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 중 작품 ‘추(秋)10’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원


송간 석실의가 효월을 보쟈니 /브텨라브텨라 // 공산락엽의 길흘엇디 아라 볼고/ 지국총 지국총 어와 // 백운이 좃차오니 녀라의 므겁고야 <추10>
  ‘추(秋)10’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선조 20)〜1671(현종 12)])의 어부사시사 춘하추동 각 10수 중 가을의 열 번째 작품이다. 어부사시사는 아침에 출항하여 밤늦게 돌아오는 어부의 하루를 1〜10수로 나누어서 표현하고 있고 춘하추동 네 번 되풀이되는 구조이다. 중장에 있는 후렴구 ‘브텨라브텨라’는 출어(出漁: 고기 잡으러 나감)에서 귀항(歸港: 항구에 돌아옴)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두 번째 후렴구 ‘지국총 지국총 어와’에서는 ‘지국총’이 ‘찌거덩’ 또는 ‘찌그렁’으로 노를 저을 때 나는 마찰음을, ‘어와’에서는 ‘어영차, 엇샤'하고 사공이 배를 저으면서 내는 감탄사로 볼 수 있다.
  초장에서는 바다로 나갔던 배가 소나무 숲 사이[松間]에 있는 돌집[石室]으로 돌아와 홀로 새벽달[曉月]을 보겠다는 뜻을 말한다. 중장에서는 그 돌집을 찾아가는 길이 깊은 밤 낙엽 깔린 산 위라서 찾기 어려움을 말하고 있다. 종장에서는 흰 구름과 벗하며 돌아오는데 내 몸에 걸친 소나무 띠옷[女蘿衣]이 무거울 정도로 몹시 피곤한 상태임을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을 쓸 때의 고산의 나이가 65세임을 생각한다면 단순히 고기잡이 일의 뒷마무리에서 오는 고단함이라기보다 자신의 인생 전반을 돌이켜 볼 때 활동기에서 휴식기로 돌아오며 느끼는 피로감일 수도 있다.
  이 작품의 거점이 되는 장소는 남해의 보길도에 있는 ‘동천석실’(洞天石室)이다.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진 섬이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차례 귀양살이를 겪었던 고산은 병자호란을 당하여 인조대왕이 삼전도에서 항복했다는 소식에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에 숨어 버리려고 떠났다. 가던 길에 갑자기 불어 닥친 강풍으로 보길도에 잠시 머무르게 된 고산은 보길도의 산세와 바다와의 절묘한 경치에 매혹되어 영원히 남기로 한다. 그 당시 갑부였던 고조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고산은 보길도를 자신의 이상향에 맞추어 개간하기로 한다. 섬 전체를 조경의 범위로 삼아 부용동 입구에는 세연정, 거기에서 3km 떨어진 곳에 낙서재를 짓고, 낙서재에서 마주 바라보이는 곳에 동천석실을 앉혔다. 세연정은 연못과 주위의 나무들을 조화롭게 살리고, 연못 가운데는 자라 모양의 커다란 바위를 그대로 두었다. 정자와 연못 사이사이에 심은 동백나무, 대나무, 때죽나무, 멀구슬나무들은 울창한 숲을 이루고, 후일 아담한 조선조 민간 정원의 원형이 되었다. (윤수영, “잔잔한 은혜”, 생각의 바다, 2004)
  동천석실은 격자봉의 북쪽에 있는 안산 남쪽 산 허리에 있는 거대한 바위 무리를 일컫는다. 이 거석을 받치고 있는 널따란 낮은 땅에는 못이 있으며 그 동쪽의 큰 바위 아래에는 10계단의 돌계단으로 연결되는 깊이 1.5m, 넓이 4.5m x 4.1m 되는 지하석실이 있다. 이 거대한 바위 무리의 동쪽 바위 위에 가로와 세로가 약 5m되는 집터가 있는데 1993년에 그 집터에 돌집을 복원하였다. (정동오, ‘부용동원림의 조경용어에 관한 조경사적 측면에서의 고찰’, “고산 윤선도의 생애와 업적”, 11월의 문화인물 고산 윤선도 기념 전국학술대회, 1991.)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이 시조의 분위기를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깊어가는 가을철의 감각이 배어 있다. 녀라의를 입고 있다는 것에서 정식 선비의 의관이 아닌 은자의 복색이라고나 할 옷매무새를 묘사하고 또 송간 석실이라는 처소의 표현에서도 소박한 살림임이 암시적으로 드러난다. 조선조의 소나무는 절개를 나타낸다는 점에서 이미 교훈적 의미를 품은 상징이기도 하고 소나무 껍질은 구황 식물이라 가난한 사람이 가까이하는 거친 것이라고 볼 때 역시 소나무로 만든 의상과 집물은 은자의 간소한 살림을 나타내는 환유라 볼 수 있다. 어옹의 거처가 자연 속에 깊이 파묻힌데다가 낙엽이 떨어져서 길을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외떨어진 산 속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송간석실과 새벽달의 대우 관계는 세속을 떠난 도인(道人)의 분위기를 나타내고 있고 길을 못 알아본다는 점에서도 허심(虛心)한 자세가 나타난다. 종장에서는 어옹이 구름과 노니는 존재로 나타나는데 ‘백운-녀라의-석실’의 함축적 연결을 보면 기품있는 은자가 거처하는 공간임이 환유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종장에 나타나는 백운(흰 구름)의 이미지다. 흰 구름이 어옹의 뒤를 좇아오고 있다. 백운은 어떤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백운은 먹구름과 비교하여 볼 때 상서로운 존재를 상징하기도 한다. 공간적으로 보면 구름은 높은 곳, 상층인 하늘에 위치하고 있다. 백운이 두른 집이거나 백운이 좇아오는 공간적인 위치는 지상에서 높은 곳, 세속의 기운이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신성한 공간임을 암시적으로 표현해 주고 있다. 즉 어옹의 처소는 인간 세상이 아니라 어부 생활의 중심 세계였던 바다처럼 은자만의 신성한 세계에 속하는 공간으로 암시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은자의 처소는 평지보다는 높은 구름이 머무는 공간으로 표현되고 있으며 세속과는 구별되는 신선의 공간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