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용 표현의 이해]

최근에 유행하는 관용 표현

김한샘 / 국립국어연구원

  어느 사회에나 유행어는 있기 마련이다. 유행어는 현재의 사회적인 분위기나 정서를 반영하기도 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내용을 재미있게 표현하기도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유행어에는 속된 표현이 많다. 유행어는 주로 구어에서 많이 쓰이지만 정착되어 문어에서 쓰이기도 한다. ‘찜하다(어떤 물건이나 사람을 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유행하다가 사전 표제어로까지 올라간 예이다. 관용 표현도 유행을 탄다. 전통적인 관용 표현의 목록이나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지만 두 개 이상의 단어가 모여 각각의 단어 뜻을 넘어서는 새로운 의미로 쓰이는 예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    ㄱ. 도시락 뚜껑이 열려서 가방 속에 있던 책이 다 젖었다.
        ㄴ. 뚜껑이 열리고 보니 사전 여론 조사와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ㄷ. 박 대리가 일을 망쳐서 최 부장이 완전히 뚜껑 열렸더라고.
(2)    ㄱ. 종이 치기 전까지 답안지 작성을 끝내 주시기 바랍니다.
        ㄴ. 오늘 김 기자 의상이 끝내 주는데?
        ㄷ. 우리 회사 앞에 해장국이 끝내 주는 식당이 있어요.
  (1ㄷ)의 ‘뚜껑이 열리다’와 (2ㄴ~ㄷ)의 ‘끝내 주다’는 사람의 주관적인 감정이나 판단을 나타내는 관용 표현이다. (1ㄱ)의 ‘뚜껑이 열리다’는 그릇이나 상자 위를 덮는 물건이 벗겨진다는 직설적인 표현이다. ‘뚜껑이 열리다’는 뚜껑이 열리면 안 보이던 속의 내용이 보이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확장하여 (1ㄴ)과 같이 어떤 일의 결과가 나온다는 뜻의 관용 표현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최근에 ‘뚜껑이 열리다’는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화가 나서 감정의 상자가 팽창하다 못해 뚜껑이 열린다는 의미일 것이다.
  ‘끝내 주다’는 요새 (2ㄴ)과 같이 ‘매우 훌륭하다’라는 뜻으로 쓰인다. 객관적인 가치라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이 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끝내 주다’가 (2ㄷ)의 ‘해장국이’과 같이 음식과 함께 쓰이면 맛이 훌륭하다, 즉 맛있다는 의미가 된다.
(3)    ㄱ. 이번 달부터 마지막 정리 작업에 들어갑니다.
        ㄴ. 영수는 요새 작업에 들어가서 친구들 모임에도 잘 안 나와.
(4)    ㄱ. 사람들은 평범한 물로 보지만 이 약수를 먹고 병이 나은 환자들이 많다.
        ㄴ. 나를 물로 보지 않은 다음에야 어떻게 이렇게 소홀하게 대접할 수가 있어.
  (3~4ㄴ)는 사람 간의 관계와 관련한 관용 표현이다. (3ㄴ)의 ‘작업에 들어가다’는 연인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꼬리를 치다’가 주로 여자들이 주체가 되는 오래된 표현인데 반해 ‘작업에 들어가다’는 주로 남자의 입장을 드러내는 말로 최근에 유행하기 시작한 표현이다. (4ㄴ)의 ‘물로 보다’는 다른 사람을 하찮게 보거나 쉽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1~4)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은 관용 표현들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여 대화를 할 때 흔히 섞어서 쓰는 표현이다. 대화의 말맛을 더해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막는다는 단점도 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젊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었을 때에도 이런 표현들이 살아 있을지는 지금으로서는 판단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