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발음법의 이해】

느낌대로 길게 말하기

최혜원(崔惠媛) / 국립국어원


  국어의 장단은 단어의 뜻을 구별하는 기능을 한다. 장단의 구별은 낱말 첫 음절에서 극명히 대립된다. 물론 합성어의 경우에 둘째 음절 이하에서도 ‘반:신반:의, 재:삼재:사’와 같이 긴소리가 분명히 나는 것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첫 음절에서 긴소리가 난다는 원칙에 부합한다.
  그런데 아래와 같이 특정한 단어의 어감을 변화시키기 위해 두 번째 음절 이하에서도 분명히 긴소리가 날 때가 있다. 기본 의미는 같으면서도 화자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정서를 강조하기 위해서 길게 발음하는 경우에 나타난다.
(1) 다리가 길쭉:하니 늘씬하다.
(2) 속이 다 시원:하다
(3) 얼굴이 둥그스름:하니 맏며느리감이다.
(4) 아기가 자니까 조용:조용 다녀라
(5) 일이 안 풀리니까 속이 답답:하다.
(6) 뜨끈한 칼국수 국물이 눈에 삼삼:하다
(7) 피부가 야들야들: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이렇듯 화자의 주관적인 느낌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특정 단어의 어느 한 음절을 길게 발음하는 현상을 ‘표현적 장음화’라고 한다. 비어두 음절의 표현적 장음은 ‘하다’ 형용사의 어근이나 반복형 의성의태어에 많이 나타는데, 의성의태어가 소리나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진 특유의 성격 때문에 화자의 심리 상태를 능동적으로 반영하기에 좋기 때문인 듯하다.
  표현적 장음은 원래 단모음이던 것을 장모음으로 바꾸기도 하지만 장모음을 더 긴 장모음으로 바꾸기도 한다. ‘말:하다’, ‘방:송’ 등의 첫 음절이 보통 음절의 두 배 미만의 길이로 고정되어 있는 데에 대하여 ‘넉넉:하다’의 ‘넉:’은 보통 음절의 2배, 3배, 4배 등의 발음도 가능하다. 어느 정도 길게 하느냐는 정서적인 강도에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표현적 장음은 두 번째 음절 이하는 물론 첫 번째 음절에서도 나타난다.
(8) 아주 먼: 옛날이었어요.
(9) 더:럽게 뭐하는 짓이야?
(10) 힘:껏 던져 봐.
(11) 몸이 빼:빼 말랐다.
(12) 구석구석 깨:끗이 닦아라.
  같은 단어라도 화자의 느낌에 따라 첫 번째 음절을 강조하여 ‘깨:끗하다, 시:원하다, 길:쭉하다’라고 할 수도 있고, 두 번째 음절을 강조하여 ‘깨끗:하다, 시원:하다, 길쭉:하다’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단어에 따라 특정 위치에서 장음화하는 것이 좀 더 자연스러울 때가 있다. (13)과 (14)의 예에서처럼 의미에 따라 첫째 음절을 길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경우(13ㄱ)가 있고 둘째 음절을 길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경우(14ㄱ)가 있다는 점은 표현적 장음화가 단어의 의미 분화에도 관여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 흥미롭다.
(13) ㄱ.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ㄴ. 물방울이 똑똑: 떨어진다.
(14) ㄱ.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
ㄴ. 누군가 문을 똑:똑 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