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통일을 위한 방송

손범규(孫範奎) / 서울방송 아나운서,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방송은 소리나 문자나 모두 언어의 매체이다. 언어는 방송의 가장 중요한 전달 수단이기 때문에 방송 언어에 대한 관심은 어느 나라나 크다. 우리나라의 경우 방송언어는 아나운서나 기자 등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방송인들이 사용하는 언어, 더 나아가 표준어를 방송언어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는 북측에서도 마찬가지로 북측의 방송원(아나운서)들은 북측의 표준어인 문화어를 사용한다.
  그런데 남과 북 모두 방송언어의 대표적인 화자는 아나운서와 방송원이다. 북측의 대표적인 방송 교범인 ‘조선말 화술’은 북측의 방송원들을 ‘당의 선전 일꾼이면서 당 언어정책을 관철하는 영예로운 전사들이며 온 나라에 평양말(문화어)을 보급하는 기수들’이라고 정의했다. 남측의 아나운서들도 방송의 공영성과 우리말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역할을 하니, 나라말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남과 북이 차이가 없지만 북측의 방송원들은 주체사상과 당성, 노동계급성, 인민성을 강조하는 방송을 해야 하고 이에 맞는 방송언어를 구사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와 차이가 있다. 북측 방송에서는 ‘친애하는, 위대하신, 경애하는, 영도자(領導者)’와 같은 특정인을 미화하는 높은 존칭의 단어나 ‘앞잡이, 간악한, 파렴치한, 무찌르자, 준엄한 진군, 원쑤를 잊지 말자’ 같은 전투적이면서 선동적인 용어들이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남측의 방송은 대통령에 대해서도 ‘님’을 붙이지 않으며 지나친 존대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즉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등의 표현을 사용한다. 이렇게 본다면 남과 북의 방송언어의 대표적인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사상적인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 조선중앙통신과 조선중앙방송이 김정일 위원장 소식을 전하면서 김정일 위원장 이름 앞에 항상 붙여온 '위대한 영도자'라는 수식어를 생략했다고 해서 전 세계적으로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일이 있었다. 단순히 김정일 위원장의 직함만을 소개했다는 것인데, 이는 정치, 권력적으로 이상 징후가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북측 체제에 이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북한 언론의 이런 태도 변화는 이제 북측도 국제적인 교류나 개방을 의식하여 국제적인 관행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게 한다.
  남북 방송의 교류는 아직 미흡하지만 변화의 기운은 느낄 수 있다.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남북한 방송 교류에 대해 논의가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고, 2002년 남북 방송 교류를 위한 몇 가지 합의가 실지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가 있기 전에도 방송계 자체의 교류는 있어 왔다. 1999년 서울방송과 문화방송이 평양에서 열린 남북 합동 음악제를 잇따라 중계방송 했으며 2000년 9월 한국방송이 ‘한민족 특별 기획-백두에서 한라까지’를 북한 조선방송 위원회와 공동 제작해 생방송했던 일이 그것이다. 이후에도 개별적인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제작도 있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교류는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대부분 일회성에 그침으로써 지속적인 방송 교류라는 성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북측의 호칭 변화는 작은 일이지만 북측의 방송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게 하고 있고 남측의 방송들은 거창한 기획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직접적으로 남북의 언어 차이를 생각해보는 프로그램들을 계속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남북한 사이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면 방송 언어의 차이는 크게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글쓴이의 생각이다. 서로가 상대방의 방송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사상적인 또는 체제에서 오는 차이를 줄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우리가 동서독의 통일 과정에서 볼 수 있었다. 남과 북의 프로그램을 자유스럽게 누구나 볼 수 있을 때 방송은 통일을 위한 가장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