 천두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고무더러는 밝는 날 멀리는 못 난다는 뫼추라기를 잡어달라고 졸으기도 하고

  내일같이 명절날인 밤은 부엌에 쎄듯하니 불이 밝고 솥뚜껑이 놀으며 구수한 내음새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가집 할머니가 와서 마을의 소문을 펴며 조개송편에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에 떡을 빚는 곁에서 나는 밤소 팟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얼마나 반죽을 주물으며 힌가루 손이 되여 떡을 빚고 싶은지 모른다

  섯달에 내빌날이 드러서 내빌날 밤에 눈이 오면 이 밤엔 쌔하얀 할미귀신의 눈귀신도 내빌눈을 받노라 못 난다는 말을 든든히 녁이며 엄매와 나는 앙궁 웋에 떡돌 웋에 곱새담 웋에 함지에 버치며 대냥푼을 놓고 치성이나 들이듯이 정한 마음으로 내빌눈 약눈을 받는다 이 눈새기 물을 내빌물이라고 제주병에 진상 항아리에 채워두고는 해를 묵여 가며 고뿔이 와도 배앓이를 해도 갑피기를 앓어도 먹을 물이다
(백석, 「고야(古夜)」, 『사슴』, 선광인쇄주식회사. 1936)

  백석(白石, 1912～1963)의 시 「고야(古夜)」에서는 그가 어린시절에 엄마와 함께 했던 신비로운 동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고야, 즉 ‘옛날 밤’이라는 시 제목에는 밤이 가지는 주술적이고 상징적인 뜻이 담겨 있다. 일반적으로 어둠을 나타내는 밤은 태초 이전의 암흑과 혼돈의 세계를 뜻한다. 이 시를 연별로 약술하면 다음과 같다.

  1연. 아버지는 타관 가서 오지 않고 엄마와 단둘이서 밤을 보내는데 어느 산골짜기에서 소를 잡아먹는 노나리꾼(농한기나 그밖에 한가할 때 소나 돼지를 잡아먹는 밀도살꾼)들의 발소리가 들리는 밤
  2연. 오줌 누러 깨는 재밤(깊은 밤) 머리맡의 문살 유리창 밖으로 땅 아래 산다는 외발 가진 조마구(옛 설화에 나오는 키가 매우 작다는 난쟁이)가 들여다 봐 나는 이불 속에 자지러져 숨도 쉬지 못하는 밤
  3연. 시집갈 막내고모가 고개 넘어 큰집에 와서 엄마와 둘이서 불을 밝히고 밤이 들도록 바느질 하는 밤, 나는 시든 밤을 꺼내 먹거나 은행을 구워먹거나 이불 위에서 광대넘이를 하거나 병풍의 천도 이야기를 엄마에게 해 달라고 조르거나 메추라기를 고모에게 잡아달라고 조르는 밤
  4연. 내일이 명절인 날은 부엌에 곰국이 무르끓고 방안에서는 일갓집 할머니가 와서 송편을 빚는 밤, 나는 조개송편, 달송편에 죈두기송편(진드기 모양처럼 작고 동그랗게 빚은 송편)을 골고루 먹으며 밤소, 팥소, 설탕 든 콩가루소를 먹으며 설탕 든 콩가루소가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고 반죽을 주무르며 흰가루손이 되어 떡을 빚고 싶은 밤
  5연. 섣달 냅일날(납일[臘日]: 한 해 동안 지은 농사 형편과 그밖의 일을 여러 신에게 고하며 제사지내는 날. 동지 뒤의 셋째 술일(戌日). 태조 이후에는 셋째 미일(未日)로 하였음.) 밤에 눈이 오면 나는 엄마와 함께 납일눈(납일에 때 맞추어 내리는 눈)을 받느라 아궁이 위에 떡돌 우에 곱새담(풀, 짚으로 엮어서 만든 담) 위에 함지, 버치(자배기보다 조금 깊고 크게 만든 그릇), 대냥푼(큰양푼)을 놓고 눈석이물(‘눈이 속으로 녹아내린 물’이란 의미를 가진 방언형)을 냅일물이라고 하여 약눈으로 받는 밤

  이 시의 배경에는 엄마와 시에서 말하는 어린 소년인 내가 함께 밤을 지냈던 경험들을 그리고 있다. 1, 2연에서는 엄마와 나와 둘이서 지내는 밤이 무섭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3～5연에 오면 일하는 엄마 곁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이 점점 뚜렷해진다. 어린 나는 엄마뿐 아니라 고모에게도 떼를 쓰고(그러면 다들 나의 뜻을 받아 준다는 함축적 의미가 있다.) 엄마와 이웃집 할머니가 함께 음식을 만들면 옆에서 맛을 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먼저 아버지는 출타하고 엄마와 아들 둘만이 집에 있다는 사실이 어린 아이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면이 드러나면서 오이디푸스적 갈등을 짚을 수 있다. 이 이야기에서 소년 내부의 오이디푸스적 갈등은 아버지가 집을 나갔을 때, 엄마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이다. 이 시의 환상에는 아버지가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베텔하임, 317쪽)
  두 번째로 백석의 다른 시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시에는 말하는 이가 좋아하는 음식 이야기가 여러 번 나오면서 구순기(구순[口脣]-입과 입술의 자극에서 성적 쾌감을 얻는 시기. 프로이트가 나눈 성적·심리적 발달 단계의 첫 단계로, 대체로 생후 18개월까지의 시기이다.) 또는 항문기(肛門期, 항문의 자극에서 성적 쾌감을 느끼는 시기. 정신 분석에서 어린이 성욕 발달 단계의 하나로, 생후 8개월부터 4세까지의 시기이다.) 상태의 고착과 퇴행을 짐작할 수 있다.
  구순기나 항문기는 단순히 유지하는 게 좋은 것이 아니다. 이 기간이 너무 길 때, 그것은 더 나은 발전을 방해한다. 구순적으로 고착되면 아이를 파괴시킬 수 있다. 어머니가 인정하고 계속 보호한다면 구순기는 남성성 뒤에 여전히 남아 있을 수 있다. 어머니의 자궁이 모든 위험으로부터 안전하게 자리를 제공하는 것과 같다. 발전의 이전 단계로 짧게 퇴행하는 것은 안전을 제공해 주고, 독립과 자기 확신의 다음 단계로 가는 데 필요한 힘을 제공한다. 그것은 어린 소년이 알게 되는 남근적 발달의 이점을 온전하게 즐길 수 있게 한다. (베텔하임, 317쪽)
  2연에서 나타난 땅속 나라의 외발 가진 ‘조마구’ 설화에서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인 것 같은데 조마구가 날기 멍석을 져 간다고 전해오고(멍석에 널어 말리는 곡식을 멍석째 훔쳐간다는) 닭을 보는 할머니를 차서 굴린다고 하는 못된 존재로 나타난다. 못된 조마구가 사는 땅 아래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있고 그 속에는 니차떡(이차떡, 인절미)에 청밀(꿀)에 금은보화가 그득하다고 전해온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점은 첫째, 조마구가 사람의 재물을 훔쳐가는 무서운 존재라는 점, 둘째, 그들은 땅 속 나라에 살면서 집에 보물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과 셋째로는 외발을 가진 난쟁이라는 신체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특징은 서로 연결되는 사항으로 보인다. 이 조마구는 한국적인 도깨비류로 보이는데, 일반적으로 도깨비는 한국의 귀신 중 매우 특이한 한국적 귀물(鬼物)로서 대개 이 설화에 나오는 것처럼 절대적 악이 아니다. 그것은 민간 설화에 나오는 요괴들, 난쟁이 등과 유사하다. 사람들이 도깨비에게 순종하지 않거나 너무 이기적인 욕심을 부려서 도깨비를 화나게 하지 않는 한, 또 그랬다 하더라도 그들은 치명적으로 해롭지는 않다.(이부영, 145쪽)
  이런 도깨비류는 괴물, 악룡, 큰 뱀, 마귀, 요정, 거인과 같이 모두 비인간적인 존재이며 표면상 인간에 관하여 적대적인 관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지상의 생활, 기후, 농작, 사람과 가축의 번성을 마음대로 막을 수 있는 포악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이것들은 인간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비인간적인 요소들을 상징하며 본능의 파괴적 측면을 의미한다. 파괴적 본능은 그러나 반드시 늘 절대적인 파괴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고 전환 가능한 긍정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기에 설화에서는 흔히 괴물이 제치(除治)된 곳에 금은보화가 나온다. 파괴적 본능은 극복되기만 한다면 언제나 유용한 이미지로 바뀔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이부영, 104쪽) 그런 점에서 도깨비류의 조마구는 파괴적이고도 긍정적인 요소를 동시에 가진 존재로 나타난다.
  세 번째의 외발 가진 조마구의 신체적 특징은 밤에 일어나 오줌 누는 어린 남자 아이의 성기와 은유적으로 연결되는 암시를 보여준다. 자신의 몸이 성기를 포함해서 자신이 바라는 모든 것을 해 줄 것이라는 환상은 조마구네 나라의 금은보화, 청밀 등의 보물들처럼 자신의 모든 환상을 채워 줄 것이라는 암시도 담고 있다.
   유아기에 어머니의 가슴은 모든 어린이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의 상징이고 어머니로부터 받은 모든 것의 상징이었다. 아동기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신체, 특히 자신이 새롭게 성적인 장비를 갖추고 있음을 발견한 몸의 한 면이 성취감을 줄 것이라는 마찬가지의 비현실적인 믿음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지금은 자신의 몸이 자신의 성기를 포함해서 모든 것을 해 줄 것이고 그렇게 믿기를 원한다. 이것은 소년과 소녀가 똑같다.
  엄마가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 영양분을 줄 것이라는 믿음이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입증됐을 때에 유아기는 끝난다. 이 시에서의 어린 소년은 유아기의 남자아이라기보다 아동기의 어린 소년으로 보인다. 물론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어른의 목소리이긴 하지만 이 시에 등장하는 소년은 그만큼 주견이 있고 판단력도 있으며 어리광을 부리면서도 철이 든 모습을 보여준다.
  유아기의 끝은 어머니의 치마 곁을 떠나 세상과 대면하라고 내보내지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이가 어른으로 변모하기 위해서는 길고 어려운 과정을 시작해야 한다. 이 노정의 첫 번째 단계는 인생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으로 구순에 의존하는 일을 포기하는 것이다. 구순적인 의존성에서 어린이가 독자적으로 자신감 있게 바뀌어야 한다. (베텔하임, 311쪽) 아동기의 끝은 그런 환상적인 유치한 꿈을 포기하고 자기 확신에 이르는 것이고, 심지어는 부모에게 대항하여 스스로 자신의 일상의 명령자가 되는 것이다. (베텔하임, 309쪽)
  이 시에서는 어린시절에 전지전능한 엄마에 기댄 마법에 대한 믿음이 자신을 가지고 이 세상을 대적하도록 도와주었다고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우리가 세상을 사는 데에 자신감을 가져야 하고 일시적으로 어머니의 보호 아래에 기대었다가 인생을 지배하기 위해 겪어야 할 위험을 기꺼이 대면해야 한다고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참고문헌>
  이부영(2000), 『한국 민담의 심층 분석』, 집문당
  이상규(2005), 『위반의 주술, 시와 방언』, 경북대 출판부
  브루노 베텔하임(1998), 『옛이야기의 매력』, 시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