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이해]

사전 표제어의 일관성

이운영(李云暎) / 국립국어원


  사전 편찬 작업을 하다 보면 이러저러한 질문을 많이 받는다. 개별 단어의 풀이에 대한 질문도 많지만 사전 표제어에 대한 것들도 상당수 있다. 특히 사전에 실린 표제어들이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을 가끔 듣는다. 표제어가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비슷한 유형으로 보이는 단어들이 어떤 것은 실리고 어떤 것은 실리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같은 유형의 단어가 띄어쓰기에서 다르게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같은 부류에 속하는 단어들이라면 함께 등재되는 것이 사전 표제어의 균형을 맞춘다는 면에서 옳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형태적으로 비슷하다 하더라도 의미나 사용 빈도 등에 따라 등재 여부는 달라질 수가 있다. 예를 들어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잇값’, ‘외상값’, ‘담뱃값’ 등은 표제어로 올라 있지만, ‘책상값’, ‘가방값’ 등은 없다. 이러한 차이는 바로 단어의 의미나 사용 빈도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먼저 ‘나잇값’, ‘외상값’, ‘담뱃값’의 사전 풀이를 보면 다음과 같다.
나잇값나이에 어울리는 말과 행동을 낮잡아 이르는 말.
외상값외상으로 거래한 물건의 값.
담뱃값①담배의 가격.②담배를 살 돈.③약간의 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④약간의 사례금을 속되게 이르는 말.
  뜻풀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나잇값’은 ‘나이의 가격’을 의미하지 않는다. 즉 의미가 ‘가방값’과 완전히 다르다. ‘외상값’도 형태는 유사하지만 단어의 의미나 구성은 완전히 다르다. ‘책상값’이 ‘책상의 가격’을 나타내는 반면 ‘외상값’은 ‘외상의 가격’이 아니라 ‘외상’이라는 ‘방식’으로 거래한 물건의 값을 나타낸다. 따라서 이 역시 ‘책상값’과 다를 뿐만 아니라 ‘나잇값’과도 차이가 남을 알 수 있다. ‘담뱃값’은 첫 번째 뜻풀이가 ‘담배의 가격’이기 때문에 이것만 보면 의미상으로 ‘책상값’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담뱃값’은 두 가지 면에서 ‘책상값’과 차이가 난다. 먼저 사용 빈도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담뱃값’이 일상생활이나 문헌 등에서 매우 빈번히 사용되는 반면 ‘책상값’은 특정한 상황에서만 드물게 쓰인다. 또 ‘담뱃값’은 ‘담배의 가격’이라는 의미 외에 위에 보인 것처럼 다양한 의미로 쓰인다는 점에서 ‘책상값’과 구별된다.
  요컨대 ‘나잇값’, ‘외상값’, ‘담뱃값’, ‘책상값’은 형태상으로는 같은 유형에 속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쓰임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고, 이에 따라 사전 등재 여부나 뜻풀이 내용도 다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사전에 오르는 표제어는 단순히 형태상의 유사성만으로 등재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음을 알 수 있다.
  사전에 등재된 표제어의 띄어쓰기가 다른 것도 위에서 살핀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형태상으로는 유사해 보여도 의미가 다르면 띄어쓰기가 달라질 수 있다. 다음의 ‘고등 동물’과 ‘고등실업자’가 그러한 예이다.
고등^동물〔동〕복잡한 체제를 갖춘 동물. 보통 척추동물을 이르는데 소화, 순환, 호흡, 비뇨, 생식, 신경, 운동 따위의 기관을 가지고 있다.
고등-실업자고등 교육을 받고도 일정한 직업이 없이 놀며 지내는 사람.
  ‘고등 동물’은 사전에 ‘고등^동물’과 같이 ‘^’ 기호로 연결되어 있다. 이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되 붙여 쓰는 것을 허용한 것이다. 실제로 ‘고등^식물’, ‘고등^법원’, ‘고등^수학’ 등도 모두 이렇게 되어 있다. 이들은 모두 전문어이고 뒤에 나오는 명사들의 등급 따위가 높음을 나타낸다. 그러나 ‘고등실업자’는 ‘고등-실업자’와 같이 등재되어 있다. 이는 항상 붙여서 써야 한다는 의미로, ‘고등실업자’가 전문어가 아닐 뿐만 아니라 등급이 높은 실업자를 가리키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뜻풀이에 나온 대로 고등 교육을 받고도 직업이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앞의 다른 단어들과는 의미나 구성 면에서 차이가 나고 이에 따라 띄어쓰기도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띄어쓰기 역시 형태뿐만 아니라 의미적인 면까지 고려하여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