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 발음법의 이해]

‘불법[불법]’과 ‘설법[설뻡]’

김선철(金銑哲)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가 사용하는 외국어나 외래어에는 철자를 기준으로 발음하면서 표기도 거기에 따라서 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medal’의 원래 발음이 ‘메들’에 가까운데 ‘메달’이라고 하거나, ‘running’을 ‘러닝’이 아닌 ‘런닝’, 최근에 인기를 끌고 있는 서양 악극인 ‘mamma mia’를 ‘마마 미아’가 아닌 ‘맘마 미아’라고 말하고 표기하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특히 ‘맘마 미아’에서는 자주는 아니겠지만 외국어로서 ‘마마’로 써오던 것을 유아어로 ‘밥’을 뜻하는 ‘맘마’로 바꾸어 놓아서 많이 어색해 보인다.
  이런 철자식 발음은 해당 외래어를 받아들일 당시 그 발음에 대한 지식이 전달되지 못하고 철자만 접하게 된 상태에서 어떤 한 문자에 특정한 한 음가만을 대응시킨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는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외국어에 대한 지식 수준이 높아져서 이런 철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외래어는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한글이 곧 발음기호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렇게 글자가 곧 소리를 나타내는 성질을 표음성이라고 하는데, 한글의 표음성은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 다음 예를 보자.

(1) 계산[계:산/게:산]
(2) 나의 고향[나의 고향/나에 고향]
(3) 주의[주의/주이]
(4) 석류[성뉴], 탁류[탕뉴]
(5) 창가[창까], 개울가[개울까]
(6) 헌법[헌:뻡], 민법[민뻡]
(7) 북녘[붕녁], 맞불[맏뿔]
  (1)은 ‘ㅖ’가 ‘ㄹ’ 이외의 자음 뒤에서 ‘ㅔ’로도 소리 나는 현상을 보여준다. (2)는 조사 ‘-의’가 ‘에’로 소리 나기도 하는 현상이다. 즉 소유격 조사는 ‘에’로도 소리 나지만 부사격 조사 ‘-에’와 혼동되지 않게 ‘의’로 적어야 한다. (3)은 조사가 아닌 ‘ㅢ’가 제2 음절 이하에서 ‘ㅣ’로 소리 나는 현상인데, 같은 현상으로 ‘ㅢ’ 앞에 자음이 있으면 그 ‘ㅢ’는 ‘늴리리[닐리리]’처럼 ‘ㅣ’로 소리 난다. (4)는 한자어 내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 앞의 ‘ㄱ’이 뒤의 ‘ㄹ’ 때문에 제 음가대로 소리 나지 못하고 같은 공명음인 ‘ㅇ’으로 변하며, 동시에 ‘ㄹ’이 모음과 모음 사이에 있지 않으므로 ‘ㄴ’으로 변하는 자음 동화 현상이다. (5)는 사이시옷에 의한 경음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데, 철자만으로는 ‘가’가 ‘까’로 소리 나는지 알 수 없고 문맥이 주어져야 비로소 그 의미와 발음을 알 수 있게 된다. (6)은 한자어 내부에서 나타나는 경음화 현상으로 규칙이 잘 드러나지 않아서 단어마다 따로 외워야 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활법(活法)’과 ‘설법(說法)’은 각각 ‘활뻡’, ‘설뻡’으로 소리 나지만 ‘불법’은 ‘不法’이건 ‘佛法’이건 두 번째 음절의 첫 소리가 경음화되지 않는다. (7)은 고유어 복합어라는 점에서 (4)와 다른데, 두 어휘 요소가 만나는 지점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소리 변화를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맞춤법에 반영하지 않고 원형대로 적는 것이 해독에 유리하다.
  국어에서 철자와 발음이 같지 않은 것은 이제껏 언급한 것들 이외에도 많다. 표준 발음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ㅔ’와 ‘ㅐ’가 발음상 구분되지 못하는 전국적인 추세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현상은 이중 모음으로 확대되어 결국 ‘ㅚ’, ‘ㅞ’, ‘ㅙ’가 원래의 ‘ㅙ’와 유사한 음가로 통일되고 있다. ‘부엌, 밖’ 등 격음, 경음을 나타내는 글자가 받침에 있을 경우나 ‘값, 품삯’ 등 겹받침의 경우도 글자대로 소리 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언급한 예를 감안할 때 표준어에서 맞춤법이 곧 발음이라는 막연한 생각은 이제 버려야 하며, 낱말의 형태, 의미, 구체적인 용법 등을 알기 위해 사전을 찾아보는 것처럼 정확한 발음을 알기 위해서는 국어사전을 찾아보아야 한다. 모든 음소 문자 체계가 그랬듯이 오늘날의 한글 맞춤법도 언젠가는 영어의 철자법처럼 철자와 발음이 다대다 대응을 하는 모습이 되지 않을까 추측하는 이도 있다. 따라서 국어 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국어사전이 필요한 경우가 늘어날 것이며, 이 때문에 특히 자라나는 세대에게 국어사전의 활용법을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