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관용 표현의 부정

김한샘 / 국립국어원


  일반적인 용언의 부정을 나타내려면 동작을 할 수 없거나 상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뜻의 ‘않다, 못하다, 안, 못’ 등을 함께 쓰면 된다. 용언의 역할을 하는 관용 표현도 대부분 ‘않다, 못하다, 안, 못’ 등과 함께 써서 부정의 뜻을 나타낸다. 아래 (1~4ㄴ)은 모두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인 관용 표현의 예이다.
(1) ㄱ. 철수는 생일에 자전거를 사달라고 노래를 불렀다.
ㄴ. 주말에 놀이 공원 가기로 했으니 이제 그렇게 노래 부르지 않아도 돼.
(2) ㄱ. 영수는 사사건건 남의 얘기에 초를 치기로 유명하다.
ㄴ. 미리 말하면 재미없는데 왜 초를 치지 못해서 안달이니.
(3) ㄱ. 가방 끈이 길다고 다 사업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ㄴ. 저는 가방 끈은 안 길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지금의 위치까지 왔습니다.
(4) ㄱ. 동창회에 오랜만에 얼굴을 내미는 친구들이 많았다.
ㄴ. 바빠서 모임에 얼굴을 못 내밀었더니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왔다.
  위 (1~4)의 관용 표현들은 모두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여도 원래의 뜻이 변하지 않는 예들이다. 한편 단독으로 쓰일 때와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일 때 의미가 다른 관용 표현들도 있다.
(5) ㄱ. 전국 각지에서 독립 운동의 기운이 고개를 들었다.
ㄴ. 부진을 씻고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있는 날이 오기 바랍니다.
ㄷ. 자식이 한 짓이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겠습니다.
(6) ㄱ. 새로 시작한 사업이 잘 되어서 빚도 갚고 허리를 펴게 되었다.
ㄴ. 나이도 어린 사람 밑에서 허리를 못 펴고 일을 하려니 마음이 안 좋습니다.
(7) ㄱ. 사업 결과물을 제 때에 넘겨야 오금을 펼 수 있습니다.
ㄴ. 김 과장은 퇴근 후에 소주 한 잔 사 주면 오금을 못 펴지.
ㄷ.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생각나서 오금을 못 펴겠어.
  ‘고개를 들다’는 (5ㄱ)처럼 ‘(어떤 기운이) 활발해지다’의 뜻으로도 쓰이고 (5ㄴ)처럼 ‘(어떤 사람이) 떳떳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런데 (5ㄷ)과 같이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못’과 함께 쓰이면 ‘떳떳하지 못하다’의 뜻으로만 쓰인다. ‘허리를 펴다’는 단독으로 쓰이면 (6ㄱ)의 예처럼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다’의 뜻인 반면 부정을 나타내는 ‘못’과 함께 쓰이면 ‘남에게 기를 펴지 못하고 지내다’의 의미이다. (7)도 단독으로 쓰일 때와 부정을 나타내는 말과 함께 쓰일 때의 의미가 달라지는 예이다. (7ㄱ)의 ‘오금을 펴다’는 ‘마음을 놓고 여유 있게 지내다’의 의미인데 반해 (7ㄴ~ㄷ)은 마음이 끌리거나 두려워서 꼼짝을 못한다는 뜻이다.
(8) ㄱ.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형님 근처에도 못 갑니다.
*ㄴ. 제가 열심히 노력해서 형님 근처에 가겠습니다.
(9) ㄱ. 한번만 더 그랬다가는 뼈도 못 추릴 줄 알아.
*ㄴ. 이번에는 조심해서 뼈를 추려야지.
(10) ㄱ. 똥오줌을 못 가리고 아무 때나 끼어들면 안 돼.
*ㄴ. 똥오줌을 가려서 조신하게 행동하도록 해.
(11) ㄱ. 아직 이도 안 난 놈이 뭘 안다고 나서는 거야?
*ㄴ. 이가 난 놈이 나서서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
  (8~11)에 예로 든 ‘근처(에)도 못 가다, 뼈도 못 추리다, 똥오줌을 못 가리다, 이도 안 나다’ 등은 부정을 나타내는 말이 있어야 관용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는 표현들이다. (8~11ㄴ)에서 볼 수 있듯이 부정을 나타내는 말을 빼면 뜻이 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