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이해]

한자를 빌려 적은 이름들

이운영(李云暎) / 국립국어연구원


  같은 나라를 언급하면서 서로 다르게 부르는 경우가 많다. ‘이탈리아’와 ‘이태리’는 같은 나라이고 ‘프랑스’와 ‘불란서’도 같은 나라이다. 요즘은 원어에 가깝게 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라 공식적으로는 ‘이탈리아’, ‘프랑스’ 등과 같이 부르지만 나이 든 세대의 사람들일수록 ‘이태리’나 ‘불란서’와 같이 부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더 나가서 ‘이태리타월’이라는 일반 명사가 있고, ‘불란서제 향수’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일 정도로 이러한 이름은 사람들에게 익숙하다. 그럼 ‘이탈리아’와 ‘이태리’, ‘프랑스’와 ‘불란서’는 어떤 관계에 있을까?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Italia’, ‘France’의 발음을 그대로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우리말로 표기한 것이다. 반면 ‘이태리’나 ‘불란서’는 원래의 발음과 가까운 한자를 빌려서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이태리는 한자 ‘伊太利’를 그대로 읽은 것이고 불란서는 역시 한자 ‘佛蘭西’를 그대로 읽은 것이다.
  ‘이태리’나 ‘불란서’와 같이 한자로 외국어의 음을 표기한 것을 음역어라고 하는데, 이러한 음역어는 특히 지명에서 많이 나타난다. 로마자가 익숙하지 않았던 시절에 번역도 할 수 없는 외국 고유의 지명을 가능하면 원음에 가깝게 한자로 표시하고자 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 것이다. 다음은 음역어와 외래어 표기법에 따라 쓴 지명을 비교한 것이다.

음역어 외래어 표기법
서반아(西班牙) 에스파냐
애급(埃及) 이집트
가나다(加那陀) 캐나다
월남(越南) 베트남
동백림(東伯林) 동베를린
유태(猶太) 유대
비율빈(比律賓) 필리핀
인도지나(印度支那) 인도차이나
아세아(亞細亞) 아시아
태국(泰國) 타이
구라파(歐羅巴) 유럽
토이기(土耳其) 터키
아라사(俄羅斯) 러시아
화란(和蘭) 네덜란드

  지명에만 음역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 인명이나 외래 종교, 전문어 등에서도 음역어가 쓰인다. ‘나옹(奈翁)’, ‘야소(耶蘇)’, ‘기독(基督)’, ‘호열자(虎列刺)’, ‘임파(淋巴)’ 등도 모두 음역어이다. 이들은 각기 ‘나폴레옹’, ‘예수’, ‘크리스트’, ‘콜레라’, ‘림프’ 등을 한자를 빌려 적은 것이다. 이 외에도 산스크리트 어로 된 단어를 한자를 빌려 적은 말도 상당수 있다. ‘남비니(藍毘尼)’, ‘바라문(婆羅門)’, ‘수다라(首陀羅)’등은 ‘룸비니’, ‘브라만’, ‘수르다’의 음역어이다. 이들은 주로 불교 관련 용어로 많이 쓰이고 있는 말들이다.
  한자를 빌려서 적은 말에는 외국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글보다 한자가 훨씬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었기 때문에 원래 고유어인 것을 한자를 빌려 적은 경우도 적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러한 말들을 고유어로 보고 한자로 적고 읽은 표기를 다음과 같이 ‘잘못’으로 처리하고 있다.
오적어(烏賊魚)〔동〕‘오징어’의 잘못. ‘오징어’를 한자를 빌려서 쓴 말이다.
  위와 같이 처리된 말로는 ‘오적어’ 외에도 ‘고도어(高刀魚/高道魚/古刀魚)’, ‘우모(牛毛)’, ‘착고(着錮)’, ‘설합(舌盒)’, ‘주사회(朱士會)’, ‘토수(吐手)’ 등이 있다. 이들은 각기 고유어인 ‘고등어’, ‘우무’, ‘차꼬’, ‘서랍’, ‘주사위’, ‘토시’를 한자를 빌려서 적은 것이다.
  위의 단어들은 한자어 발음과 고유어 발음이 다르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개중에는 한자어와 고유어의 발음이 같기 때문에 원래 한자어인지 고유어인지가 불분명한 단어들도 있다. 아래 제시한 ‘배달’이 그러한 예이다.
배달01〔지2〕우리나라의 상고 시대 이름. 한자를 빌려 ‘倍達’로 적기도 한다.
  ‘배달’ 외에도 ‘각시’, ‘가락’, ‘고의’, ‘광대’, ‘도령’ 등이 이러한 단어인데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이러한 단어들도 고유어로 처리하고 뜻풀이에서 이들을 한자로 적을 수도 있음을 위와 같이 밝혀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