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방송의 날을 보내고

손범규(孫範奎) / 에스비에스 아나운서, 인하대 겸임교수

  지난 9월 3일, 방송은 마흔 한 번째 생일을 맞았다.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이 그 어느 때 보다 커진 시점에서, 뉴미디어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겹치는 시기여서인지 생일을 맞는 방송계의 표정은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었다.
  국민을 한 마음으로 만드는 힘을 가진 방송,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송,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방송이지만 반대의 역할도 쉽게 할 수 있기에 방송의 공영성과 도덕성은 더욱 강조되는 것이다. 최근 국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우리 국민의 85.2%는 방송을 포함한 언론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 개혁의 방향과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까지도 정해진 것이 없다. 정치권의 논리나 사주의 이해타산에 따른 언론 개혁이 아닌,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라는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가는 경쟁력 있는, 국민을 위한 방송 개혁이 되길 기대한다.
  방송의 날을 지내며 바른 우리말 사용에 있어서의 방송의 책임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한 방송사에서 제대로 된 한국어 사용자를 사원으로 뽑겠다며 사원 채용 시험에서 ‘한국어 능력 시험’을 실시했다. 방송 언어가 한국어의 표준이 되도록 하고, 국어 기본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한국어 능력 시험’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국어 능력을 검정하고 향상시키는 시험으로 향상시키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다른 방송사에서는 올해를 우리말 바로 세우기 원년으로 선포하고 현재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자막 오류를 완전 해결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맞춤법 교정 기능을 갖춘 자막 교정기를 도입하고 방송 언어 무오류 프로그램을 의미하는 ‘우리말 청정 프로그램’을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도 그 한 예이다. 또 회사 안에 우리말 대학을 설치해 프로그램 진행자들을 대상으로 우리말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은 또 어떤가? 작년 이맘 때의 조사에서 방송 프로그램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목은 외국어 제목이 전체 프로그램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지만 일년이 지난 지금도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올해 방송되고 있는 어린이 만화 프로그램은 조사 대상 열여섯 편 모두가 외국어 제목을 사용하고 있다. 제목뿐만 아니라 내용에서도 과도한 외국어 사용, 비속어와 은어의 사용, 군대식의 폭력적인 언어의 사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어린이들이 자주 보는 프로그램에서 잘못된 우리말의 사용을 일찍부터 배우게 하는 것이다.
  언어는 방송과 마찬가지로 시대의 현실을 반영하며 변화한다. 방송이 국민을 위한 방송으로 발전해야하는 것처럼 방송언어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하고 발전해야 한다. 시대를 반영한다고 해서 무분별한 외국어와 비속어가 난무하고 폭력적인 언어가 방송에서 사용돼서는 안 된다. 방송이 우리말에 대해 보이는 태도와 사용 현실이 언어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에 방송이 우리말 파괴의 도구가 아닌 우리말 지키기 마당이 돼야 한다. 마흔 살이 넘은 방송, 우리말 지키기의 파수꾼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