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한글날과 우리의 이름

손범규(孫範奎) / 에스비에스 아나운서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방송에 대한 걱정이 많다. 특히 주말 가족 시청 시간대나 평일 늦은 밤 시간대의 방송에서 사용되는 뮤직 비디오가 청소년들의 인기를 얻으면서 더욱 자극적인 내용으로 꾸며진다는 지적이다. 아래 1), 2)의 내용은 오락이나 음악 프로그램에 많이 사용되는 뮤직 비디오에 대한 방송사의 자체 심의에서 ‘방송 부적합’으로 판정된 것들이다.
1) 흡연 장면이 있어 방송이 불가함. 차량 폭파 장면,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겨냥하는 총격 장면, 경찰이 피의자를 구타하는 장면 등도 수위 조절 필요 -SG워너비, [죽을만큼 사랑했어요]
2) 폭력 조장 우려. 중반부에 ‘머리까기, 다리찢기, 목누르기…’ 등 폭력 방법을 유형별로 정리해 자막화함. 옷을 한 가지씩 벗겨가며 집단 폭행을 하는 상황이 묘사됨 -이승렬, [SECRET]
  방송사에서는 위와 같이 자체적으로 내용에 대한 세부 심의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심의의 실천 여부이다. 심의 결과와 다르게 뮤직 비디오를 사용할 경우 ‘경고 서한’이 발부되고, 같은 상황이 재발될 경우 사고 대책위원회에 회부되지만 안 지켜지는 경우가 가끔 나온다. 그런데 이런 심의 기준을 살펴보면 눈에 띄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아래와 같은 예가 그것인데 이는 심의를 통해서 걸러지지 않는다.
3) SG워너비, 디에이아이, 클릭비, 주얼리, NRG, MTOM, 피닉스, 원티드, 데이라이트, 더원, UN, 클래지콰이, 지아이두, K
4) SECRET, REMEMBER, I DO, AFTER LOVE, MY LOVE FOR YOU, WE CAN DO, FOXY LADY
  3)은 가수의 이름이고 4)는 노래 제목이다. 수시로 이뤄지는 뮤직 비디오 심의에서 접수되는 가수와 노래의 약 40퍼센트 정도가 외국어 이름이다(한 방송사 심의 팀에 등록된 뮤직 비디오 편수 585편 가운데 228편에서 가수가 외국어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특히 우리말 이름이 나오기 힘든 ‘ㄹ’이나 ‘ㅋ’, ‘ㅌ’, ‘ㅍ’에서 많은 외국어 이름이 사용된다.
5) ㄹ : 레이, 렉시, 롤러코스터, 럼블피시, 락타이거
ㅋ : 케이디, 코싸, 크라잉 넛, 클래지콰이, 클래오
ㅌ : 터보, 테이, 토이, 투샤이, 팀
ㅍ : 파이브, 파파야, 포지션, 플라워,피플크루
  순식간에 등장했다가 그냥 사라지는 가수가 많은 연예계, 하루에도 수십 곡씩 노래가 만들어지는 현실을 생각할 때, 뭔가 특이한 이름을 생각하는 조급하고 상업적인 마음은 짐작이 되지만 국적 불명의 뜻도 없는 이름과 노래 제목은 사라져야겠다. 특히 외국어 이름이 청소년들에게 인기 있는 가수나 노래 제목에 더 많은 형편이니 언어의 사대주의(事大主義) 현상마저 우려된다. 무조건 외국 이름은 좋고 우리 이름은 촌스럽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뮤직 비디오의 내용에 대한 관심과 함께 무조건적인 외국어 이름의 가수나 노래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필요하다.
  “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셔요. 혀끝에서 물결이 솟고 붓 아래에 꽃이 피어요.”라고 노래한 만해 한용운 님의 시가 더욱 생각나는 한글날, 시월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