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감상]

김영랑의 시 “뵈지도 않는……”

김 옥 순[金 玉 順] / 국립국어연구원

뵈지도 안는 입김의 가는 실마리
새파란 하날 끝에 오름과 가치
대숲의 숨은 마음 긔혀 차즈려
삶은 오로지 바늘끝 가치
            (김영랑, ‘25’, 『영랑시집』, 시문학사, 1936)
  김영랑(1903〜1950)이 살던 전라남도 강진의 집에 가면 안채와 행랑채, 그리고 사랑채와 마당에 꽃도 조촐하게 남아 있는데, 그의 시에는 구수한 그 지방의 말이 잘 녹아 있다. 이 시는 짧은 4행이지만 두운(頭韻)과 각운(脚韻)이 야무지게 갖추어져 있다. 각 행 첫소리가 ‘ㅂ/ㅅ/ㄷ/ㅅ’의 두운을 띠고, 각 행의 끝소리는 ‘ㅣ/ㅣ/ㅕ/ㅣ'로 각운을 맞추고 있다. 이렇게 두운과 각운(그리고 형태)을 맞추어서 소리 내어 읽으면 안정된 울림을 보여 준다. 이 시에서 낯선 단어는 ‘긔혀’인데, 그 뜻은 “기혀: 기어이의 전라 방언”(김재홍, 『시어 사전』,고대출판부)이라고 한다. 여러 번 이 시를 읽으면 비유로 일관된 어떤 흐름을 느낄 수 있는데 다음과 같은 비유 관계를 보여준다.
C1 하늘로 오르는 입김 C2 하늘로 오르는 대나무
  뵈지도 않는  ----------:----------   숨은 
  입김의   ----------:----------   대숲의 
  가는 실마리가  ----------:----------   바늘끝 같은 마음이  
  새파란 하늘끝으로  ----------:----------   하늘로 
  오른다  ----------:----------   오른다 
        
  여기서 한 정경이 떠오른다. 시인이 빽빽하게 키가 큰 대나무 숲에 들어가서 (김영랑 집 뒤에 대나무숲이 있다.) 자신과 대나무를 바라보면서 사람의 입김이 하늘로 오르듯 대나무도 하늘을 향해 높이 높이 오르는구나 하고 생각했으리라 짐작된다. 하늘로 오르는 시인의 입김과 하늘을 향해 자라는 대나무는 서로의 동작을 통해서 서로의 숨어 있는 마음을 들키고 만 것이다. 즉 하늘만을 향한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하늘을 향하는가?   
  사실 이 시의 핵심 동작어는 ‘찾으려’이다. 이 시에서 하늘 끝으로 보내는 시인의 입김은 가는 실마리처럼 약하다. 그러나 아직 젊기 때문에 새파란 하늘 끝을 향해 입김을 날려 보내는 시인의 마음은 다가올 자신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다가올 삶이 무엇인지 찾으려는 뜻이 잘 나타난다. 마치 대나무가 바늘끝처럼 가늘지만 하늘 끝으로 높게 오르듯이, 시인도 잡다한 주변사에 곁눈질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찾으러 나아가는 모습이다. 이들에게서 다음과 같은 공통된 이미지가 나타난다.
대나무    

시인

  상승 이미지 ------------ 성숙해지려는 마음
  길다 ------------ 먼 미래가 있다
  위로 솟는다 ------------ 미래 지향적이다
  푸르다 ------------ 젊은 마음
  속이 비었다 ------------ 사심이 없다 

 젊은 나이에 쓴 이런 영랑의 시들을 슈베르트 (Schubert, Franz Peter, 1797~1828)의 연가곡(連歌曲) “겨울 나그네”처럼 한국의 누군가가 작곡하여 널리 불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잠시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