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고정희의 시 ‘지리산의 봄 6-천왕봉 연가’

김옥순(金玉順) / 국립국어연구원

  산길을 뒤쫓던 계곡물 소리가 / 기나긴 능선에서 돌아서 가버린 뒤/ 이 깊고 적막한 영산의 골짜기에는/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청학동 높새바람 능선을 넘어와/ 백년 묵은 슬픔들을 구름으로 날립니다/ 천왕봉을 베개삼아 야숙하는 새벽에는/ 놀라운 일이지요/ 나의 두개골 사이에서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가슴에 들여앉힌 밀림 사이로/ 청산의 운무가 넘나들었습니다/ 해동천 기운이 발원하는 곳,/ 지리산 상상봉에 두 발을 얹으니/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 천 가지 바람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만 가지 사람 뜻이 이곳에서 흐른지라// 서러운 산하에 뼈를 묻은 사람들,/ 동쪽사람 하늘이 동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남쪽사람 하늘이 남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서쪽사람 하늘이 서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북쪽 사람 하늘이 북녘 능선 따라 흘러갑니다/ 정선아리랑이나 진도아리랑 고개 아아/ 조선인의 하늘이 남누리 북누리 흘러갑니다/ 산길을 앞지르던 골짜기 어둠이/ 크고 작은 능선에서 사그라져버린 뒤/ 이 깊고 적막한 영산의 골짜기에는/ 한달 두달 석달 넉달......./ 청학동 징소리 능선을 넘어와/ 천년 묵은 악몽들을 꽃잎으로 날립니다.
(‘지리산의 봄 6-천왕봉 연가’, 『지리산의 봄』,
문학과지성사, 1987, 1994)

  고정희(1948〜1991)의 시 ‘지리산의 봄 6-천왕봉 연가’를 보면 지리산과 우리 민족의 역사가 시로 만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리산은 통일 신라에 패망한 백제(기원전 18년〜기원후 660년)의 땅이었고, 6〭25전쟁 전후에는 공산 게릴라들의 소굴이었던 지리산,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상상봉) 영산으로 불리는 천왕봉에서 야숙하는 시인의 감회가 남다르다. 이 봉우리에 오르기까지 산길의 험한 상태는 뒤쫓던 계곡물 소리가 기나긴 능선을 못 넘고 돌아서 가 버렸다는 멋진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깊고 적막한 지리산에서 대상은 못 넘는 것과 넘는 것으로 변별된다. 못 넘는 것은 계곡물과 골짜기의 어둠이고 넘는 것은 청학동 높새바람과 청학동 징소리다. 이들도 한 번에 넘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거나 한 달, 두 달, 석 달, 넉 달에 걸쳐서 능선을 넘어와야 천왕봉에 닿는다. 이런 고생 끝에 도달한 천왕봉에서 청학동 높새바람은 백년 묵은 슬픔을 구름으로 변하게 하고, 청학동 징소리는 천 년 묵은 악몽들을 꽃잎으로 변하게 하는 살풀이의 역사적 현장이 느껴진다. 왜 이런 살풀이가 필요한가 하면 지리산은 바로 백 년 전(실제로는 50여 년 전)과 천 년 전(실제로는 약 1500여 년 전)에 치열한 격전을 벌인 역사의 현장이자 증인이기 때문이다.
  모든 등산객에게 마찬가지로 일어나는 기적이지만 힘들게 오른 천왕봉에서의 하룻밤은 이 시의 시인이 인간계 저 너머 신의 영역에 있는 듯, 죽은 자의 세계로 넘어와 있는 듯하다.    

<비유하는 것> <비유되는 것>
시인의 두개골 ------------------- (지리산 봉우리들)사이에서 붉은 해가 솟다.
시인의 가슴(폐)속에 ------------------- (지리산)밀림(숲) 사이로 청산의 운무가 넘나든다.
두 발로 서니 ------------------- 천왕봉에서 해동천 기운이 처음 생김을 알겠다.

  천왕봉에 올라서 보니 죽은 자의 세계가 발밑에 흘러간다. 시인은 역사의 치열한 현장에서 피맺힌 한을 품고 죽은 자들의 영혼을 천도하는 의미로 아리랑을 생각한다. 산길은 능선이고 고개이다. 아리랑을 흔히 고개의 노래라고 하듯이 이 시에서도 정선 아리랑과 진도 아리랑(이에 더하여 밀양 아리랑까지를 3대 아리랑이라 함)을 부르며 한 개인의 꿈과 소망과 꺾임이 엇갈린 삶의 고개를 생각하고 온 겨레의 의지와 절망이 교차하는 역사의 고개를 생각한다. 이렇게 시인은 천왕봉에 올라 서러운 산하에 뼈를 묻은 사람들의 슬픔과 악몽을 아리랑 가락과 청학동 징소리로써 날려 보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죽은 자들을 천도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아니 죽은 자들의 하늘을 흘려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