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의 시 ‘지리산의 봄 1- 뱀사골에서 쓴 편지’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 놓습니다/ 온몸을 싸고 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 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 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 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 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 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 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 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 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
(‘지리산의 봄 1- 뱀사골에서 쓴 편지’, “지리산의 봄”, 1987, 1994) |
비유되는 것 | 비유하는 것 | |
뱀 | 뱀사골 | |
뱀눈은 작고 하얗게 빛난다 | ----------- |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 |
나무가지에 걸려 있다가 | ----------- |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
뱀 대가리를 일으켜 세우고 | ----------- | 슬픈 깃털을 일으켜 세우며 |
둥글고 긴 몸통으로 기어다닌다 | ----------- | 길게 내려온다 |
찬 피 동물 | ----------- | 축축한 외로움, 서늘한 향기 |
봄에 허물을 벗는다 | ----------- |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
이무기가 용으로 승천 | ----------- |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 내리고 승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