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어원】

'‘경을 치다’의 어원

홍윤표(洪允杓) / 연세대학교


  우리들 부모님들께서는 자식들이 무슨 잘못을 해서 서운한 마음이 들면 ‘이런, 경을 칠 녀석!’하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래서 ‘경을 칠 녀석’은 단순히 ‘혼날 녀석’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경을 치다’는 가끔 조사 ‘-을’이 생략된 채로 쓰이기도 하여 ‘경칠 녀석!’이나 ‘경치게 혼났다’란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호된 꾸지람이나 나무람을 듣거나 벌을 받다’란 의미로 쓰이었다.
  ‘경을 치다’는 분명히 ‘경’이란 목적어에 ‘치다’란 동사가 통합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 ‘경’과 ‘치다’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필자가 어렸을 때에는 ‘경’을 ‘치다’의 ‘치다’를 ‘매를 치다’의 ‘치다’로, ‘경’을 ‘매’의 한 가지로 알고 있었던 적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부모에게 사랑의 매를 맞고 자란 우리들 세대의 선입견이었다. 또 한 가지 그럴 듯한 설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경’을 ‘경’(更)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옛날에 삼경쯤(12시쯤) 해서 북으로 인정(人定)을 치고 서울의 사대문을 닫아걸어, 일반인의 통행을 금지시켰는데, 이 통행금지를 위반한 사람은 붙잡혔다가, 오경 파루(罷漏)를 친 후에야 풀려났다고 한다. 그래서 경을 치른 후에 나왔다고 해서 ‘경을 치다’가 나왔다는 설이다. 그러니까 ‘경’은 ‘경’(更)이고 ‘치다’는 ‘종을 치다’의 ‘치다’라는 것이다. 마치 ‘야경 치다’와 같은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실제로 1880년에 간행된 『한불자전』에는 ‘야경치다’란 항목이 나오고 한자로 ‘타야경’(打夜更)으로 해석한 기록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경을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혼나는 일의 ‘경치다’와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말은 언뜻 보아 그럴 듯하지만, 단순한 민간어원설이다.
  ‘경을 치다’의 ‘경’은 한자로 ‘경’(黥)이고 ‘치다’는 ‘줄을 치다’의 ‘치다’이다. ‘경’(黥)은 ‘경형’(黥刑)의 준말이다. 이 ‘경형’은 중국에서 행하던 오형(五刑), 즉 다섯 가지 형벌 중의 하나다. ‘오형’은 궁형(宮刑, 죄인의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 대벽(大辟, 죄인의 목을 베던 형벌), 비형(剕刑, 죄인의 팔꿈치를 베던 형벌), 의형(劓刑, 죄인의 코를 베던 형벌), 그리고 경형(黥刑, 죄인의 이마나 팔뚝 등에 먹줄로 죄명을 써넣던 형벌)을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오형 중에서 신체의 일부를 없애는 형벌이 아니라 신체의 일부에 표시를 하는 것이라서, 가장 가벼운 형벌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형이 오형 중에서 가장 가벼운 형벌이라고 하더라도 일반인에게는 가장 수치스런 것이다.
  그렇다면 왜 ‘경형’을 ‘치다’라고 표현하였을까? ‘치다’는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다. ‘눈보라 치다, 천둥 치다, 물결 치다’의 ‘치다’, ‘죽 치다, 천막 치다’의 ‘치다’, ‘손뼉을 치다, 딱지를 치다, 족치다’의 ‘치다’, 그리고 ‘난을 치다, 줄을 치다’의 ‘치다’, 그리고 ‘담을 치다’의 ‘치다’, ‘새끼를 치다, 동물을 치다’의 ‘치다’ 등 매우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동음이의어인데, ‘경을 치다’의 ‘치다’는 ‘사군자를 치다’ 등에 쓰이는 ‘치다’이다. 먹줄로 죄명을 써넣었으니까 당연히 ‘치다’란 동사가 들어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치다’는 ‘족 치다’의 ‘치다’와 같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경치는 것’과 ‘족치는 것’이 ‘혼내는 사실’은 동일하지만, 실제로 ‘족 치다’는 ‘발바닥을 몽둥이로 치다’의 뜻을 가지고 있어서 이 ‘치다’는 ‘때리다’의 ‘치다’이기 때문에, 그 뜻이 동일한 것이 아니다. 먹줄로 형벌의 명칭을 ‘새겨 넣는’ 것이 ‘먹줄’과 연관되기 때문에, ‘먹줄을 치다’에 유추되어 ‘경’도 ‘치다’가 된 것이다.
  ‘경을 치다’는 이렇게 가혹한 형벌이었지만, 일반인들이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사용함으로써, 그 뜻이 변화하였다. 그래서 ‘도둑’ 등을 잡아서 심한 형벌을 줄 때에는 대개 ‘경을 치다, 주리를 틀다’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에는 ‘나쁜 짓을 해서 혼내 주다’란 뜻으로 변화하였다. 결국 오형 중의 하나인 구체적인 형벌의 뜻은 사라지고 추상적인 의미만 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경을 치다’는 ‘주리경을 치다’처럼 ‘주리를 틀다’의 ‘주리’(주릿대)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글이 쓰이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20세기 초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을 치다’나 ‘경치다’가 굳어진 한 어휘로서 우리나라에 정착한 것은 20세기인 것으로 해석된다. 다음에 문학 작품에 나타나는 예문을 보이도록 한다.
내 손으로 하는 나무언만 마암 노코는 못한다. 산님자에게 들키면 여간한 경을 치우지 안는다. 그럼으로 우리는 황혼이면 산에 가서 도적나무를 하여지고 밤이 깁허서 도라온다. <탈출기(1925년)> 헌데 산림 간수한테 오기는 있어, 들키면 경을 치기는 매일반이래서 디리닥치는대루 철쭉 등걸이야 진달레 등걸이야 소나무 등걸이야 <쑥국새(1938년)> 다 씻기고나서 한숨을 내뽑으며 담배 한 대를 떡 피어 물엇다. ‘그래 요새도 서방에게 주리경을 치느냐?’ 하고 묻다가 아무 대답도 업스매 <소낙비> 장가 가시구려, 하고 소리를 뻑 질렀든 것이나 실상은 밤낮 남편에게 주리경을 치는 그 안해가 가엷은 생각이 들어 길래 <슬픈이야기> ‘어떤 조카가 죽었어 그래?’ ‘이것이 그렇게 죽도록 경을 치고두 바보가 돼서 이래요!’ <따라지> 궷 속에 너헛던 은가락지 한 쌍이 일허젓습니다. 저는 내가 경을 치나 보다 부억에 안젓노라니 아니나 다를까 맛올아버니 이 성이 나서 <무정(이광수)>
  ‘경을 치다’는 ‘삼경에 경을 친다’는 의미의 ‘경을 치다’의 뜻도 아니고 단순히 ‘문신을 하다’란 뜻도 아니다. ‘문신을 하다’와 ‘이마나 팔뚝에 글자를 새기다’는 그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날 어린이나 젊은이로서 ‘경칠 녀석’은 많은 것 같은데, 아무리 경을 쳐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 이제는 이 말을 듣고 알아들을 젊은이가 거의 없을 것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