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당신의 우리말 실력, 몇 점입니까

손범규(孫範奎) / 서울방송 아나운서, 인하대학교 겸임교수


  우리말 프로그램이 방송가를 접수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동안 방송의 무분별한 외래어 사용과 우리말의 오염을 걱정하셨던 분이라면 바뀐 방송사들의 태도에 조금은 안심이 될 듯하다. 시청률에 목숨 거는(?) 방송사이니만큼 그 자세가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은 우리말 프로그램이 대접받고 있다. 아래는 각 방송사들의 우리말 프로그램 기획 내용이다.
  국어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 당신의 우리말 실력은 어떻습니까? …… 평소 잘못 알고 쓰는 우리말을 찾아 다시 배워보는 우리말 배우기 시간! (국어대국, 나랏말씀. 한국방송 2TV, 화요일 11시)

  외래어와 인터넷 통신 용어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인한 우리말 파괴 문제가 심각하다.…… 스타들과 함께하는 추억의 <받아쓰기 대회>를 통해 올바른 우리말과 우리글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학교 전설. 서울방송, 토요일 5시)

한글의 과학적 특성을 살린 새로운 개념의 퍼즐 형식, 우리말 퀴즈(우리말 겨루기. 한국방송 2TV, 수요일 7시)
  각 방송사에서는 그전에도 ‘우리말 나들이(문화방송)’, ‘바른말 고운말(한국방송)’, ‘사랑해요 우리말(서울방송)’같은 우리말의 바른 사용에 관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런데 방송 시간이 1분에서 2분 정도로 짧고 편성 시간도 일정하지 않아 정규 프로그램이라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면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우리말 푸대접 현상이 일시적으로 사라진 것이다. 현재 이들 프로그램에 대한 ‘누리꾼(네티즌)’이나 시청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지만 역시 위에서 말한 것처럼 시청률에 따라 언제 없어질지 모르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다. 그런데 이 가운데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 스타들의 받아쓰기 성적이 화제이다. 방송 시간마다 스무 명 정도의 연예인이 출연해서 받아쓰기, 표준 발음법, 올바른 외래어 등의 문제를 푸는데, 평균 정답률은 33%정도이다. 너무 낮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프로그램의 작가들도 예비 문제로 시험을 보면 30점 내지 35점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고 하니 일반인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평소 자주 쓰는 단어들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맞춤법이지만 실제 문제로 나오면 맞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방송 언어의 오류는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이겠다.
1) 자막 오기: 무등 타고(→무동), 30년간 폈던 담배(→ 피웠던), 평생의 바램(→바람)
2) 입말 표현: 아임 헝그리 배가 고프다 베리 베리 헝그리, 삥 뜯다, 필이 꽂히다, 가스레인지 쏩니다((→드립니다)
  1-2)는 한 방송사에서 한 주간 동안 지적받은 우리말 잘못 사용의 예인데 1)의 자막 오기 부분은 우리말의 표준어를 잘 모르는 데서 오는 오기이고 2)의 입말 표현의 오류 부분은 무분별한 외국어 사용에 속어가 혼합된 경우의 예이다. 1)의 오류는 자막 표기자의 우리말 사용 능력과 깊은 관계가 있다. 우리말 사용에 자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사전을 찾아서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2)의 경우는 사용자의 정신적인 자세가 문제가 된다. 낯선 외국어나 속어를 사용하는 것은 말하는 사람의 교양과 지성 그리고 품위를 의심 받게 한다. 바른 말 고운 말의 사용은 대중 매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강조되는 덕목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