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명사처럼 쓰이는 관용 표현

김한샘 / 국립국어원


  관용 표현의 대부분이 동사나 형용사의 역할을 하지만 명사처럼 쓰이는 관용 표현도 흔하다. 명사처럼 쓰이는 관용 표현의 의미를 분석해 보면 크게 사람을 묘사하는 표현, 성질이나 상태에 대한 표현, 사건이나 상황에 대한 표현, 사물을 묘사하는 표현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 중에 사람을 묘사하는 관용 표현이 가장 많이 쓰인다. 다음은 명사처럼 쓰이는 관용 표현의 예이다.
(1) ㄱ. 천방지축인 놓아기른 망아지의 버릇을 어떻게 고칠지 고민이 됩니다.
ㄴ. 장마가 길어 제대로 자라지를 못했는지 올해는 배가 전부 영감의 상투네요.
ㄷ. 날씨가 추운데도 아낙네들은 우물 공사 때문에 시간 가는 줄을 모릅니다.
ㄹ. 이미 실적이 많으신데 아이 가진 떡 뺏으려고 하시지 말고 좀 봐 주십시오.
  (1ㄱ)의 ‘놓아기른 망아지’는 들에 풀어 놓고 기른 말 새끼처럼 교양이 없고 막돼먹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놓아기른 망아지’는 원래는 동물이지만 관용 표현으로 쓰이면서 사람을 묘사하게 되었다. (1ㄴ)의 ‘영감의 상투’는 영감 즉 나이가 지극한 남자는 젊은 사람에 비해 머리숱이 적어서 틀어 올린 상투의 크기가 작다는 데에서 사물의 크기가 작다는 뜻을 나타내게 되었다. (1ㄷ)의 ‘우물 공사’는 ‘공동 우물 같은 곳에서 물을 긷거나 빨래 따위를 하면서 잡담을 즐기는 일’을 의미한다. ‘아이 가진 떡’은 세력이 없거나 약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다. (1)의 관용 표현의 의미를 살펴보면 (1ㄱ~ㄴ)은 문자적 의미로 쓰일 때와 의미 유형이 달라졌고, (1ㄷ~ㄹ)은 문자적 의미로 쓰일 때와 관용적 의미를 쓰일 때의 의미 유형이 같다. 명사처럼 쓰이는 관용 표현 전체를 살펴보면 문자적 의미의 구가 관용 표현이 되면서 대부분 (1ㄱ~ㄴ)처럼 의미 유형이 바뀐다.
(2) ㄱ. 우리는 하늘에 떠오르는 별을 보며 소원을 빌었다.
ㄴ. 이번에 소개할 가수는 올해 가요계의 떠오르는 별입니다.
(3) ㄱ. 범의 어금니는 초식 동물보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ㄴ. 현대 사회에서 컴퓨터는 범의 어금니라고 할 수 있다.
(4) ㄱ. 세 살 먹은 어린애가 벌써 글을 깨우치다니 대단합니다.
ㄴ. 이 정도는 세 살 먹은 어린애도 다 할 수 있는 거니까 칭찬하지 마세요.
(5) ㄱ. 마른 빨래는 걷어서 잘 개어 놔라.
ㄴ. 어렸을 적 부잣집 애들에게 괜히 심술이 나서 슬쩍 마른빨래를 하곤 했다.
  (2)의 ‘떠오르는 별’은 문자적인 의미로는 하늘에 떠 있는 천체를 뜻하지만 관용적 의미로 쓰일 때는 ‘어떤 분야에 새로이 등장하여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을 가리킨다. ‘별’은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긴 대가’로도 풀이해 놓았는데 요새는 ‘별’ 자체가 외래어인 ‘스타’와 마찬가지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를 가리키기도 한다. (3)의 ‘범의 어금니’는 초식 동물의 어금니보다 육식 동물인 범의 어금니가 날카롭다는 데에서 비유적인 의미를 나타내게 되어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요긴하다’라는 뜻의 관용 표현이 되었다. (4ㄴ)의 ‘세 살 먹은 어린애’는 아주 어린 아이조차 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어 ‘특별한 능력이 없는 평범한 사람, 아무나’라는 뜻으로 쓰였다. 우리말의 관용 표현에는 ‘세 살 난 아이 물가에 논 것 같다, 세 살 먹은 아이 말도 귀담아 들으랬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제 손의 것은 안 내 놓는다’ 등처럼 어린 아이를 언급할 때 ‘세 살’을 기준으로 한 것들이 많다. ‘빨래’는 ‘더러운 옷이나 피륙 따위를 물에 빠는 일’이라는 행위를 나타내는 의미와 ‘빨랫감’이라는 사물을 지칭하는 의미의 두 가지로 쓰인다. 문자적 의미로 ‘마른 빨래’라고 하면 (4ㄱ)처럼 ‘빨래를 해서 말려 놓은 옷가지’를 뜻하지만 관용적인 의미로 쓰이면 행위를 나타내게 된다. (4ㄴ)에서의 ‘마른빨래’는 ‘새 옷 입은 사람 곁에서 옷의 이를 그리로 옮아가게 해서 없애 버리는 일’을 가리키는데 명사구 관용 표현으로 쓰이다가 굳어져 하나의 명사가 된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