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그만두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관용 표현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손을 붙이다, (첫)걸음마를 떼다, (첫)발을 디디다, (첫)발을 떼다, (첫)발을 들여놓다, 싹을 틔우다, 닻을 올리다’ 등은 ‘시작하다’의 뜻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들이다. 주로 어떤 일을 할 때 필요한 손, 발을 구성 요소로 하는 표현들이다. 반대로 시작한 일을 그만둔다는 뜻을 나타낼 때도 손, 발과 관련된 관용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1) ㄱ. 김 사장은 직접적인 장사에선 손을 뗐다.
ㄴ.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제때에 손을 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세요.
(2) ㄱ. 박 선생님은 정치와 손을 끊으셨으니 힘이 없으실 겁니다.
ㄴ. 아들은 깡패들과 손을 끊기로 어머니와 약속했다.
(3) ㄱ. 어머니는 평생 일하시던 가게에서 손을 놓으시고 허전해 하십니다.
ㄴ. 일단 컨베이어 앞에 서면 손을 놓을 새가 없이 빨리 움직여야 한다.
(4) ㄱ. 저는 이쪽 업계에서 손을 닦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ㄴ. 아무리 손을 털었다고 해도 아직 기술이 녹슬지는 않았겠지.
ㄷ. 이 일로 밥 먹고 산 지 10년이 넘어서 손을 빼기 쉽지 않습니다.
ㄹ. 이제 그만 손을 씻고 새 삶을 찾는 게 좋겠어.
ㅁ. 점심 시간이 되자 인부들은 일제히 손을 멈추었다.

  (1~4)의 관용 표현들은 모두 ‘손’을 구성 요소로 하며 ‘그만두다’의 뜻을 나타낸다. (1)의 ‘손을 떼다’는 ㄱ처럼 ‘그만두다’의 뜻으로도 쓰이지만 ㄴ과 같이 어떤 일을 완성한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1ㄱ)의 ‘손을 떼다’는 의미상으로는 ‘~을 그만두다’이지만 ‘손을 떼다’의 문자적 의미가 영향을 미쳐 ‘장사에서’처럼 조사 ‘에서’가 붙는 명사와 함께 쓴다. (2)의 ‘손을 끊다’ 역시 ‘그만두다’의 의미로 쓰이지만 (1~4)의 다른 관용 표현과 달리 ‘정치와 손을 끊다’와 같이 조사 ‘와’를 취하는 명사와 주로 함께 쓰인다. 또 (2ㄴ)처럼 어떤 사람과의 교제를 그만둔다는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 특이하다. (3)의 ‘손을 놓다’는 ㄱ처럼 어떤 일을 완전히 그만두는 경우에 쓰기도 하지만 ㄴ과 같이 일시적으로 일을 그만두는 경우에도 쓴다.

(5) ㄱ. 돈을 잃을 때마다 다짐하지만 도박에서 발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ㄴ. 남편은 올해 안에 술집에 발을 끊겠다고 약속을 했다.
ㄷ. 철수는 가족에게 발을 끊고 다시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6) ㄱ. 건축업에서 발을 뗀 지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빨리 발을 씻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ㄷ. 주먹 세계에서 완전히 발을 빼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5~6)은 ‘발’과 관련된 관용 표현이 ‘그만두다’의 뜻을 나타내는 예이다. (5)의 ‘발을 끊다’는 ㄱ처럼 어떤 일을 그만둘 때, ㄴ처럼 어떤 장소에 가는 것을 그만둘 때, ㄷ처럼 어떤 사람과의 교제를 그만 둘 때에 두루 쓰인다. ‘끊다’, ‘떼다’, ‘씻다’, ‘빼다’ 등의 동사는 ‘손’, ‘발’ 두 단어와 모두 함께 쓰여 ‘그만두다’라는 의미의 관용 표현을 이룬다.

(7) ㄱ. 관군은 동학의 뿌리를 뽑기 위해 마을을 샅샅이 뒤졌다.
ㄴ. 밀수의 뿌리를 자르기 위해 경찰은 검색을 강화했다.
ㄷ. 독립 운동의 싹을 뽑기 위해 일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ㄹ. 청소년 성범죄의 싹을 자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성교육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7)의 밑줄 친 관용 표현들은 (1~6)처럼 스스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진행되고 있는 일을 그만두도록 한다는 뜻이다. ‘뿌리’와 ‘싹’이 식물의 근원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에 다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도록 한다는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