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이해]

순 우리말 ‘에누리’

이운영(李云暎) / 국립국어연구원

  최근 한 대형 할인점에서 내건 현수막에 ‘에누리’라는 말이 쓰인 적이 있다. 판매 물건에 대해 대폭 ‘에누리 행사’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 현수막이 걸린 후 할인점은 방문객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고 한다. 어떻게 많은 사람이 보는 현수막에 ‘일본어’를 사용할 수 있느냐는 항의였다. 요컨대 순화 대상어로 쓰지 말아야 할 ‘에누리’라는 ‘일본어’를 공공 장소에 내건 현수막에 큼지막하게 쓴 것에 대해 ‘우리말’을 사랑하는 많은 방문객들이 이의를 제기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이 할인점은 방문객들이 지적한 것과 같이 잘못된 용어를 선택한 것일까? 답은 ‘아니요’이다. 오히려 이 할인점은 순 우리말을 사용하기 위하여 열심히 국어사전을 찾아본 칭찬할 만한 ‘우리말 지킴이’이다. 다음은 ꡔ표준국어대사전ꡕ에 실린 ‘에누리’의 뜻풀이이다.

에누리①물건 값을 받을 값보다 더 많이 부르는 일. 또는 그 물건 값.②값을 깎는 일.③실제보다 더 보태거나 깎아서 말하는 일.④용서하거나 사정을 보아주는 일.
  위 뜻풀이들 중에서 위의 할인점의 경우에 맞는 것은 바로 뜻풀이 ②이다. 즉 ‘에누리’는 ‘값을 깎는 일’을 가리키는 순 우리말로, 이 할인점은 흔히 사용하는 ‘세일’이라는 외래어나 ‘할인’이라는 한자어를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에누리’라는 고유어를 애써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어떠한 이유에서인지 ‘에누리’를 일본말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이러한 문제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오히려 살려서 써야 할 우리말을 일본어에서 온 순화 대상어이거나 방언, 비표준어 등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음식점 등에서 사용하는 ‘사리’라는 말이다. 다음은 ‘사리’의 뜻풀이이다.
사리①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은 뭉치.¶국수 사리.②((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국수, 새끼, 실 따위의 뭉치를 세는 단위.¶국수 한 사리/새끼 두 사리/점심에 냉면 두 사리를 더 먹었다.
  위의 뜻풀이에 나타난 대로 ‘사리’는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라는 뜻의 ‘사리다’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고유어이다. 그런데 이를 일본어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아마도 일본어 ‘사라’와 혼동해서가 아닌가 한다. ‘사라’야말로 ‘접시’를 뜻하는 일본어로 이 역시 음식점에서 개인 접시의 의미로 지금도 사용하는 경우가 꽤 있다. 이 ‘사라’와 순 우리말인 ‘사리’를 혼동하여 ‘사리’ 역시 일본어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고유어는 아니지만 표준어를 방언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식겁하다’가 대표적이다. 이 말은 표기 자체를 ‘시껍하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표준어가 아니라 방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식겁하다’는 다음과 같이 사전에 실려 있는 표준어이다.
식겁(食怯)뜻밖에 놀라 겁을 먹음.
식겁하다ꂿ ⇨식겁. ¶아들이 다쳤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위에 나타난 대로 ‘식겁’은 한자어 ‘食怯’으로, 한자 뜻 그대로 겁을 먹는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이는 아무 문제가 없는 표준어이다.
  우리가 언어생활을 할 때 바르지 못한 어휘나 표현 등을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지양해야 할 사항이다. 특히 충분히 우리말로 바꾸어 쓸 수 있는데도 일본어나 여타 외래어를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이러한 의식이 지나쳐서 좋은 우리말까지 오해를 하여 사용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살려 써야 할 말과 써서는 안 되는 말을 잘 구분할 수 있는 데에서부터 우리의 바른 언어생활은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