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노천명의 시 ‘男사당’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나는 얼굴에 粉을 하고/ 삼가티 머리를 네리는 사나이//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 날나리를 부는 저녁이면/ 다홍치마를 둘르고 나는 香丹이가 된다// 이리하야 장터 어늬 넓운마당을 빌어/ 람프불을 도둔 布帳속에선/ 내 男聲이 十分 屈辱되다// 山넘어 지나온 저村엔/ 銀반지를 사주고 십흔/ 고흔 處女도 잇섯것만// 다음날이면 남을 짓는/ 處女야/ 나는 집시의 피엿다/ 내일은  어늬 洞里로 들어간다냐// 우리들의 道具를 실은/ 노새의 뒤를 라/ 山기의 이슬을 털며/ 길에 오르는 새벽은// 구경군을 모흐는 날나리소리처럼/ 슬픔과 기이 석겨 핀다 (‘男사당’, 『창변』)
  노천명(1912〜1957)의 시속에서 ‘말하는 이’는 男사당패의 한 남성이다. ‘山넘어 지나온 저村엔/ 銀반지를 사주고 십흔/고흔 處女도 잇섯것만/ 다음날이면 남을 짓는/ 處女야’에서 나타나듯이 남성의 시적 자아를 드러낸다. “초립에 쾌자를 걸친 조라치들이”에서는 조라치들보다 자신을 위에 놓는 우월감에 찬 남성 화자로, 권위적이고 자신있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리고 분칠을 하고 향단이라는 여성으로 분장을 해야 하는 “람프불을 도둔 布帳속에선/ 내 男聲이 十分 屈辱되다”에서는 남성이 여성의 배역을 하는 것 또한 굴욕적이라고 생각하는 가부장적인(patriarchy) 남성으로 나타난다. 이 남성은 이 마을에서 사랑의 감정도 느꼈지만(銀반지를 사 주고 싶은 처녀도 있었지만), 역시 남자의 유목적 특성 중의 하나인 ‘집시’의 이동성을 보여준다.
  서정주 시인은 이 시를 “민족이 이산 유리하던 때, 민족이 단일의 독립 정부를 이루지 못하고 살아갈 근거를 잃고 한일 합방 후 민족적인 방랑의 시절에 있어서, 민감하게 이를 파악해서 그 공통적인 민족적인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고 했다.
  여기서 남성 화자의 성격 창조와 작가의 거리를 주목할 수 있다. 남성 심리를 객관적으로 잘 관찰하여 성격 창조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관습적으로 드러나는 남성적인 성격과 이에 상대적인 여성 성격의 대립적 양상을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남성적 자아 / 여성적 자아
  조라치들보다 우월하다(우월의식) / 남성보다 열등하다(열등성)
  여성으로 분장하는 것은 굴욕적이다(자부심) / 남성으로 분장하는 것은 자랑스럽다(겸손함)
  처녀에게 은반지를 사 준다(능동성) / 처녀는 은반지를 사 받는다(수동성)
  한 여자에게 매이기 싫다(一夫多妻) / 한 남자에게 매이는 것은 행복이다(一婦從事)

  겉으로 드러난 남성으로 말하는 이와 문면의 뒤에 함축된 여성 시인의 성(Gender), 여성의 열등성과 여성에 대한 매력이 팽팽하게 맞서서 이 시에 극적인 흥미를 더해 주고 있는데, 이런 화자와 작가의 거리감은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시인과 시적 자아와의 성 구별로 미적 거리를 드러내면서, 지배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는 심리에서 남성의 자유분방함에 대한 편향적 찬양의 시선을 보여준다고 볼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남성이 지닌 우월의식의 핵심을 꿰뚫어 그 점을 의도적으로 폭로하려고 쓴 인물 창조라고도 볼 수 있다.
  여기서 남사당패로서의 성 역할과 실제 정체성이 분리 도치되어 나타나는 점도 흥미를 더해 주는 요소다. 남사당이기 때문에 여성으로 분장해야 하는 게 싫지만, 사생활에서는 여성에 대한 그리움을 지닌 남성의 심경을 솔직하게 고백하여 독자에게 호감을 준다. 단순하게 남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시보다 굴곡있는 삶을 사는 그 시대 남사당 청년의 인생살이에서 오는 애환과 정착할 수 없는 방랑자의 슬픔이 얽혀 복잡하게 독자의 가슴에 스며든다. 솔직하고, 명령적이며, 단호한 말투로 남성성을 보여 주지만 한편, 직업상의 애로점이라든가 사랑을 느낀 여성을 두고 떠나야 하는 슬픔을 드러냄으로써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남성이 갖는 강함과 인간적인 토로에서 복합적인 정서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