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너무 줄이지 맙시다

손범규(孫範奎) / 에스비에스 아나운서

  문어보다 구어를 많이 사용하는 방송 언어에서는 의미를 삭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음운이나 음절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즉 ‘하여, 되어’의 경우는 아래처럼 생략형을 사용한다.

하여 → 해, 해서, 했으며, 했고, 했습니다.
되여 → 돼, 돼서, 됐으며, 됐고, 됐습니다.
  실제 방송에서는 이 중에서도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기 위해서 ‘해, 돼’나 ‘했고, 됐고’보다는 ‘해서, 돼서’나 ‘했으며, 됐으며’를 자주 사용한다. 즉 1)보다는 2)의 문장으로 방송하는 경우가 많다.
1) 안보태세를 확실히 하여(하여서) 북한에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2) 안보태세를 확실히 해(해서) 북한에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시청자가 쉽고 편안한 느낌을 갖도록 하기 위한 진행자의 의도와 조금이라도 말을 간결하게 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야 하는 방송의 특성 때문이다.
  그러나 음운을 생략한다고 해서 지나친 줄임말을 사용하는 것은 좋지 않다. 아래의 예를 보자.
3) WHC총회에는 각 나라의 정상들이 참가하며……
4) APEC총회에서는 이 밖에도 다른 의제들이 논의되며……
5) 전민특위에서는 이번 발굴이……
6) 소보원은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7) 중노위에서는……
  위의 문장은 모두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뉴스 문장이다. 글쓴이는 이런 문장을 모두 풀어서 방송하려고 노력하지만, 실제 우리가 접하는 방송에서는 위의 예처럼 방송되는 경우가 많다. 방송 종사자의 바람직한 자세는 시청자의 눈높이에 맞는 방송을 하는 것이다. 위의 문장에 나오는 영어 약어나 줄임말을 모두 이해하는 시청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청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아래처럼 풀어서 방송을 해야 할 것이다.
3’) WHC, 즉 유네스코 세계 유산위원회 총회에는 각 나라의 정상들이 참가하며……
4’) APEC, 즉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총회에서는 이 밖에도 다른 의제들이 논의되며……
5’) 전민족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이번 발굴이……
6’) 소비자보호원은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며……
7’)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물론 억지로 자주 사용해서 익숙해진 용어도 있다.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헌재(헌법재판소), 행자부(행정자치부), 건교부(건설교통부), 특가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신문과 방송이 모두가 이해하겠지 하는 마음에 원칙 없이 줄인 말들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다가 일반화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들이 우리말을 병들게 한다. 동질 집단 간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통신 용어가 집단 간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심각하게 만들었듯이 신문과 방송도 편함만을 추구면서 쉽게 이해되지 않는 단어들을 마구 만들어내는 것이다. 쉽게 이해가 안 되는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 요즘 세상이지만 우리말만은 편하게, 그 뜻을 알기 쉽게 썼으면 한다. 우리말, 함부로 줄이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