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현장에서]

‘웰빙’과 잘 먹고 잘 살기

손범규(孫範奎) / 에스비에스 아나운서, 인하대 겸임교수

  요즘 방송은 ‘웰빙(well-being)’을 소리 높여 외친다. 많은 프로그램에서 ‘웰빙’을 주제로 시청자들의 관심을 끌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런 사회적 관심이 반영되어 국립국어연구원의 2003년 신어 보고서에도 ‘웰빙(well-being)과 ’웰빙족‘(well-being族)이 수록되었다.
  ‘웰빙’은 무슨 뜻일까? ‘심신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함’을 뜻하는 이 단어는 요즘엔 ‘몸과 마음을 유기적으로 결합해 인생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영위하자’는 새로운 의미의 인생관으로까지 해석되고 있다. ‘웰빙’이라는 개념이 유행하면서 음식에서부터 생활 용품, 전자 제품, 관광 상품, 주택에 이르기까지 우리 주변의 여러 분야에서 ‘웰빙’을 표방하는 상품들이 줄줄이 나오고 있다. 말 그대로 ‘웰빙’이란 ‘잘 먹고 잘 살기’가 목적이다. 원래 우리말에서 ‘잘 먹고 잘 살기’는 조금은 부정적인 상황에서 사용되었다. 뭔가 의견의 차이가 있거나 손해를 봤을 때 흔히 ‘에이,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나 ‘얼마나 잘 먹고 잘 사는지 보자’ 등의 표현이 사용된다. 하지만 요즘은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웰빙족’이 ‘잘 먹고 잘 살기’에 관심을 갖는다. ‘잘 먹고 잘 살기’가 행복과 부의 척도가 된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삶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문제는 외국에서 비롯된 ‘웰빙’ 열풍이 외국어의 남용을 부추긴다는 데에 있다. 2년 정도의 짧은 기간에 '웰빙'이란 단어는 방송과 신문을 비롯한 언론 매체를 통해 우리말에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뿐만 아니라 신조어 ‘웰빙족, 웰빙 문화, 웰빙 용품, 웰빙 산업’과 같은 신조어를 파생시켰으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 수많은 외국어를 유입시켰다. 다음은 언론에서 ‘웰빙’을 언급하면서 굳이 쓸 필요 없는 외래어나 생소한 외국어를 사용한 예이다.

 단순한 식물성 화장품 브랜드가 아니라 육체, 정신, 영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상태인 웰빙(well-being)을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이다.<OO경제, 2002. 2. 25.>

 한 달에 한 번씩 스파에서…… 웰빙 다이어트를 즐기는 웰빙족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됩니다.<OO방송, 2003.9.20.)

 건강하게 살자는 웰빙이 일상생활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할리우드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몸매 가꾸기 운동인 카디오 컴뱃필라테스가 국내에도 상륙했습니다.<OO방송, 2004. 4. 24.>
  이런 문제는 단지 ‘웰빙’과 ‘웰빙족’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사람들의 취향, 관심사, 인생관이 다양해지면서 공통점이 있는 사람을 묶어서 ‘~족(族)’으로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국립국어연구원에서 발간한 2003년 신어 보고서에도 ‘~족(族)’ 형식의 단어가 52개나 수록되었다. 그런데 ‘족(族)’과 결합하는 말 중에는 ‘웰빙’을 비롯해 ‘투잡스(two jobs), 마이카(my car), 멀티(multi)’ 등과 같이 외국어나 외국어를 합성한 말이 46개로 71%에 달한다. 세계화, 국제화의 시대이니만큼 외국어의 차용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꿔야 한다. 또 일반인들이 뜻을 잘 모르는 외국어를 굳이 사용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한다. 이런 단어들이 자주 사용되어 우리말로 자리 잡는다면 우리말의 정체성은 심각한 혼란을 겪을 것이다.
  언론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하는 본래의 기능 외에 우리말을 지키는 파수꾼의 역할을 해야 한다. 점점 커져가는 언론의 영향력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