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신동엽의 시 “껍데기는 가라”의 열매 이미지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 지니//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겠는가』, 1967)

  신동엽(19301969)의 시 ‘껍데기는 가라’에서 ‘구호성 명령어’에 나타난 역사적 사실을 살펴보면, 1연의 ‘사월’이라는 단어는 1960년의 4·19혁명을 나타내고, 2연의 ‘동학년 곰나루’라는 표현에서는 19세기 말의 동학혁명이 나타나며, 3연에서는 신라 시대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고대적 혼례가 중립의 공간(시인이 임의로 선정한 공간)에서 치러지면서 현대 한국의 분단 상황이 나타난다. 이들의 혼인 장소는 개인적인 공간일 수 있었는데 중립의 비무장지대에서 혼례가 이루어지면서 남과 북이 하나가 되는 통일의 혼례로 의미 확장이 이루어지고 신화적으로는 현대적 가식과 위장을 벗어버린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화합의 공간으로 확산된다.
  시인 신동엽이 껍데기로 암시한 부정적 이미지는 무엇일까?   ‘껍데기는 가라’라는 상징적인 지시어는 상대어로 ‘알맹이’를 암시하며 식물의 열매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껍데기로 나타난 식물의 비유 체계를 살펴본다.

식물 (나무가) ---------------------- 한국인으로 사람
A 흙에서 ---------------------- 이 땅(대한민국)에서 B
  (맺은) ---------------------- (결혼해 낳은)  
열매는 ---------------------- 아이는(사람은)
알맹이만- ---------------------- 아우성 친 者만  남고
껍데기는 ---------------------- (침묵한 者는)
(버려라) ---------------------- 가라

  위와 같이 비유되는 A, B의 두 유기체(식물, 사람) 사이에서 드러나는 대립 체계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알맹이/껍데기’, ‘정수(핵)/지엽말단’, ‘아우성/(침묵)’, ‘결혼식/(이혼식)’, ‘벌거벗다/(입다)’, ‘내놓다/(감추다)’, ‘자연/가식’.
  여기서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에 맞먹는 또하나의 대립항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이다. 알맹이와 껍데기, 흙가슴과 쇠붙이가 서로 대립하면서 이 시는 ‘껍데기는 가라’, ‘쇠붙이는 가라’는 두 가지 반복되는 지시어를 제시한다. 앞에서의 식물 대 사람의 비유가 ‘유기체’끼리의 비유체계라면, ‘흙 대 쇠붙이’의 관계는 무기물끼리의 대응을 이룬다. ‘쇠붙이/흙가슴’, ‘전쟁 무기/농사일’, ‘파괴성/생산성’, ‘전쟁/평화’, ‘군대/농민’, ‘봉건 계급 사회/평등 사회’, ‘독재 정치/민주 정치’, ‘부정 선거/투명 선거’ ‘부패/반부패, 청렴’.
  여기서 시인은 껍데기를 부정하면서 그 시대에 권력자의 편에 서서 침묵하던 자들이나  농민들을 탄압하면서 잘 살던 양반들, 그리고 외적에 항거하지 못한 용기없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또한 쇠붙이와 흙가슴의 대립은 기술적 근대 무기를 앞세운 지배층과 그들의 부정 부패, 부정 선거에 대한 거부를 나타내고 있다. 껍데기는 기득권 세력, 또는 지배세력이라고 볼 수도 있고, 낡고 굳어진 채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기적인 정신이기도 하다. ‘껍데기는 가라’는 것은 사회적으로 정체되고 잘못된 구조를 깨트리는 것이면서 내부적으로는 농민 스스로의 의식을 깨우치는 것이기도 하다.
  시인이 보여주는 이상사회의 꿈은 아사녀와 아사달의 벌거벗은 초례청 혼례 이미지를 통해 한국적 유토피아로 구현된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한반도 비무장 지대의 자연 상태를 가리키는 ‘중립의 초례청’은 분단 이전의 자연 상태를 회복하려는 환경친화적 꿈을 보여준다.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놓은 아사달과 아사녀의 모습은 에덴동산의 순수성을 연상케 하며, 현실적으로는 분단된 남북 현실이란 구속적인 조건으로부터의 해방을 표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