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희의 시 ‘지리산의 봄 6-천왕봉 연가’
산길을 뒤쫓던 계곡물 소리가 / 기나긴 능선에서 돌아서 가버린 뒤/ 이 깊고 적막한 영산의 골짜기에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청학동 높새바람 능선을 넘어와/ 백년 묵은 슬픔들을 구름으로 날립니다/ 천왕봉을 베개삼아 야숙하는 새벽에는/ 놀라운 일이지요/ 나의 두개골 사이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가슴에 들여앉힌 밀림 사이로/ 청산의 운무가 넘나들었습니다/ 해동천 기운이 발원하는 곳,/ 지리산 상상봉에 두 발을 얹으니/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천 가지 바람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만 가지 사람 뜻이 이곳에서 흐른지라// 서러운 산하에 뼈를 묻은 사람들,/ 동쪽사람 하늘이 동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남쪽사람 하늘이 남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서쪽사람 하늘이 서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북쪽 사람 하늘이 북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정선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 고개 아아/ 조선인의 하늘이 남누리 북누리 흘러갑니다/ 산길을 앞지르던 골짜기 어둠이/ 크고 작은 능선에서 사그라져버린 뒤/ 이 깊고 적막한 영산의 골짜기에는/ 한달 두달 석달 넉달......./ 청학동 징소리 능선을 넘어와/ 천년 묵은 악몽들을 꽃잎으로 날립니다. |
(‘지리산의 봄 6-천왕봉 연가’, 『지리산의 봄』, |
문학과지성사, 1987, 1994) |
<비유하는 것> | <비유되는 것> | |
시인의 두개골 | ------------------- | (지리산 봉우리들)사이에서 붉은 해가 솟다. |
시인의 가슴(폐)속에 | ------------------- | (지리산)밀림(숲) 사이로 청산의 운무가 넘나든다. |
두 발로 서니 | ------------------- | 천왕봉에서 해동천 기운이 처음 생김을 알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