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의 이해]

단어의 의미 확장

이운영(李 云 映) / 국립국어연구원

  요즘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거듭나다’라는 단어를 많이 접하게 된다. 일부 정치인들이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거취나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 말하며 ‘거듭나겠다’라는 말을 종종 하기 때문이다. 과연 이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일까. ꡔ표준국어대사전ꡕ을 찾아보면 ‘거듭나다’는 기독교 전문 용어로 되어 있고, ‘원죄 때문에 죽었던 영이 예수를 믿음으로 해서 영적으로 다시 새사람이 되다’라는 풀이를 달고 있다. 사전의 풀이대로라면 ‘앞으로 거듭나겠다’라고 말하는 정치인들이 모두 특정 종교에 귀의하여 신심을 갖게 될 것이라는 말인데, 실제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는 않은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말하는 ‘거듭나겠다’는 ‘지금까지의 방식이나 태도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겠다’는 의미를 띠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와 같이 특정한 경우에 제한적으로만 사용되던 단어가 점차 다양한 환경에서 쓰이면서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이것은 언어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나 사회적 환경 등에 따라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전에 오른 단어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풀이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풀이를 추가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게 되는데, 위에서 살펴본 ‘거듭나다’도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원래 특정한 분야에서만 쓰이던 전문 용어가 일반적인 의미로 쓰이는 예로는 ‘독대’, ‘대타’, ‘기하급수’ 등도 있다.
  ‘독대’는 원래 역사 전문 용어로, ‘벼슬아치가 다른 사람 없이 혼자 임금을 대하여 정치에 관한 의견을 아뢰던 일’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그런데 ‘독대’는 임금 제도가 없는 요즘도 흔하게 주위에서 들을 수 있다. ‘○○ 회장은 재벌 총수로는 처음으로 대통령과 독대를 했다’와 같은 문장에서 쓰인 ‘독대’는 대통령과 일대일로 만나는 것을 가리킨다. ‘상사와 독대를 하다’, ‘교장과 독대를 하다’와 같은 문장도 간혹 볼 수 있는데, 이러할 때에는 대개 자신이 속한 기관의 상사 등과 일대일로 만나는 일을 가리킨다. ‘독대’의 뜻이 현대적인 의미로 확대된 것이다.
  ‘대타’는 야구 전문 용어로 사전에는 ‘경기의 중요한 때에 원래 순번으로 정하여져 있던 타자를 대신하는 선수’로 풀이되어 있다. 요즘에는 ‘상사가 갑자기 출장을 가서 내가 대타로 회의에 참석했다’와 같이 ‘어떤 일을 원래 하던 사람을 대신하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도 흔히 사용된다. 이 역시 야구 경기에서만 사용되던 단어가 일반적인 경우로까지 확대되어 사용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기하급수’ 역시 원래 특정한 수열의 합을 가리키는 수학 전문 용어이다. 그러나 ‘서울의 인구가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요즘 사교육비가 기하급수로 불어나고 있다’ 등과 같은 문장에서, 증가하는 수나 양이 아주 많다는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어떠한 단어를 비유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단어에 모두 비유적인 의미를 추가하여 사전에 등재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비유적 의미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유적인 의미가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서 원래의 의미보다 더 널리 쓰이게 되면 이러한 의미는 더 이상 개인이 사용하는 비유적 의미로 볼 수는 없다. 위에서 제시한 단어들이 바로 이러한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이러한 단어는 원래의 의미 외에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고 보아 사전에 풀이를 추가하게 되는 것이다.