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반대되는 뜻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일반 단어들 사이에 반의 관계가 성립하듯이 두 개의 관용 표현이 서로 반대되는 뜻을 나타낼 수 있다. 관용 표현을 이루는 구성 요소 중 하나를 반의어로 바꾸어 전체 관용 표현이 반대되는 뜻을 나타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1) ㄱ. 연극이 끝나자 배우들이 가면을 벗고 무대 위로 올라와 인사를 했다.
ㄴ. 사업이 막바지에 접어들자 박 사장은 가면을 벗고 본색을 드러냈다.
(2) ㄱ. 이번 연극에서는 모든 배우들이 가면을 쓰고 동물 역할을 한대요.
ㄴ. 지금까지 우리는 가면을 쓴 최 선생의 모습만 보아 온 겁니다.
(3) ㄱ. 그릇이 작으니까 밥을 수북이 푸도록 해.
ㄴ. 강 과장은 그릇이 작아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일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4) ㄱ. 여러 사람이 함께 먹을 수 있게 담을 거니까 큰 그릇으로 가져 와.
ㄴ. 이번엔 그릇이 큰 분이 사장으로 오시면 좋겠네요.
  (1ㄴ)의 ‘가면을 벗다’와 (2ㄴ)의 ‘가면을 쓰다’는 각각 ‘본심을 드러내다’와 ‘본심을 감추다’의 뜻을 나타내므로 반의 관계에 있는 관용 표현이다. ‘가면’은 그대로 두고 ‘벗다’와 ‘쓰다’만 교체하여 반대되는 뜻을 나타낸다. ‘벗다’와 ‘쓰다’가 반의어이므로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나타내는 (1ㄱ)의 ‘가면을 벗다’와 (2ㄱ)의 ‘가면을 쓰다’도 당연히 반대되는 뜻을 나타낸다. 이런 관계는 (3)과 (4)에서도 볼 수 있다. (3ㄴ)의 ‘그릇이 작다’와 (4ㄴ)의 ‘그릇이 크다’는 각각 반의 관계에 있는 ‘소심하다’, ‘대범하다’로 바꾸어 쓸 수 있다.
(5) ㄱ. 막이 오르자 시끄럽던 관람석이 조용해졌습니다.
ㄴ. 드디어 프로 축구 시즌의 막이 올랐습니다.
ㄷ. 저는 신입 부원이라서 역할은 못 맡고 막을 올리는 책임을 맡았어요.
ㄹ. 김 회장님이 이번 행사의 막을 올리는 인사 말씀을 해 주시겠습니다.
(6) ㄱ. 공연 중간에 갑자기 막이 내리자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ㄴ. 월드컵의 막이 내렸을 때 모두들 아쉬워했습니다.
ㄷ. 마지막 대사를 잘 기억하고 있다가 대사가 끝나자마자 막을 내려라.
ㄹ. 공연의 막을 내리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가장 유명한 가수입니다.
  (5)와 (6)도 앞의 (1)~(4)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반대되는 뜻을 나타낸다. 실제로 천으로 된 막을 올리고 내리는 것을 의미하는 (5)~(6)의 ‘ㄱ’과 ‘ㄷ’, ‘시작되다, 끝나다’의 뜻을 나타내는 (5)~(6)의 ‘ㄴ’, ‘시작하다, 끝내다’의 의미인 (5)~(6)의 ‘ㄹ’이 모두 반대되는 뜻을 포함하는 문장의 예들이다.
(7) ㄱ. 밤에 잠이 안 오면 눈을 감고 백까지 세어 봐.
ㄴ. 이번 한번만 눈 감아 주시면 다음부터 절대 안 그러겠습니다.
(8) ㄱ. 치료가 끝났으니 이제 눈을 떠 보세요.
ㄴ. 요새 들어 살림의 재미에 눈을 떴습니다.
  그러나 관용 표현의 구성 요소가 반의어라고 하여 반드시 반대되는 뜻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7ㄱ)~(8ㄱ)의 ‘눈을 감다’와 ‘눈을 뜨다’는 분명한 반의 관계이다. 그런데 같은 형태의 관용 표현인 (7ㄴ)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다’의 뜻이고 (8ㄴ)은 모르던 것을 알게 된다는 의미이다. 이때 (7ㄴ)~(8ㄴ)이 단순하게 ‘모르다’와 ‘알다’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므로 이들 사이에는 반의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