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이해]

아 다르고 어 다른 흉내말

이운영(李云暎) / 국립국어연구원

  우리 속담에 ‘아 해 다르고 어 해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같은 내용의 이야기라도 이렇게 말하여 다르고 저렇게 말하여 다르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속담이다. 그런데 우리말의 흉내말들을 보면 이 속담이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맞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속담에 나타난 그대로 ‘아’라는 모음을 쓰는 것과 ‘어’라는 모음을 쓰는 것에 따라 어감뿐만 아니라 의미까지도 달라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찰랑’과 ‘철렁’은 ‘아’와 ‘어’라는 모음의 차이만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흉내말들은 대개 기본 의미는 같고 작은말과 큰말의 어감 차이만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찰랑’과 ‘철렁’의 쓰임을 보면 단순한 어감의 차이를 넘어 의미에서도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다음은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찰랑’과 ‘철렁’의 풀이 및 용례이다.

  찰랑 ①가득 찬 물 따위가 잔물결을 이루며 넘칠 듯 흔들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바람이 불자 강물에 물비늘이 찰랑 일었다. ②물체 따위가 물결치는 것처럼 부드럽게 한 번 흔들리는 모양.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단발머리가 찰랑 흔들리며 빛났다.
  철렁 ①그득 찬 물 따위가 큰 물결을 이루며 넘칠 듯 흔들리는 소리. 또는 그 모양. ¶욕조의 물을 손으로 휘저으니 철렁 넘친다. ②어떤 일에 놀라서 가슴이 설레는 모양. ¶가슴이 철렁 내려앉다/아이들이 장난으로 팡팡 쏘아 대는 화약총 소리에도 매번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그들이었다.≪현기영, 순이 삼촌≫
  위의 풀이를 보면 첫 번째 뜻풀이는 작은말과 큰말의 어감 차이만을 보인다. 따라서 용례에 두 단어를 바꾸어 넣어도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두 번째 뜻풀이는 의미가 완전히 다르다. ‘단발머리가 철렁 흔들린다’고 표현하지 않으며, ‘가슴이 찰랑 내려앉는다’고 쓰지도 않는다. 즉 모음 하나의 차이로 의미와 쓰임이 완전히 달라진 것으로 이는 우리말의 흉내말에 종종 나타나는 재미있는 현상이다.
  ‘솔솔’과 ‘술술’도 큰말과 작은말의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완전히 의미가 대응하지는 않는다. 다음의 예를 보면 (ㄱ)~(ㄷ)에서는 ‘솔솔’과 ‘술술’이 모두 가능하지만, (ㄹ)~(ㅁ)에서는 ‘솔솔’만이 가능하다. ‘찰랑/철렁’과 마찬가지로 ‘솔솔/술술’ 역시 ‘오’와 ‘우’라는 모음 하나만의 차이를 보이지만 의미 자체가 다르게 쓰이는 것이다.
(1)    ㄱ. 자루가 터져서 밀가루가 {솔솔/술술} 새어 나간다.
        ㄴ. 실타래에서 실이 {솔솔/술술} 잘 풀려 나온다.
        ㄷ. 이야기가 {솔솔/술술} 잘 풀리는 것이 이번에는 일이 잘 될 것 같다.
        ㄹ. 신혼 재미가 {솔솔/*술술} 난다.
        ㅁ. 부엌에서 참기름 냄새가 {솔솔/*술술} 난다.
  ‘쏙’과 ‘쑥’은 쓰임의 차이가 더 복잡하게 나타난다. 둘 모두를 쓸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어느 한쪽만 쓸 수 있는 경우가 있다. (ㄱ)~(ㄷ)은 둘 모두가 가능한 문장이고, (ㄹ)은 ‘쏙’만 가능하며 (ㅁ)은 ‘쑥’만 가능한 문장이다.
(2)    ㄱ. 혀를 {쏙/쑥} 내밀었다.
        ㄴ. 아프고 나서 얼굴 살이 {쏙/쑥} 빠졌다.
        ㄷ. 밭에서 무 하나를 {쏙/쑥} 뺐다.
        ㄹ. 그 옷은 내 마음에 {쏙/*쑥} 든다.
        ㅁ. 방학이 끝나고 나서 성적이 {*쏙/쑥} 올라갔다.
  우리말에는 소리나 모양을 흉내 내는 말이 매우 다양하게 있다. 그래서 상황에 따라 적절한 흉내말을 사용함으로써 한층 말과 글에 맛을 더할 수가 있다. 이러한 흉내말들이 위에서 살핀 것처럼 모음, 또는 자음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어감뿐 아니라 의미에서도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면 더욱 맛있고 재밌는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