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언의 이해]

작가들의 방언관

이태영(李太永) / 전북대학교

  작가들은 개인의 경험을 되살리고 묘사하기 위하여 자기가 쓰고 듣고 말하던 토착 언어를 사용하곤 한다. 방언은 그 당시의 상황이 배어 있는 말이기 때문에 작가는 이러한 점을 활용하기 위하여 방언을 사용한다.
  이태준은 『문장강화』29쪽에서 대화를 표준어로 쓸 때 현실감이 없다는 지적을 하고 있고, 등장 인물이나 상황을 방언으로 묘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260쪽에서는 ‘생활 속어’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 등장 인물들이 ‘생활 속어’를 사용함으로써 진실해진다고 보고 있다. 방언의 사실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여기서 만일 복녀 夫妻의 대화를 표준어로 써 보라. 七星門이 나오고, 萁子墓가 나오는 平壤 배경의 인물들로 얼마나 현실감이 없어질 것인가? 작자 자신이 쓰는 말, 즉 地文은 절대로 표준어일 것이나 표현하는 방법으로 인용하는 것은 어느 지방의 사투리든 상관할 바가 아니다.”
  “작자의 생활들이 아니라 글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생활 속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인물들, 여기 공기가 진실해지는 것이다.”
  작가 채만식은 표현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어휘가 표준어에 없어서 방언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채만식은 『民聲』 5권 4호의 ‘한글 校正, 誤植, 사투리’라는 글과 『博文』 5집(1939년)에 실린 ‘續 餘白錄’이란 글에서 방언에 관한 소감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는 방언을 많이 쓴다. 방언인 줄 알고 쓰는 것도 있고 방언인 줄 모르고 쓰는 것도 있고 표준어로는 몰라서 할 수 없이 방언을 그대로 쓰는 것도 있고 아뭏든 많이 쓰기는 쓴다.”
  “문장에 있어서(위정 지방어로 써야 할 회화의 경우 말고) 말의 중앙 표준어화는 물론 당연 이상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그 표준어화에 있어서 실제의 곤란을 더러 당하곤 한다.”
  평론가 정호웅은 윤흥길의 『소라단 가는 길』의 해설에서 다음과 같이 사투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느낌들의 구체적 실재’란 바로 방언에 전통과 문화와 경험이 녹아 있는 정감, 즉 오랫동안 전통과 문화와 역사 속에서 다져진 정서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표준어가 보여주는 물리적, 현상적 의미와 방언의 체험적, 정서적 의미가 대립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사투리는 과거를 불러내는 주술의 언어이며, 그 과거 속으로 길을 여는 열쇠인 것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중략) 표준어는 사전에 규정된 의미를 따라 체험의 구체성을 잘라내고 약화시킴으로써 체험을 추상화하는 표준 기호이다. 표준어의 그 같은 속성 때문에 체험의 구체성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다. 지난 시절 겪었던 일들, 느낌들의 구체적 실재는 그 경험 현장에서 사용되었던 언어, 곧 사투리를 통해서만 온전히 되살아날 수 있는 것이다.”
  시인 서정주는 문학전집 2권에 실린 ‘시의 언어Ⅰ’이란 글에서 ‘민족 생활어’, ‘실생활어’, ‘방언’을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문학전집 4권에 실린 ‘八道 사투리의 妙味’란 글에서 작가가 방언에서 어휘를 발굴하여 써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넓고 뿌리 깊고 전통적인 民族生活語의 속으로 들어가서 시인 각자의 詩的 체험에 맞추어 선택하고 조직해 냄으로써만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중략) 이 實生活語가 늘 통하는 데에라야 김치뿐 아니라 美도 感動도 다 어색할 것 없는 진짜가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方言들 속에서 이런 類의 말을 발굴 사용하는 것은 文學創作人의 한 의무라 생각하고, 일찌기 ‘편지’라는 내 한 시편에서 다음과 같이 그것을 집어넣어 써 본 일이 있다.”
  이러한 자세를 보인 서정주는 작품 전체를 통하여 고어와 고유어와 방언을 사용하여 한국어의 독특한 질감을 생생하게 구현하고 있다. 방언을 사용함으로써 시어가 지닌 사전적인 개념을 넘어서 시인 개인이 겪은 정서적 의미를 아주 다양하게 표현하면서 심미적 효과를 얻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